[젠슨 황의 AI 진단] 엔비디아는 이제 'CPU 메이커'? ②

블루필드·베라로 보는 ‘CPU 메이커’ 전략 데이터센터 넘어 피지컬 AI까지 청사진 제시

2026-01-15     문슬예 기자

[녹색경제신문 = 문슬예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CES 2026에서 ‘AI 버블’ 논쟁에 대한 진단을 넘어, 엔비디아가 향후 1~2년 내 시장에 투입할 구체적인 제품 로드맵을 제시했다. GPU 중심 기업이라는 기존 정체성을 넘어, CPU·네트워킹·자율주행·로보틱스를 포함한 ‘AI 팩토리’ 전체를 엔비디아가 설계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6 기간 중 진행한 Q&A 세션에서 황 CEO는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CPU(중앙처리장치) 메이커 중 하나가 된다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를 GPU 공급사를 넘어 ‘컴퓨팅 인프라 설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선언이다. 


가장 가까운 로드맵, ‘루빈’ 플랫폼


황 CEO가 제시한 로드맵 중 시장 투입이 가장 가까운 제품은 차세대 데이터센터 플랫폼 ‘루빈(Rubin)’이다. 그는 루빈을 단순한 차세대 GPU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의 병목을 제거하기 위한 통합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루빈은 AI 연산·데이터 이동·네트워킹·스토리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설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루빈 GPU ▲베라(Vera) CPU ▲NVLink 6 스케일업 네트워킹 ▲스펙트럼-X 이더넷 포토닉스 기반 스케일아웃 네트워킹 ▲커넥트X-9 슈퍼NIC ▲블루필드-4 DPU 등 6개 핵심 칩으로 구성된 공동 설계(Co-design) 플랫폼이다.

이 가운데 황 CEO가 특히 강조한 요소는 ‘블루필드-4(BlueField-4)’다. 블루필드-4는 명칭상 DPU(Data Processing Unit)이지만, 실질적으로는 AI 데이터센터에서 네트워크와 스토리지 이동을 전담하는 인프라 전용 CPU에 가깝다. 

기존 데이터센터에서는 CPU나 GPU가 연산뿐 아니라 데이터 이동, 보안, 스토리지 접근까지 함께 처리해왔다. 그러나 AI 워크로드에서는 이런 부가 작업이 커지면서 정작 GPU가 연산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블루필드-4는 이러한 주변 작업을 처리함으로써 GPU를 연산 전용 장치로 만들기 위한 설계다.

황 CEO는 “블루필드는 장기 컨텍스트 메모리를 뇌에 직접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며 “네트워크 너머 스토리지에 데이터를 두는 것이 아니라, AI가 추론을 위한 메모리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스토리지를 직접 제조하지는 않지만, 블루필드-4를 중심으로 스토리지 구조를 재설계하는 데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입장이다. 황 CEO는 “HP, 델, 바스트데이터, DDN, 웨카 같은 스토리지 벤더들과 함께 AI 네이티브 스토리지를 재설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센터 내 CPU의 역할과 비중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황 CEO는 “블루필드-4와 베라 CPU, 그리고 스토리지 쪽에 배치되는 블루필드까지 포함하면 데이터센터의 고성능 CPU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CPU 메이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루빈 플랫폼의 양산 일정과 관련해서는 “이미 풀 프로덕션이 가능한 단계”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구성 요소가 올해 하반기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그는 “이 정도 규모와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검증과 양산이 동시에 진행된다”며 단계적 시장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루빈은 GPU, CPU, 네트워킹, DPU까지 6개의 신규 칩이 결합된 플랫폼인 만큼, 개별 칩 단위가 아닌 전체 시스템 기준으로 안정성을 검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급망 측면에서는 TSMC와의 긴밀한 협업을 강조했다. 황 CEO는 “TSMC와는 25년 이상 협력해 왔고, 양사의 플래닝 조직이 하루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며 “루빈은 단일 칩이 아니라 여러 핵심 칩이 동시에 양산돼야 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파운드리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율주행·로보틱스로 이어지는 ‘피지컬 AI’


엔비디아의 로드맵은 데이터센터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황 CEO는 자율주행과 로보틱스를 차세대 AI 수요가 실제 산업으로 확장되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지목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엔비디아는 차량을 직접 만드는 대신, 학습·시뮬레이션·차량 내 추론을 아우르는 플랫폼 제공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황 CEO는 “엔비디아는 자율주행차를 만들지 않는다”며 “누구나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기술 플랫폼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스택은 ▲훈련용 AI 컴퓨터 ▲시뮬레이션용 컴퓨터 ▲차량에 탑재되는 자율주행 컴퓨터로 구성된다.

이번 CES에서 공개된 오픈 자율주행 추론 모델 ‘알파마요(Alpamayo)’는 이러한 전략을 상징하는 사례다. 알파마요는 엔드투엔드(end-to-end) 추론 기반 비전·언어·행동(VLA) 모델로, 센서 입력을 받아 다음 행동을 스스로 추론한다. 이 모델은 엔비디아 DRIVE 플랫폼을 기반으로, 메르세데스-벤츠의 차세대 CLA에 적용될 예정이다.

황 CEO는 자율주행 상용화 경로에 대해서도 비교적 명확한 그림을 제시했다. 그는 “핸드오버가 필요한 L2·L3 단계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L4 수준의 안전 아키텍처를 전제로 점진적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L4(Level 4)는 특정 조건과 구역 내에서는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주행을 완결할 수 있는 단계를 의미한다.

또한 엔비디아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포함한 로보틱스 산업에서도 ▲훈련 컴퓨터 ▲물리 시뮬레이션 컴퓨터 ▲로봇 내부 ‘브레인’ 컴퓨터라는 세 가지 컴퓨팅 계층을 제시했다. 데이터센터에서 학습된 모델을 가상 세계(Omniverse)에서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게 한 뒤 로봇에 탑재된 엣지 AI 칩에 넣는 방식이다.

황 CEO는 “로봇 산업은 단일 기술로 되는 것이 아니라, AI 팩토리·시뮬레이션·엣지 컴퓨팅이 동시에 성숙하면서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제조 현장, 물류, 의료 등 도메인 특화 로보틱스가 먼저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황 CEO는 중국향 AI 가속기 H200 출하와 관련해, 중국 정부의 별도 승인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중국 시장에서의 수요는 매우 높다”며 “이미 공급망을 재가동했고 H200은 생산 라인을 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단계는 미국 정부와 라이선스의 세부 절차를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해당 절차가 완료되면 출하가 곧바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H200 구매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황 CEO는 “중국 정부의 어떤 선언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그들의 법을 따르고, 우리도 미국 법을 따를 뿐 라이선스를 받으면 그 다음은 구매주문서(PO)가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