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전기차… EREV가 뜨고 있다
EV 시장 올해 예상 성장률 지난해 대비 8%p ↓ 전동화 속도 높일 대안으로 떠오른 EREV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친화적인 전기차
[녹색경제신문 = 이현성 기자]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의 높은 배터리 가격과 그로 인한 수익성 악화, 충전 인프라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EREV는 자동차 제조사가 전동화 전략을 유지하면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6일 에너지 전문 리서치 기관인 블룸버그NEF는 2026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가 2430만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20% 이상의 성장률을 예측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12%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판매량 자체는 계속해서 늘어나지만,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동차 제조사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전동화 전략은 그대로 유지하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EREV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EREV는 전기모터만으로 바퀴를 굴리는 전기차 종류 중 하나다. 하지만 발전기 역할을 맡는 엔진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 전기차와 차이가 있다. 주행 중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어 전기차의 잦은 충전 부담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보다 합리적인 가격도 EREV의 무기 중 하나다.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좌우하는 배터리 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리튬이온 배터리 팩의 kWh당 가격은 108달러였다. 높은 배터리 가격은 자동차 제조사에게 수익성 악화를 가져왔다. 가격 경쟁력을 챙기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찻값을 낮춰야하기 때문이다. 순수 전기차 대비 배터리 용량이 절반 수준에 그치는 EREV는 자동차 제조사의 부담을 크게 낮춰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보다 저렴한 가격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PHEV는 배터리를 모두 소진했을 때 엔진이 동력을 도맡는다. 따라서 엔진의 출력이 보장되어야 배터리가 모두 닳았을 때 운전자가 성능 저하를 느낄 수 없다. 때문에 엔진 제조 단가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 여기에 배터리 용량도 무작정 줄일 수 없어 제조사에겐 이중 부담이었다. 반면 EREV는 엔진 성능에 구애받지 않는다. 적당한 출력으로 배터리만 충전하면 그만이기에 값비싼 엔진의 필요성이 낮다.
EREV는 특히 픽업 트럭과 대형 SUV 전문 제조사에게 주목받고 있다.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은 무겁고 공기 저항이 큰 자동차에게 악순환을 가져온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배터리 용량을 키울수록 원가·중량·충전 시간 문제가 악화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까닭이다. 지난해 포드가 F-150 라이트닝을 순수 전기차에서 EREV로 노선을 변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23kWh 배터리를 품고도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500km에 그치는 트럭에 1억원 넘는 돈을 선뜻 지불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최근 스텔란티스그룹은 PHEV 모델 생산을 종료하고 EREV로 전동화 전략을 수정했다. 역시 수익성 악화가 문제였다. 지프 랭글러와 그랜드 체로키 등 크고 무거운 SUV를 견인하기 위한 고출력의 PHEV 시스템은 가격 상승을 불러왔고, 이는 판매 둔화로 이어졌다. 참고로 랭글러의 PHEV 모델은 내연기관보다 국내 판매 가격이 3000만원 정도 더 비싸다. 그랜드 체로키는 PHEV를 위해 1750만~2720만원 추가 비용이 뒤따른다.
현대차도 자동차 생태계에 일고 있는 EREV 파도에 합류한다. 지난해 ‘동력과 효율의 완벽한 조화, 하이브리드 그 이상의 전동화 경험’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테크 데이’에서 장기화된 전기차 수요 둔화(캐즘) 극복의 대안으로 EREV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순수 전기차보다 30% 이상 작은 배터리를 가지고도 900km 넘는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약속했다. 올해 싼타페 EREV 출시를 시작으로 제네시스까지 EREV 모델을 순차적으로 확대 적용할 전망이다.
EREV는 전기차의 이상과 시장의 현실 사이에서 제조사의 수익성과 소비자의 수용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가장 합리적인 해법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EREV가 단순한 과도기적 대안에 그치지 않고, 향후 수년간 전동화 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