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ESG 구조진단] 중하위권에 갇힌 증권사 ESG…기준 없는 평가의 한계 - 하

국내 증권사 80% 수준 ESG 중하위권 등급 쏠림 증권업 맞춤 기준 부재...평가만 고도화 글로벌 ESG 동력 약화..."정체 국면은 예고된 결과"

2026-01-07     정수진 기자

[녹색경제신문 = 정수진 기자] 국내 증권사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가 중하위권에 고착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평가 대상 대부분이 B·C 등급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최고 등급을 받은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를 개별 회사의 대응 부족이 아닌, 금융업에 맞는 평가 기준과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7일 한국ESG기준원이 발표한 2021~2025년 ESG 평가 결과에 따르면 평가 대상 증권사 중 상당 부분이 중하위권(B+, B, C, D) 등급에 집중돼 있다. 중하위권 등급 비중은 ▲2021년 79% ▲2022년 85% ▲2023년 79% ▲2024년 90% ▲2025년 80%로 집계됐다. 

A(우수) 등급을 받은 증권사는 소수에 그쳤고, A+(매우 우수)나 S(탁월) 등급을 받은 곳은 전무했다. ESG 평가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리스크 관리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증권업 전반 이상의 ESG 역량이 상위권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ESG기준원 관계자는 증권업계 전반의 등급 하락 배경에 대해 "금융감독원 제재 이력 등이 ESG 평가에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 ESG등급 정체의 원인으로 개별 기업의 제재 이력도 영향을 미쳤지만, 핵심 원인은 ESG 지표의 출발점이 금융업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을 비롯한 금융업은 탄소배출량, 산업재해, 공급망 인권 등 눈에 보이는 정량 지표가 많은 제조업과 달리,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준법경영 등 정성적이고 내부 시스템 중심의 요소가 평가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이에 증권업계 내부에서도 ESG 등급 변화의 구체적인 배경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실제로 복수의 증권사에 문의한 결과, 어떤 항목에서 감점 또는 가점이 이뤄졌는지, 평가 기준이 어떻게 적용됐는지 명확히 설명받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뭘 어떻게 해야 점수가 오르고 내리지는 모르겠는데, 평가 기준만 계속 높아지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ESG 평가가 '관리 지표'로서 작동하기보다는 결과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제도적 공백 역시 ESG경영에 대한 관심과 참여 저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대상 ESG 공시 의무화는 당초 지난해 시행 예정이었으나, 기업의 경영 부담을 이유로 올해로 연기됐다. 정부는 이달 중 공시 의무화 로드맵을 내놓을 전망이지만, 구체적인 시점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공시 공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허위·부실 공시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도 제한적이다. 

글로벌 환경 변화도 문제로 지목된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ESG 무용론이 확산되면서, 기업 가치 평가에서 ESG의 비중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 역시 과도한 ESG 규제가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우려 속에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및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부담 완화,  유럽연합(EU) 택소노미 등 주요 규제의 적용 시기 연기 및 의무 대폭 완화 등이 담긴 ‘옴니버스 패키지’를 도입하는 등 정책 기조를 조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증권사 ESG 등급이 중하위권에 머무는 현상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한영도 한에스엠연구원장(전 상명대 교수)는 "ESG는 처음부터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할 기업'을 걸러내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금융업을 평가 대상으로 삼을 때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정부나 금융감독원 차원에서 금융업 특성을 반영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은 데다, 글로벌 공조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개별 국가가 ESG 아젠다를 단독으로 추진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업만 상대적으로 부담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며 "국제 공조가 약화되고 제도적 기반이 미흡한 상황에서 평가 기준만 고도화되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방어적인 대응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현재의 ESG 등급 분포는 증권사들이 못해서라기보다, 구조적으로 상위 등급에 도달하기 어려운 환경을 반영한 결과"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