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권 살려놨더니 부동산 업자들이 ‘꿀꺽’…임대료 갑질에 울며 겨자먹는 유통업계
사람 몰리면 임대료부터 ‘들썩’ 가로수길·압구정로데오, 같은 공식의 반복 상권은 살고…장사는 숨이 찬다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나’만 잘될 때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옆 가게까지, 골목 전체가 함께 잘되기 시작하는 순간, 오히려 긴장하는 쪽은 유통업계다. 상권이 살아났다는 신호와 동시에 임대료 인상이라는 경고등이 켜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식·패션·뷰티 브랜드들이 공간을 채우고, SNS를 타고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임대료는 어김없이 움직인다. 성수동에서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굳어진 배경이다. 상권을 키운 주체와 그 성과를 회수하는 주체가 엇갈리는 구조는 이제 낯설지 않다.
압구정로데오는 이 공식이 반복된 대표 사례다. 지난 2023년만 해도 압구정로데오는 ‘상권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 이후 2030세대가 유입되며 카페와 맛집이 늘었고, 글로벌 스트리트 브랜드까지 들어서며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체감 분위기는 다르다. 주말 낮에도 한산한 구간이 눈에 띄고, 구매 중심의 알짜 매장보다는 브랜드 노출을 위한 쇼룸 성격의 매장이 주를 이룬다. 월 임대료가 1억원을 넘는 곳도 적지 않아 외식업은 물론 SPA 패션 브랜드조차 수익 구조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권은 유지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영업 환경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이 틈에서 존재감을 키운 곳은 성수다. 성수동은 대림창고를 기점으로 신흥 브랜드와 팝업스토어가 유입되며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렸다. 공장지대의 거친 공간을 콘텐츠로 바꾸고, 짧은 주기로 교체되는 팝업 매장들이 ‘계속 확인해야 하는 동네’를 만들었다. 내수 부진 속에서도 성수는 외국인 관광객 소비가 급증한 서울 대표 상권으로 자리 잡았고, 일부 패션 매장은 외국인 매출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성수 역시 임대료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무장길 일대는 평당 매매가가 4억~5억원에 달하고, 300평대 건물의 권리금이 18억원까지 치솟았다. 무권리 점포를 선택하는 대신 월 임대료 1억원 이상을 감수해야 하는 사례도 늘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매출보다 마케팅 효과를 보고 출점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상권을 키운 실험적 브랜드와 소규모 사업자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는 모습은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경로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임대료 상승을 단순히 ‘임대인의 갑질’로만 치부하기에는 임대사업자들의 고민도 깊다. 상권 가치가 오르면서 건물 매입가는 크게 뛰었고, 세금과 금융 비용 부담도 함께 늘었다.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서는 수익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임대인들의 현실적인 토로다.
이런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스타벅스를 둘러싼 임대료 분쟁이다. 스타벅스 매장을 보유한 일부 임대인들은 매출 연동형 임대료 계약에서 매출 산정 기준이 불투명하다며 법적 판단을 구했다. 구독 서비스와 카드 제휴 할인으로 발생한 할인액을 총매출에 포함해야 하는지, 매출 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지를 두고 이견이 커졌다. 임대인들로서는 ‘매출 기반 임대료’라는 계약 구조 안에서 실제 매출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불안이 누적된 셈이다.
이 사례는 특정 기업의 문제라기보다, 상가 임대 시장 전반에 깔린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매출 연동형 임대료가 확산된 상황에서 산정 기준과 정보 접근이 명확하지 않다면,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다. 임대사업자 역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갈등은 더욱 복잡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상권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점이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자본과 쇼룸만 남고, 실제 소비와 활력을 만들어내던 업종은 빠져나간다. 가로수길이 그랬고, 압구정로데오가 그 경계에 서 있다. 성수 역시 지금의 속도로 임대료가 오를 경우 같은 길을 걷지 말란 법은 없다.
상권은 부동산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 유통업계가 위험을 감수하고 공간에 콘텐츠를 채워 넣지 않았다면 지금의 ‘핫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임대사업자 역시 상권 가치 상승의 비용을 홀로 떠안고 있다. 어느 한쪽의 문제로 단순화하기에는 구조가 너무 복잡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뜨는 동네’가 아니라, 상권을 키운 주체들이 함께 버틸 수 있는 임대료와 계약 구조의 기준이다. 죽, 상권의 지속 가능성을 진지하게 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