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는 '쿠폰 보상' 밀어붙인 쿠팡... 그 뒤엔 '국제 소송' 계산기 있었다?

1.6조 원 규모 보상 강행, 왜?... 정부 제재 앞둔 '명분 쌓기' 포석 전문가들 "자발적 배상했는데 과징금 때리면 '이중 제재' 주장할 것" 한-미 FTA '투자자 분쟁(ISDS)'까지 염두에 둔 고도의 법적 방어막

2025-12-29     임채영 기자

[녹색경제신문 = 임채영 기자] "쓰지도 못할 쿠폰 줘놓고 1조 원 넘게 보상했다니 말장난 아니냐."

29일 쿠팡이 발표한 '총 1조 6850억 원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보상안을 두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 1인당 5만 원을 지급한다지만, 실상은 여행 상품이나 배달앱 가입을 유도하는 조건부 쿠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비난을 거두고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쿠팡의 이번 결정에는 치밀한 '법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법조계의 분석이 나왔다. 한 국제법 전문가에 따르면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쿠팡의 노림수, 바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절차(ISDS)'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시각이다. 

◇ '1조 6850억'이라는 숫자의 의미... "우리는 할 만큼 했다"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쿠팡이 굳이 '1조 685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보상 총액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통상 전문 변호사들은 이를 향후 정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의 법적 다툼을 대비한 방어 진지 구축으로 해석한다. 30일 청문회와 이후 이어질 제재 심의에서 "기업이 매출액의 상당 부분(약 12억 달러)을 털어 피해 구제에 썼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핵심이다.

보상의 형태가 현금이든 쿠폰이든, 법적으로는 '기업의 자발적 시정 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셈이다.

◇ 징벌적 과징금 떨어지면... 'ISDS' 뇌관 터진다

여기서 'ISDS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ISDS란 해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부당한 조치로 손해를 입었을 때, 해당 국가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를 요청하는 제도다. 미국 상장사인 쿠팡 Inc.는 한-미 FTA에 따라 이 제도의 보호를 받는다.

만약 개보위가 이번 보상안을 참작하지 않고,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이나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쿠팡 측은 국제 중재 법정에서 "이미 천문학적인 보상을 통해 피해를 갚았는데, 한국 정부가 또다시 거액을 걷어가는 건 '이중 처벌'이자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논리를 펼칠 수 있게 된다.

국제법상 정부의 규제가 기업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수준이라면, 이는 '간접 수용(Indirect Expropriation)'으로 간주돼 정부가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즉, 쿠팡의 이번 '쿠폰 보상'은 과징금 감경을 노리는 동시에, 최악의 경우 국제 소송전에서 정부를 압박할 '결정적 증거(Alibi)'를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 여론은 '꼼수'라지만... 법리적으론 '신의 한 수'?

결국 대중의 눈에는 '소비자 기만'으로 보이는 이번 보상안이, 법조계의 눈에는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히는 정교한 '덫'으로 보이는 이유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쿠팡은 지금 여론전이 아니라 법리전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국민 정서'를 앞세워 과징금을 강행할 경우, 쿠팡은 '국제 통상 규범'을 들고나와 판을 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단순한 '생색내기'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액수의 보상안. 그 이면에 숨겨진 'ISDS'라는 뇌관을 정부가 어떻게 해체할지, 30일 청문회 이후 전개될 상황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