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발행 컨소시엄' vs 카카오페이 '슈퍼월렛'…원화 스테이블코인 결제 주도권 싸움 본격화
-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앞둔 은행 8곳 합작법인 논의, 카카오페이 3단계 생태계 로드맵 공개 구상 - 컨소시엄–슈퍼 월렛–풀스택 3단계 구상…8개 시중은행 컨소시엄·합작법인·PoC로 인프라 구축 경쟁 - 발행 인프라 은행권·사용처 확장 빅테크 구도…법제화 방향 따라 역할 분담·이용자 경험 변화 전망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앞두고 은행권과 빅테크 간 주도권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중은행 8곳이 합작법인 설립을 통한 공동 발행 모델을 내부 논의하는 사이, 카카오페이는 공식 석상에서 컨소시엄–슈퍼 월렛–풀스택으로 이어지는 3단계 로드맵을 전면 공개했다. 발행 인프라를 앞세운 은행권과 사용처 확장을 내건 빅테크의 이해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설계 과정에서 정면으로 맞붙는 구도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 겸 카카오그룹 스테이블코인 공동태스크포스(TF)장은 전날 열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K금융 대전환' 심포지엄에서 카카오가 바라보는 '넥스트 파이낸스' 청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신 대표는 카카오그룹이 전국민 금융 서비스 운영 경험, 규제 대응 역량, 전자지갑 인프라, 활용 사례 밸류체인을 갖춘 만큼 관련 법·제도 정비 시점에 맞춰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빠르게 대중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이 8개 시중은행 합작법인 설립과 컨소시엄 논의를 내부적으로 진행하는 가운데, 플랫폼 사업자가 활용 사례와 파트너 밸류체인을 먼저 공식 석상에 올려놓은 셈이다.
신 대표가 제시한 로드맵은 '컨소시엄–슈퍼 월렛–풀스택 밸류체인'으로 이어지는 3단계 구조다. 첫 단계에서는 금융 당국의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충족하는 컨소시엄을 구축해 초기 활용 사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카카오페이·카카오뱅크는 물론 국내외 은행·핀테크·엔터테인먼트사·지역화폐 운영사·글로벌 플랫폼·다국적 기업 등을 잠재 참여자로 거론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법정통화·스테이블코인·암호화폐·지역화폐를 한 지갑에 담는 '슈퍼 월렛'을 통해 개인 간 송금, K팝·K컬처 결제, 지역 전통시장 거래 등 사용처를 확장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블록체인 기반 W2W(Wallet-to-Wallet) 구조로 크로스보더 송금·결제·B2B 정산을 실시간 처리하는 풀스택 밸류체인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앞두고 인프라 구축과 규제 대응 측면에서 내부 논의를 가속화하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지난 6월 회원사에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농협·기업·수협·iM뱅크·케이뱅크 등 8개 은행은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합작법인 공동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지분을 투자하고, 설립한 법인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되 준비자산은 은행에 예치·신탁하는 사업 모델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신한은행은 자회사 배달 서비스 '땡겨요' 결제에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하는 PoC(개념검증)를 검토하고, 농협은행은 해외 관광객 부가세 환급과 일본 팍스(JPYC)를 통한 한일 간 송금 실증을 진행하는 등 개별 서비스 접점에서 기술 검증을 병행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두나무와 협력해 외환·무역금융 영역 적용을 검토하고, 우리은행 등은 디지털자산 전담 조직을 통해 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커스터디 사업 모델을 점검하며 빅테크·거래소와의 파트너십을 모색하는 단계다.
이처럼 은행권이 합작법인 설립과 PoC를 내부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카카오페이가 3단계 로드맵을 공식 석상에서 전면 공개하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 경쟁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다. 은행권이 '합작법인 중심 공동 발행·인프라 구축'에 방점을 찍는 동안, 카카오페이는 '슈퍼 월렛·사용처 확장·글로벌 네트워크'를 전면에 내세워 강조점을 달리하는 모습이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규제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여전히 금융권 전반의 공통 과제로 남아 있다. 기초자산 편입 기준, 준비금 운용 방식, 발행 주체의 책임 범위, 이용자 보호 장치 등 핵심 쟁점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감독이 가능한 은행에 우선 발행 권한을 주고 비은행으로 단계적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자기자본 5억~10억원 이상이면 비은행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어서 향후 법제화 방향에 따라 은행권과 빅테크 간 역할 분담이 달라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제화 방향에 따라 은행과 카카오페이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가 관전 포인트"라며 "그에 따라 사용자의 결제·송금 경험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뒤따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