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호 삼성 부회장 2선 후퇴...‘관리의 삼성’서 ‘기술의 삼성’으로
삼성전자 “정 부회장 자진 퇴진, 회장 보좌역 수행” 사업지원TF 수장...관리기조서 적극 투자 선회 분석
[녹색경제신문 = 문슬예 기자] 삼성전자가 7일 사업지원TF 사장단 및 임원 위촉업무 변경 인사를 단행하면서 삼성의 '실세'로 꼽히던 정현호 부회장의 거취에 이목이 쏠린다. 정 부회장은 이재용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정현호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이재용 회장 보좌역으로 이동한다. 임시조직이었던 사업지원TF는 상설조직인 ‘사업지원실’로 전환된다.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사실상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사업지원TF는 업무 범위 축소 내지는 격하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정 부회장은 2017년부터 사업지원TF를 맡아 그룹 전반의 '트러블슈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정 부회장은 198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재무, 경영관리 분야를 장기간 담당한 그룹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2017년부터 삼성그룹 핵심 컨트롤타워인 사업지원TF를 총괄하며 ‘관리의 삼성’의 대명사격으로 통했다.
이번 2선 후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HBM(고대역폭메모리) 투자 시점 실기와 범용 D램 공정 전환 지연 등 반도체 전략의 책임론이 배경에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2018~2019년 HBM(고대역폭메모리) 관련 기술이 종기원 등 삼성전자 내부에서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제안됐으나 사업지원TF 선에서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유관조직을 축소하고, 개발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뒤늦게 이에 대한 책임을 정 부회장이 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HBM 투자 실기로 경쟁사 대비 시장 진입이 대폭 늦어진 데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이야기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문책성 인사 해석을 부인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해 들어 실적이 안정화되고 사업 전반이 개선되는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후진 양성을 위해 스스로 퇴진 의사를 밝혔다”며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나지만 회장 보좌역으로 업무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책임을 지는 차원의 인사가 아니며 원래 있던 자리와 옮겨가는 자리의 무게가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 역시 “위촉업무 변경으로 나온다면 업무의 변동일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그 의미를 외부에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사를 계기로 삼성전자가 HBM 시장 탈환을 위해 '관리의 삼성'에서 '기술의 삼성'으로 그룹사 컨셉을 전환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간 1위 사업자 수성을 위한 브레이크가 중용됐다면, 이제는 AI 초격차를 위한 액셀러레이터가 필요한 시기라는 이야기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총 133조원을 투자하고, 올해만 47조 가량의 CAPEX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플랜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인사조치를 계기로 또 다른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 재임기 삼성전자가 HBM 투자 타이밍에서 SK하이닉스에 기술 우위를 내줬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이번 변화는 관리보다 기술 역량을 중시하는 기조로의 전환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날(7일) ▲정현호 부회장은 회장 보좌역으로, ▲박학규 사장은 사업지원실장으로, ▲최윤호 사장은 사업지원실 전략팀장으로, ▲주창훈 부사장은 경영진단팀장으로, ▲문희동 부사장은 People팀장으로 각각 위촉업무가 변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