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칼럼] 2조원 짜리 해프닝

2025-10-28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기자

지난 27일 장 마감 후 시장에 작은, 혹은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작거나 큰' 이라는 형용모순을 쓴 까닭은 해당 소동이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시장에 미친 파장이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죠. 일부 매체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향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퀄테스트에서 '탈락' 했다는 단독 보도를 내면서 마감 후 시장이 출령였던 겁니다. 

해당 보도에서 기자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진행하고 있는 퀄(양산 전 품질인증) 테스트에서최종 탈락했으며, 5세대 HBM인 HBM3E 역시 납품도 최종 좌절됐다면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당분간 HBM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이어갈 거라고 썼습니다. 

사실이라면 HBM 시장은 물론 D램 시장 지형도에도 엄청난 충격파를 던질 수 있는 내용입니다. 기사가 나간 후 시간 외 거래에서 3~4% 가량 빠지면서 '십만전자' 복귀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삼성전자 시총이 600조원 가량이니 기사 하나가 약 2조원을 움직인 셈입니다.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증거죠. 기사는 표출 이후 빠른 속도로 삭제됐습니다.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오보 내지는 오류를 인정하고 내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엄청난 단독 해프닝을 벌인 만큼 상응하는 책임도 뒤따를 거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실제 기사는 몇 가지 점에서 약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엔비디아와 퀄 피리어드를 길게 끌어온 것은 맞지만, 이미 HBE3E(12단)는 지난달 퀄 테스트를 통과해 출하를 시작했고, HBM4의 경우 지난달 샘플이 들어간 상황인데 최소 3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1개월 만에 퀄 결과가 나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AI 가속기 '루빈' 향 HBM4 수요가 내년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솔벤더 지위를 특정 회사에 안기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삼성전자와 오랜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장비사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역시 오보로 모아집니다. HBM 양사와 모두 거래하는 모 대표자의 경우 기사의 '어떤 저의'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오보 내지는 오류를 비판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철통 같은 NDA(비밀유지협약)이 체결돼 있는 반도체 기술 이슈를 취재하는 데 있어서 오보는 병가지상사 같은 존재입니다. 늘 동반되는 이슈이죠. 옳은 이야기도, 그른 이야기도 취재처의 확인이 불가합니다. 실제 삼성전자는 퀄 테스트를 장기간 진행하면서 발열, 전력제어 등의 이슈가 불거진 적이 있습니다.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죠. 

다만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가 수행하고 있는 업무와 제품의 산업적 중요도를 고려할 때 이런 보도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마부위침)으로 칠중, 팔중의 필터링을 거쳐도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속구가 아니라 제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죠. 제구가 되지 않는 속구는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뻔한 말이지만, AI 반도체는 단순한 반도체가 아닙니다. 이미 경제, 사회, 정치, 군사적으로 AI 칩과 가속기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TSMC와 창업자 모리스창이 대만의 '호국신산(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불리는 까닭이 있습니다.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방패(실리콘 실드)라는 이야긴데, 이건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 TSMC의 존재와 업무 자체가 대만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TSMC는 애플의 오랜 파트너이기도 하면서 엔비디아, AMD, 퀄컴, 인텔 등이 고사양 칩의 위탁 생산을 전담하고 있는 글로벌 최대 파운드리입니다. 500곳 이상의 글로벌 고객사와 거래하고 있습니다. 최소 500개 이상의 극비 레시피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죠.  

유사시 공격을 받게 된다면 미국이 자동 개입하는 동시에 미군은 TSMC의 설비를 보호하는 작전계획을 발동하게 됩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것처럼 대만은 칩이 철선을 대신하는 이치죠. 중요한 건 중국의 AI 테크(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등도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점입니다. TSMC 역시 중국에 일부 자회사(상하이, 난징)를 두고 있습니다. 대만 정부는 밉지만, TSMC는 미워할 수 없는 게 중국 정부의 딜레마입니다. 산업이 전쟁 억지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겠네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한국의 호국신산이 될 수 없을까요? 이미 충분하다고 봅니다. 만약 AI GPU 영역의 두뇌를 담당하고 있는 K-반도체가 유사 상황에 빠져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거대한 산업의 맥이 끊길 수 있습니다. 인피언, NXP 등 차량용 반도체 쇼티지로 자동차 출고가 장기간 지연됐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쉽습니다. 한 국가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TSMC 만큼은 아니지만, 위탁 생산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최선단 노드인 2나노 공정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인정하든 못하든 이미 AI 분야에서 한국의 호국신산이 된 거대 메이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감을 갖고 정보에 접근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특정 회사, 산업이 아니라 인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말이죠. <녹색경제신문>부터 다시 옷깃을 여미겠습니다. 테크에 대한 열정은 담지하되, 전체적인 산업의 틀 안에서 균형감 있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속구 보다 제구!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