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LG 공장 단속, 미국 역사상 최대…한국 대기업 민낯 드러내
미국 현대·LG 공장 단속, 미국 역사상 단일 사업장 최대 규모 기록 "합법이라 믿었다"…피해는 노동자에게 전가 정부의 미온적 대응, 골든타임을 놓치다 책임 회피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최근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진행된 이민 단속에서 약 475명이 억류됐다. 이는 미국 역사상 단일 사업장 단속 기준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억류된 인원 중 300명 이상이 한국인으로 확인되며, 이번 사건은 단순한 불법 이민 문제를 넘어 한국 대기업의 무책임한 하청 구조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공분을 사고 있다.
"합법이라 믿었다"…피해는 노동자에게 전가
억류된 한국인 노동자 상당수는 자신이 불법 체류자 신분임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법률 전문가인 김진호 변호사는 "인력 알선업체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거짓 정보로 구직자들을 모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의 촉박한 공정 일정에 맞춰 하청업체들은 충분한 신원 확인 절차 없이 인력을 고용했고, 결국 그 피해는 아무것도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교민 사회에서는 단속 이후 생활 기반을 잃은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당장의 생계는 물론, 거주 문제까지 겪으며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미온적 대응, 골든타임을 놓치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과거 대규모 이민 단속 사례를 보면, 태국, 멕시코, 과테말라 등은 단속 직후 영사와 법률 지원단을 현지에 급파하며 자국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초기 대응이 늦고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선영 국제노동법 전문 교수는 "해외에 있는 자국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이번에도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의 책임 공방을 지켜보느라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추후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책임 회피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대기업의 무책임한 하청 구조에서 찾고 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공사 일정을 하청업체에 강요했고, 하청업체들은 다시 재하청과 인력 알선업체로 그 압박을 떠넘겼다. 결국,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노동인권단체 '글로벌 워커스'의 이민준 대표는 "현대차와 LG는 자신들의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넘어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글로벌 기업이라면 하청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기업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단속 사건은 단순히 불법 체류자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드러냈다. 이제 한국 정부와 기업은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 구제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