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싸게 팔면 욕먹는 사회... 혐오가 시장을 지배할 때, 경제는 설 자리를 잃는다
가격 실험도 비난받는 사회, 시장은 어디로 가는가 감정이 앞서는 경쟁 구도, '혐오 경제'가 만든 풍경 싸게 팔면 ‘꼼수’, 잘 팔리면 ‘갑질’… 혁신이 설 자리는 없다
[녹색경제신문 = 서영광 기자] 990원짜리 소금빵이 일으킨 파장은 단순한 가격 논쟁이 아니었다.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시도는 당연히 박수받아야 할 일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유튜버니까 가능한 거잖아.” “자영업자 다 죽이려는 거 아냐?” “IPO(기업공개) 하려고 사람들 현혹하는 거 아니냐.”
값싼 빵 하나가 던진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싸게 팔면 나쁜 사람인가?’
이번 논란의 본질은 시장 논리보다 감정 논리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 자영업자의 생존 현실은 분명 엄중하다. 고정비는 치솟고, 인건비는 매년 오르며, 원재료 수급도 쉽지 않다. 그 위에 대형 유튜버가 등장해 “우린 싸게도 팔 수 있다”고 말하면, 불안이 분노로 바뀌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시장 실험 자체를 죄악시하고, 도전한 사람을 정서적으로 응징하는 흐름으로 번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혁신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슈카월드는 말했다. “빵플레이션 시대에 가격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원가 절감, 단순 포장, 유통 구조의 축소는 경제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가격 전략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혁신에 대한 기대나 박수가 아니라, “자영업자들 다 망하라는 거냐”는 분노와 “유튜버라서 가능하지”라는 질타였다.
싸게 팔아도, 잘 팔려도, 혁신을 해도 “너는 왜 가능하냐”는 추궁이 이어지는 사회.
그 순간, 시장은 실종되고 ‘혐오’가 거래의 기준이 된다.
이 감정은 사실 혐오보다는 불안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더 싸게 파는 걸 보며 “나는 왜 저렇게 못하지”라는 자기검열, 혹은 “내가 뒤처지는 건 아닐까”하는 위기의식은 결국 경쟁자를 향한 감정적 응징으로 흘러간다.
그렇기에 누가 혁신해도, ‘꼼수’ ‘쇼’ ‘홍보’라는 의심의 말이 먼저 돌아온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결국 누구도 실험하지 않고, 누구도 창업하지 않으며, 시장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중국은 싸서 무섭고, 한국은 싸서 욕먹는다
초저가 중국산을 판매하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같은 플랫폼들이 국내 공산품 시장을 잠식해 와도, 우리는 “동네의 작은 문방구나 철물점들이 다 죽었다”고 이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가격차이는 인건비 격차 때문이라는 걸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국내에서, 비슷한 논리로 가격을 낮추면, 그는 규탄의 대상이 된다. 특히 시장 논리를 들이대기 보단, ‘감히 네가 그걸 하냐’는 감정이 우선하는 풍경이다.
이 사회는 점점 ‘성공’보다 ‘공정한 실패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초저가 실험은 ‘갑질’로, IPO는 ‘먹튀’ 프레임으로, 창업은 ‘허황된 꿈’으로 치부되기 쉽다.
물론 모든 시장 실험이 선한 것도 아니고, 모든 자영업자가 과잉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가 잘못했는가’보다는 ‘무엇이 위험한 흐름인가’를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시장에는 실패가 있을 수 있어도, 혐오가 기준이 되는 순간, 모두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시장은 감정의 전쟁터가 아니다. 감정이 기준이 되면, 그 시장은 결국 다 함께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