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칼럼]삼성 파운드리, 애플·테슬라 수주로 ‘굴기’…이재용 式 ‘기와 식’ 승부

2025-08-12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기자

대만 TSMC의 창립자인 장중머우(모리스 창) 회장은 세계적 리더의 조건에 대해 '기(器)'와 '식(識)'으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기는 그릇, 골격, 뼈대를 뜻하는 말이고 식은 식견, 전문지식 등을 뜻합니다. 풀어 말하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념과 원칙이라는 그릇 안에 전문식견을 담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겠죠. 

실제 장중머우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1세대 '구루'로 평가됩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죠. 1950년 대 미국 MIT공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뒤 27세에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입사, 25년 간 재직하며 IC부문 사장, 글로벌 반도체 그룹 사장, 본사 수석 부총재 등을 지내며 반도체의 중흥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그는 잘 알려진 대로 대만으로 돌아와 1987년 TSMC를 설립, 약 40년 간 TSMC를 전면에서 이끌었습니다. 

본인이 리더의 조건으로 제시한 바와 같이 그 역시 무섭도록 단단한 신념과 전문식견을 겸비한 '철인'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미국, 일본이 장악하고 있던 대형 웨이퍼 IDM 틈바구니에서 외주 생산형 파운드리 모델을 들고 나왔죠. 칩 제조의 전문성이 고도화되고, 고객사의 니즈가 다변화되면 자연스럽게 외주형 파운드리의 시대가 온다고 확신한 겁니다. 결과는? 그가 창조했다고 해도 좋을 글로벌 파운드리업계는 현재 TSMC가 70% 가량(퓨어 플레이 파운드리 기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성전자가 분전하고 있지만, TSMC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장중머우는 철저한 보안의식과 성실성을 절대 원칙으로 삼고, 고객우선 주의로 글로벌 IT 고객사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파운드리 특성상 주문자 IC 설계자산 보안이 해당 업의 흥망을 결정하는데, 장중머우는 이 가치를 말단 엔지니어까지 체화할 수 있도록 끊임 없이 요구했습니다. 일례로 엔지니어들은 근무 중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을 반입, 사용할 수 없었고 화장실을 가는 것 역시 출입카드를 통해 통제됐죠. 이 규정을 반복해 어기면 회장인 장중머우에 직보되기도 했습니다. 해당 직원의 말로는 뻔했죠. 전설의 '6공장'도 이런 철학의 산물입니다. 

보안 결벽주의에 가까운 사풍은 결국 애플의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2011년 당시 애플은 삼성 모바일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탈 삼성'을 외치고 있었지만, 삼성 파운드리가 쥐고 있던 IP 탓에 이를 타사에 이전하는 게 쉽지 않았죠. 하지만 장중머우는 애플을 설득하는 한편, 예속 IP를 2년에 걸쳐 서서히 TSMC로 이전, 삼성과의 분쟁을 최소화하면서 고객사의 신뢰를 획득합니다.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의 판도를 뒤바꾼 'A8' 수주의 모먼트입니다. 이전까지 삼성 파운드리가 독식하던 아이폰 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TSMC가 가져오면서 현재까지 애플과 TSMC는 혈맹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애플 향 매출액만 25% 수준입니다. 

장황하게 장중머우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은 최근 삼성전자 발 낭보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부문 최대 적수였던 애플의 이미지센서를 삼성 파운드리로 가져 오면서 애플과 '뜨거운 재회'를 도모하는 모습입니다. 비록 AP는 여전히 TSMC가 독식하고 있지만, 이미지센서 수주를 둘러싼 업계의 평가는 뜨겁습니다. 그간 소니가 독점하고 있었던 영역이죠. 삼성은 성공한 바가 없었던 3단 패키징 결합에 4픽셀을 묶은 하이브리드셔터 기술을 채택해 플리커(검은선), 젤로 이펙트(흔들림) 등을 모두 잡았다는 후문입니다. 인물은 아이폰, 풍경은 갤럭시라는 도식이 수정될 것 같군요. 

여기에 테슬라의 AI 기반 고사양 SoC(AI6)의 대형 수주까지 따 내면서 TSMC에 대항하는 파운드리 명가를 재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텍사스 오스틴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최선단 공정인 2나노 공정으로 생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TSMC가 보안을 이유로 미국이 요구하는 '역내 생산'에 미적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먼저 화답하고 있는 모양새군요. 반도체 관세라는 역풍 속에서 결정권자의 유연한 대처가 빛났다는 평가입니다.   

1989년 경 故 이건희 회장을 만났던 장중머우는 그를 두고, 반도체 업계의 거인이자 가장 두려운 경쟁자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의 말대로 이 전 회장은 메모리 제국을 건설한 거인으로 기록됐죠. 94세로 여전히 건강한 것으로 알려진 장중머우는 거인의 아들을 두고는 어떤 평가를 할까요. 선친의 강단과는 결이 다소 다르지만, 나름의 유연한 '기(器)'와 '식(識)'을 토대로 파운드리 부문의 무서운 경쟁자가 되리라 보지 않을까요? 이재용 회장은 파운드리 성장에 대한 갈망(hungry)가 크다고 여러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