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은행, 중기대출 '소극적'·대기업대출 '적극적'... 밸류업 '부작용' 현실로?
4대 은행, 상반기 중기대출 잔액 전년 말 대비 0.03%↓... 대기업대출은 5.45%↑ 소호대출 잔액은 1.29%↓... 중기·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자금 공급↓ 금융지주 '밸류업' 위해 자본비율 관리... '위험자산' 중기대출 제한적으로 취급 하반기는 중기대출 조금씩 살아날 듯... 이 대통령 "주담대 말고 투자 확대에 신경써달라"
[녹색경제신문 = 이준성 기자] 4대 시중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이 올 들어 대기업대출은 적극적으로 늘린 반면 개인사업자대출(소호대출)을 포함한 중소기업대출은 줄이거나 제한적으로 취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하반기부터는 은행권의 중기대출이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뒤따른다.
1일 <녹색경제신문>이 4대 시중은행의 실적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이들 은행의 올 상반기 기업대출 잔액은 73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말 대비 1.26% 늘어난 규모다. 은행별로는 이 기간 국민은행(191조4000억원·2.46%↑)과 하나은행(171조5000억원·3.18%↑)은 기업대출 잔액이 증가했으며, 신한은행(180조6000억원·0.05%↓)과 우리은행(187조8000억원·0.37%↓)은 감소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전체 기업여신 잔액 증감과는 별개로 이들 은행 대부분이 대기업대출은 활발하게, 중기대출은 소극적으로 취급했다는 점이다. 먼저 우리은행은 이 기간 대기업대출 잔액이 11.97% 증가했지만 중기대출 잔액은 5.47% 감소했다. 대출 잔액이 감소했다는 점은 은행이 새로 내준 대출 규모가 기존 대출 상환액보다 작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하나은행과 국민은행 역시 대기업대출 잔액이 각각 6.81%, 2.63% 늘어나는 사이 중기대출 잔액은 2.29%, 2.4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들 은행 가운데 신한은행만이 대기업대출(1.49%↓)보다 중기대출(0.35%↑)의 증가율이 높았다.
특히 이들 은행은 중기대출 중에서도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소호대출을 취급하는 데 한층 더 소극적이었다. 같은 기간 우리·하나은행의 소호대출 잔액은 각각 9.47%, 0.69% 줄었으며, 국민·신한은행은 소호대출 잔액이 0.72%, 1.17%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이에 따라 이들 은행의 소호대출 잔액은 지난해 상반기 270조원에서 올 상반기 266조5000억원으로 1.29%, 중기대출 잔액은 553조9000억원에서 553조7000억원으로 0.03% 각각 쪼그라들었다. 이 기간 대기업대출 잔액이 164조9000억원에서 173조9000억원으로 5.45% 불어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4대 시중은행이 이처럼 중기대출 대신 대기업대출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재작년부터 정부 주도로 진행 중인 밸류업 정책이 자리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들 은행의 모회사인 금융지주가 밸류업 계획을 추진하려면 보통주자본(CET1)비율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가계대출·대기업대출 등에 비해 '위험한' 자산인 중기대출이 늘어날 경우 CET1 비율이 하락할 수 있는 만큼 각 은행 입장에서는 중기대출을 소극적으로 취급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일정치 이상의 CET1 비율을 기반으로 주주환원을 확대하겠다는 밸류업 계획을 실행 중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들로서는 가파르게 상승 중인 중기대출 연체율에 지주의 밸류업 계획까지 고려해야 한다"라며 "(은행들이)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 등에게 대출을 적극적으로 내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밸류업 정책이 중기 자금 공급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덧붙였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하반기부터 은행권의 중기대출이 조금씩 살아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가계대출은 조이고, 중기·소호대출은 장려하는' 기조를 유지 중인 데다가, 이재명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은행 등 금융권을 겨냥해 '투자 확대'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내 금융기관은) 손쉬운 주택 담보대출 같은 이자 놀이, 이자 수익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시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정부 기조와 호흡을 맞추고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인한 수익성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다시금 기업여신 확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변경하는 분위기"라며 "대기업대출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상반기보다는 중기·소호대출 취급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은행들이 중기·소호대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CET1 비율과 관련한 규제 완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