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발목 잡힌 토큰증권 법제화…금융업계 ‘탄식’

여야 이견 없는 STO 법안, 또다시 국회서 논의 불발 인프라 선제 구축한 증권, 입법 지연에 사업 회의감

2025-07-24     정수진 인사이트녹경 기자

[녹색경제신문 = 정수진 인사이트녹경 기자] 디지털자산 제도화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토큰증권(STO) 법제화가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제도 정비를 믿고 수년간 사업 기반을 준비해 온 금융투자업계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입법을 전제로 인프라 구축에 나섰던 증권사들은 조직을 축소하거나 사업을 보류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업계에선 “STO는 아직 멀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여야 쟁점 없는데도...STO 법제화 또 불발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 STO 관련 법안 5건이 상정됐지만, 먼저 논의된 타 법안들의 심사가 길어지며 결국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입법화 기대감이 높았던 만큼 실망감도 컸다.

이는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는 흐름이다. STO 법안은 여야 간 쟁점이 없고, 정부의 디지털자산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어 조속한 처리가 예상됐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고 있다. 제도화가 번번이 지연되면서 정책 신뢰도에 금이 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은 "8월 중 법안 처리를 재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내 경제공부 모임인 ‘경제는민주당’에서 "21일 STO 법안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밀렸다"며 “8월에는 (정무위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복되는 지연에 증권사 STO 팀 축소·폐지 

하지만 반복되는 일정 변경과 후순위 배치에 업계의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지난 2년간 STO 시장 개화를 기대하며 전담 조직을 꾸리고 플랫폼 구축, 심사 프로세스 설계, 기술 제휴 등 사전 작업에 속도를 내왔다. 2023년부터 미래에셋증권은 SK텔레콤·하나금융그룹과 함께 '넥스트파이낸스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고 자체 STO 메인넷 개발을 완료했다. 하나증권도 같은 해 디지털사업본부 산하에 디지털자산팀을 꾸려 토큰증권 등 디지털 자산을 총괄하고 있으며, 한국투자증권도 카카오뱅크·토스뱅크 등과 함께 ‘한국투자ST프렌즈’ 협의체를 결성해 STO 생태계 조성에 나선 바 있다. 

이 외에도 NH투자증권도 'STO 비전 그룹'을 구성했으며, KB증권은 'ST 오너스' 협의체를 구성했으며, 키움증권은 페어스퀘어랩과 'STO 기술 인프라 공동 구축'을 진행 중이다. 신한투자증권과 SK증권도 '펄스'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화가 장기 표류하면서 사업 방향을 재검토하는 증권사가 늘고 있다. 인프라 구축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거래·결제·예탁 시스템은 물론, 신탁, 보안, 실명 인증, 투자자 보호 시스템까지 포함하면 STO 플랫폼 구축에만 1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STO 업계 관계자는 “전담 조직을 운영하던 일부 증권사는 해당 조직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했다”며 “STO 담당자가 교체되거나 다른 업무로 배치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KB증권은 STO 부서를 디지털자산사업추진단 산하로 이동시켰으며, 삼성증권은 STO 태스크포스(TF)를 팀 단위로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설계해도 무용지물...전면 수정 고려

유통 인프라 구축을 맡고 있는 코스콤 역시 입법 지연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코스콤 관계자는 “아직 유통 플랫폼은 구축하지 않았다”며 “법안 통과 후 시행령이나 세칙에 따라 핵심 요소들이 바뀔 수 있어, 지금 시스템을 설계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플랫폼을 먼저 구축했지만, 제도 변화로 인해 전면 수정을 고려하는 상황이다.

다만 코스콤은 일정 부분 제도화 방향이 명확해진 ‘발행 플랫폼’은 선제적으로 구축을 마쳤다. 예탁결제원과 함께 총량관리 테스트도 완료한 상태다. 현재 코스콤과 STO 발행 플랫폼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증권사는 키움증권, 대신증권, 유안타증권, IBK투자증권, BNK투자증권, DB증권 등 총 6개사다.

현실 적용도 어려워...조각투자로 방향 전환 고민

STO 법제화의 또 다른 쟁점은 ‘취급 가능한 증권 범위’다. 현행 입법안은 STO 발행 대상을 신종증권으로만 제한하고 있어 현실 적용이 어렵다는 비판이 업계에서 끊이지 않는다. STO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구조로는 STO를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이 거의 없다”며 “해외처럼 채무증권, 수익증권(펀드) 등 집합투자증권까지 발행 대상이 확대돼야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통망을 깔아도 실제 자산이 올라오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제도 설계의 현실 인식을 강조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STO에서 한발 물러나, 입법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조각투자’ 형태의 대체 투자상품 개발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STO 업계 관계자는 "STO는 준비만 하고 실제 발행을 못 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제도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영역에 자원을 우선 투입하려는 판단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나증권, SK증권, 대신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이 부동산, 미술품 관련 조각투자 플랫폼과의 전략적 제휴를 확장하고 있다. 

조각투자는 투자자 간 공동 소유 형태로 실물자산을 분할해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구조지만, 법적 의미에서의 ‘증권’은 아니다. 반면 STO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기존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으로, 자본시장법상 증권에 해당해 발행과 유통 모두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한편 일각에서는 “쟁점 없는 법안이므로 다음 회의에선 통과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되지만, 이미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논리로 논의가 미뤄지다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전례가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에도 밀리면 내년 총선 전까지는 사실상 논의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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