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권고'에도 3곳만 대표이사·의장직 분리…증권업계 이사회 독립성 개선 '걸음마'
- 금감원 '견제 기능 작동 안 해' 지적에도 업계 변화는 제한적 - KB증권·메리츠증권 등 3개사만 의장직 분리…신한투자증권은 대체 방안 도입 - 전문가들 '이사회 독립성이 지배구조 개선 출발점'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증권사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겸직 관행을 지적한 뒤 KB증권·메리츠증권 등 세 곳이 의장직을 사외이사에게 이양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문제를 제기한 27개 금융투자회사 중 11곳이 겸직 중인 상황에서 3곳만 개선했을 뿐, 나머지 8곳은 여전히 겸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최근 김성현 대표가 겸직하던 이사회 의장직을 양정원 사외이사에게 이관했다. 메리츠증권도 장원재 대표이사에서 이상철 사외이사로 이사회 의장을 교체했으며, KB자산운용 역시 김영성 대표의 의장직을 장병화 사외이사가 승계했다.
이들 회사가 이 같은 변화를 선택한 것은 금감원의 강력한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5월 대형 금융투자회사와 보험사 53개사를 대상으로 한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컨설팅에서 25개사(47.1%)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금융투자회사의 경우 27곳 중 11곳(40.7%)이 겸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이사회 의장이 대표이사의 내부통제 총괄 관리 의무를 감독해야 하는데, 같은 인물이 두 역할을 겸할 경우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변화에 나선 회사들은 공통적으로 '금감원 검토 결과 반영' 또는 '책무구조도 컨설팅 의견 수용'을 변경 사유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가 기업지배구조의 핵심 원칙이자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고 강조한다.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와 경영진, 주주 간 원활한 소통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직할 경우 자기 자신을 감독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사회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가치 제고를 위해 실효성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감독 대상과 감독 주체가 동일한 상황에서는 독립적인 경영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이사회 구성의 독립성과 감독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를 권고하고 있다.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자 독립적인 경영 감독 기구로서 제 역할을 다하려면 구조적 독립성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변화의 속도는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대형 증권사 가운데 신한투자증권의 이선훈 대표이사와 한국투자증권의 김남구 회장이 여전히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금감원이 지적한 11개 회사 중 3개사만이 변화했을 뿐, 나머지 8개사는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겸직을 유지하는 회사들에게 이사회 산하 내부통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등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장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신한투자증권이 이사회 내 소위원회인 내부통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해 이해상충 해소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가 지배구조 개선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사회가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감독하려면 독립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ESG 업계 관계자는 "3개사의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전체 업계 관점에서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며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더 많은 회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