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보험업계 구조적 위기' 진단…”건전성 패러다임 확 바꿔야“

- IFRS17 도입 2년 만에 생보사 K-ICS 비율 190.7%로 급락 - 최종관찰만기 확대 일정 재검토…8월 중 시행방안 확정 - 자산-부채 듀레이션 관리 강화 규제 도입 검토

2025-07-02     나아영 기자
금융감독원.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금융당국이 보험업계 건전성 위기에 대응해 관리 체계를 전면 재편한다. IFRS17 도입 2년 만에 생명보험사 K-ICS 비율이 190.7%까지 하락하면서 업계 전반의 건전성 악화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중장기 관점에서 건전성 관리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유관기관·연구기관·보험회사·보험협회·시장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보험산업 건전성 TF' 1차 회의가 개최됐다. 이번 회의에서는 IFRS17 시행경과 및 보험산업 리스크 관리방향과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 계획 이행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생명보험사의 K-ICS 비율은 2022년 말 206.4%에서 2025년 1분기 190.7%로 15.7%포인트(p) 급락했다. 손해보험사도 2023년 말 231.4%에서 2025년 1분기 207.6%로 23.8%p 하락하며 업권 전반의 건전성 악화가 확인됐다.

회의 참석자들은 2023년부터 시행된 IFRS17 회계기준이 보험사 경영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진단했다. 보험부채 평가가 원가에서 시가로 전환되고 손익 인식이 현금주의에서 발생주의로 바뀌면서 제도 정착 과정에서 다양한 파급효과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IFRS17 도입 초기인 2022~2023년 글로벌 긴축으로 시장금리가 높게 형성된 특수 상황이 현재의 위기와 연결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장기 미래 추정손익(CSM)의 일부가 당기 이익에 반영되면서 CSM이 크게 인식되는 장기보장성 상품 중심으로 판매 경쟁이 격화됐고, 이후 금리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건전성 부담이 급증하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보험사의 건전성 부담 증가 원인으로 지속적인 시장금리 하락과 IFRS17 도입 이후 장기보장성 상품 판매 쏠림 현상을 지목했다. 아울러 보험사 자체적인 계리 가정 설정이 가능해지면서 가정 적절성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고, 사업비 비용처리가 이연되면서 사업비 지출이 증가하는 등의 구조적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현재의 건전성 위기가 단기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의 산물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향후 고령화 심화로 시장금리 하락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둔화로 보험사의 수익성 기반도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의 건전성 부담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만큼 보다 긴 시계에서 건전성 관리 강화와 건전성 지표의 연착륙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안창국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중장기적으로 보험사의 건전성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기 위해 자산·부채 평가제도, 건전성 규제 제도, 보험사 정리제도, 보험사 수익 다변화를 위한 규제 개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 중 보험산업 건전성 TF를 통해 기본자본 규제 도입, 계리가정 선진화, 보험회사 정리제도 개선 등 핵심 정책과제를 구체화할 방침이다. 특히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보험사의 역할 확대 방안으로 요양 산업, 헬스케어 등 보험과 시너지가 큰 업무 영역으로의 진출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받은 의제는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 계획의 시행 일정 재검토였다. 최근 시장 일각에서 시장금리 하락 흐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할인율 현실화 등 제도적 효과가 중첩될 경우 건전성 지표의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최종관찰만기를 30년까지 확대하는 기본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보험사의 건전성 연착륙을 위해 시행 속도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왔다. 2024년 최종관찰만기 시행일정을 2025년 전부시행에서 2025~2027년 분산시행으로 조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회의에서는 최종관찰만기 시행 일정 조정을 위한 세 가지 대안이 검토됐다. 현행 계획 유지 방안, 매년 금융위·금감원 논의를 통해 최종관찰만기 확대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 최종관찰만기 확대 계획을 사전에 확정하되 시행 일정을 현재 3년 분산보다 장기화하여 보험사의 건전성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 등이다.

특히 최종관찰만기 확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국고채 30년물 금리가 10년~20년물에 비해 낮게 형성돼 있는 시장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금융위·금감원은 TF 참여기관들을 포함한 보험업계와 시장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8월 중 시행 일정 조정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보험사 건전성 위기의 근본 원인을 자산-부채 듀레이션 구조의 취약성으로 진단했다. 듀레이션은 금리 100bp 변동 시 자산·부채의 가치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나타내는 민감도 지표다. IFRS17에서는 자산과 부채를 모두 시가로 평가하므로 자산-부채 듀레이션이 일치하는 경우 이론적으로 시장금리 변동이 건전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해외 주요 보험사인 독일 알리안츠, 일본 다이이치생명 등은 듀레이션 갭을 0.1년 수준으로 관리하여 금리 민감도가 0에 수렴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반면 국내 보험사들은 상대적으로 큰 듀레이션 갭을 보유하고 있어 금리 변동에 취약한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금감원은 최종관찰만기 등 할인율 현실화 속도 조절이 진행될 경우 이와 병행하여 보험사들의 자산·부채 듀레이션 관리 노력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규제 장치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보험회사에 허용되는 듀레이션 갭 범위를 감독규정에서 정하고 이에 대한 준수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 K-ICS 제도 또는 경영실태평가상 자산-부채 관리(ALM)에 대한 평가항목을 도입·강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다만 규제 도입 시 현재 듀레이션 갭이 큰 회사들의 경우 규제 준수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시스템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자산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대형사에 우선 적용하거나 충분한 적응 기간을 부여하는 등 시행상 과정 관리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금융위·금감원은 자산-부채관리 강화를 위한 규제의 세부 내용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며, 보험사들의 자산-부채 관리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규제 완화 사항에 대한 의견도 수렴할 계획이다. 새로운 규제 도입 여부 및 세부내용은 이러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8월 중 최종안을 발표하는 목표로 진행된다.

보험산업 건전성 TF는 1차 회의를 시작으로 향후 다양한 형태의 의견 수렴 절차와 실무회의 등을 통해 여러 주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1차 회의에서 논의된 할인율 현실화 시행 일정 및 자산-부채관리 강화 방안은 의견 수렴을 거쳐 세부 방안을 조율할 예정이며, 8월 중 최종 방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어서 기본자본 규제 도입 방안과 정리제도 개선 방안, 계리가정 선진화 등을 TF를 통해 순차적으로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안창국 금융산업국장은 "건전성 TF의 기본 목표는 보험산업의 안정성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데 있다"면서 "건전성 관리를 엄격히 강화해 나가되 보험회사들이 과도한 부담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절한 시행 속도를 유지하고 필요한 규제 개혁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