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스크 확산에 금융위 '24시간 감시체제'...KB·우리·하나, '실물경제 지원' 총력
- 금융당국 8개 유관기관 긴급회의...24시간 모니터링 체계 가동 - 4대 금융그룹 CEO 회의 잇달아...하나은행 11조원 지원책 발표 - 업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주시...유가 130달러 vs 리스크 완화 엇갈린 전망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미국의 이란 핵시설 전격 공습으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하자,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동시다발적인 위기대응에 나섰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8개 유관기관과 긴급 점검회의를 열어 24시간 감시체제를 가동한 가운데, 하나은행이 11조3000억원 규모 지원책을 발표하는 등 주요 금융그룹들이 대규모 실물경제 지원에 나섰다.
23일 금융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8개 유관기관장과 '유관기관 증시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여파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조치로, 중동 사태 관련 금융당국의 최신속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의 참석자들은 국내 증시가 중대한 전환점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새 정부 기대감으로 6월 G20 국가 중 주가 상승률 1위(12.02%)를 기록한 견고한 상승세와 중동발 불확실성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도 견고함을 보였던 증시가 22일 미국의 군사개입 이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됐다.
김 위원장은 "우리 자본시장의 도약은 시장 안정이 그 출발점이자 기본"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향후 사태 진행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언제라도 급변할 수 있는 만큼 작은 변동성에도 경각심을 갖고 시장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단순한 상황 파악을 넘어서는 적극적 개입 의지를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된다.
금융권의 대응은 더욱 발 빨랐다. 하나은행은 중동 사태로 경영 어려움이 예상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총 11조3000억원 규모의 긴급 금융지원을 전격 발표했다. 중소기업용 2조원 규모 '유동성 신속지원 특별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기존 '주거래 우대 장기대출' 등 특판대출 한도를 8조원 추가 증액했다. 소상공인 대상 '행복플러스 소호대출' 한도도 1조3000억원 늘렸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은 "중동 사태로 금융·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된 상황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경제활동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그룹 역시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임종룡 회장 주재로 '중동 상황 관련 긴급 점검 회의'를 개최하고 수출대금 만기 연장 등 유연한 금융지원 방안을 즉시 가동했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화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고 수출 피해기업 등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23일 오전 정진완 은행장 주재로 추가 긴급 임원회의를 개최해 전국 기업 RM들이 즉시 수출입 기업에 대한 현장 점검과 자금 수요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KB금융그룹도 23일 오전 양종희 회장 주재로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 협의회'를 열고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국제유가 급등 등에 관한 리스크를 진단했다. KB금융은 자본시장 손익을 일별 점검하는 동시에 지주 전 임원과 계열사 주요 임원이 참여하는 비상 대응 체계를 상시 운영체제로 전환했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내부 의사결정 체계도 고도화했다.
한편, KB국민은행은 무역보험공사와 중소·중견 수출입기업 금융지원을 위한 2차 수출패키지 우대금융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4600억원 규모의 우대금융을 공급하기로 했다. 미국 관세정책과 중동 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자금 애로 해소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의 대응도 전방위로 펼쳐졌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은 23일 오전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주재하고 "이란 의회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의결로 향후 사태 전개의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24시간 모니터링 체제 강화를 지시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2개월 연장한 상황에서 유가 상승에 편승한 불법 행위 단속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이날 비상 대응 태스크포스 회의를 주재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필요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시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통화정책 당국의 강력한 개입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분석기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한화투자증권이 분석한 1990년 이후 중동 위기 패턴을 보면 발생 1개월 후 유가는 평균 11.3% 상승했지만, 금리는 오히려 7.6bp 하락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번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실행 여부를 최대 분기점으로 주시하고 있다.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유가가 70% 가까이 급등해 최고 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 원유 운송량의 20%가 통과하는 이 해협의 봉쇄는 글로벌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iM증권은 상황 반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iM증권은 "이란의 군사 대응능력 약화와 미국의 확전 자제 의지 등을 고려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중동 리스크 완화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린다"며 "이번 미국의 핵시설 공습이 오히려 리스크 완화의 분수령이 될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