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형 퇴직연금’ 전환 속도…증권사는 기회와 제약 사이
기금형으로 구조 전환…정책 드라이브 본격화 RA 등 증권사 특화 상품 수요 확대 예상 구조적 제약은 여전...현행 법상 증권사 직접 수행 불가 "퇴직연금 장기성과 위해 제도 보안 필요"
[녹색경제신문 = 정수진 인사이트녹경 기자] 퇴직연금 제도의 ‘기금형’ 전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민연금처럼 전문가가 자산을 통합 운용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면, 저조한 수익률과 보수적 자산배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다. 정부와 정치권이 모두 제도 전환에 공감하고 있는 가운데, 증권업계에서는 장기투자 확대라는 기회를 맞는 동시에 법적·제도적 제약이라는 구조적 한계에도 직면하고 있다.
저수익 퇴직연금 손본다…기금형 전환 추진
18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2.93%에 불과한 반면, 같은 기간 국민연금은 8.17%를 기록했다. 제도 구조에 따른 운용 역량 격차가 수치로 드러난 셈이다.
국내 퇴직연금의 고질적 문제인 낮은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방안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앞서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근로자가 퇴직연금사업자(은행·보험·증권사 등)와 개별 계약을 맺는 '계약형’ 구조에서 다수 가입자의 자산을 통합해 장기·분산 운용하는 ‘기금형’ 구조로 전환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퇴직연금의 주무부처라 할 수 있는 고용노동부 역시 퇴직연금 수익률 문제 해소를 위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에서 예금·적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미국·호주·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도입된 제도로, 자산의 독립성과 운용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수익률 제고와 저비용 구조 설계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금형 도입은 공감하지만...제도적 장벽은 여전
하지만 증권업계는 마냥 반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기금형 전환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운용 주체로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행 법상 증권사는 자산운용사와 달리 외부위탁운용관리(OCIO)를 직접 수행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기금형 체계가 도입되더라도 증권사는 자문 제공이나 사모펀드 편입을 통한 간접 운용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중원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지금처럼 법적 제한이 유지된다면 증권사는 기금형 체계 안에서 운용 주체가 아닌 주변부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퇴직연금의 장기성과를 높이기 위해선 수탁자 요건 조정이나 법령 정비를 통한 제도 보완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기금형 도입이 현실화되더라도 은행·보험 등 기존 계약형 구조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해온 사업자들의 반발과 제도 설계 미비 등 복합적인 구조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어 진입 장벽은 상당하다는 평가다.
기금형 대비 나선 증권사…해법은 로보어드바이저
이 같은 구조적 제약 속에서 증권사들은 로보어드바이저(RA)를 대안적 운용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에 나서고 있다. RA는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자산을 자동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으로, 장기·분산 운용이라는 기금형 체계의 방향성과도 부합한다는 판단에서다.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지난 4월 업계 최초로 퇴직연금 전용 RA 일임 서비스를 정식 출시하며 본격적인 고객 모집에 돌입했으며, 나머지 증권사들도 자체 RA 알고리즘을 개발해 경쟁력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김 연구원은 “기금형 구조가 도입되면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자산배분 시스템이 증권사의 주요 운용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며 “투자자 성향에 따라 자동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구조인 만큼, 장기 운용 중심의 기금형 체계와도 맞물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장희종 iM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고객이 보수적으로 예금 위주로 운용해온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통합 기금 방식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추진되는 점은 긍정적이며, 기금형 전환이 다양한 상품 구성과 분산투자 기회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