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시대] 車 관세 협상…영국 선례 살피고 일본 속도 견제해야
"살을 내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뼈를 취할 수 없다" 전문가 "양보할 건 과감히 양보, 정부가 현명한 결단 내려야"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새로운 한 주를 맞은 가운데, 자동차 업계는 새 정부의 미국 관세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 통화에서 관세 협상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을 의미있게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실 브리핑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한미 간 관세 협의와 관련, 양국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의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실무협상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도록 독려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산업 전반에 걸쳐 관세 협의가 필요하지만 특히 완성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 협의가 조속한 과제로 꼽힌다. 자동차 산업은 전체 수출액의 약 14%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제조업의 중추고 이 중 약 35%가 대미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3일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발효된 이후 전체 자동차 수출 금액은 4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3.8% 감소한 65억3000 달러로 집계됐다.
현대차그룹이 현지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경우 감소 폭은 최대 20%까지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품 제조를 담당하는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장기적으로 도산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소고기 내주고 자동차 얻은 영국, 소고기 수입 1위 한국은?
업계에서는 관세에 대해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관세 전면 폐지 같은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관세를 소폭이나마 완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산업에서 미국에 일정 부분 양보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대표적으로 지목되는 것이 축산업이다. 무역국 중 유일하게 자동차 관세에 관해 성과를 본 영국의 경우 연간 미국산 소고기 1만3000톤과 에탄올 14억 리터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는 카드를 던졌다.
이 대가로 영국은 연간 10만대의 자동차에 한해 10%의 관세를 물리는 결과를 얻었다. 초과 수출 물량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높은 27.5%의 관세를 적용받는다.
미국에서 농업과 축산업 등 레거시 업종의 종사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점을 생각해볼 때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도 비슷한 협상 카드로 내밀 여지가 있다.
미국은 그간 한국이 30개월 이상의 소고기를 수입하지 않은 점을 꾸준히 문제삼아 왔다. 한국은 광우병 및 소고기 품질 문제로 그간 30개월 인하의 소고기만 수입해 왔는데, 지난 3월 미국전국소고기협회(NCBA)는 트럼프 대통령에 한국의 이같은 연령 제한 조치에 압력을 가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라는 카드를 한국이 협상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 한국은 미국에서 연간 약 26만 톤의 소고기를 수입하는 국가로, 전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해주는 최대 고객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산 소고기에 21% 수준의 관세를 적용 중이며 2026년 이후부터는 관세가 완전히 폐지될 전망이다.
이외에도 조선업 협력과 미국산 LNG 수입,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망사용료 협 등 한국이 협상카드를 쥐고 있는 부분을 십분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중한 접근 필요하나 일본에 뒤쳐지지 말아야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충분히 고려할 시간을 확보하며 신중하게 접근하는 스탠스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대선 유세 기간 동안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관련해 "우리는 맨 앞에 가면 안된다. 상대국이 매를 들고 때리려고 기다릴 때는 늦게 가야 한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다만 자동차 산업에서 한국의 최대 경쟁국인 일본과의 경쟁에서 속도에 뒤쳐지진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자동차 제조업이 GDP의 약 20% 차지할 정도로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자동차 대미 수출 역시 전체 대미 수출의 약 28%를 차지하고 있어,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가장 간절한 국가이기도 하다.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 모두 북미에서 5위권 안에 드는 기업으로 현대차그룹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다. 이들의 관세가 절감되면 반대로 우리 기업이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린다.
일본은 현재 기존의 관세 전면 철폐 요구에서 한발 물러나 단계적 인하 방안을 제시하며 협상 전략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일본은 자동차 산업의 미국 내 기여도를 기준으로 관세를 점진적으로 하향하는 안을 미국에 제시한 상태다. 이를 위해 희토류 공급망 협력, 방산•조선 기술 협력, 농산물 수입 확대 등의 협상안을 제시했다.
일본은 이달 초 미국과 5차 고위급 회담을 가졌으며 오는 15일 예정된 G7 정상회의를 전후로 협상 타결 시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 4월 24일 ‘2+2’ 고위급 통상협의를 개최한데 이어 지난 5월 20일부터 이틀간 2차 기술협의를 진행하며 서로의 의중을 타진했다. 한미 양국은 빠르면 다음주에 3차 기술협의 열고 오는 7월 8일까지 대미 무역흑자 축소 방안 등을 포함한 ‘7월 패키지’를 마련해 미국에 제안한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살을 내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는 뼈를 취할 수 없다. 양보할 건 과감히 양보하면서 침체 국면을 맞은 국내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현명한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