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저축에서 투자로 '대전환'....증권사 vs 은행 수익률 격차 2%p 넘어
- 실적배당형 투자 53% 급증…증권사 vs 은행 격차 선명 - 연금 수령 금액 57% 돌파…일시금 추월 '역사적 전환' - 상위 10% 가입자 비법…실적배당형 비중 3배 이상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국내 퇴직연금이 18년 만에 400조원을 돌파하며 '저축'에서 '투자' 중심으로 대전환하고 있다.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가 1년간 53% 급증한 가운데 연금 수령도 금액 기준 57%로 일시금을 처음 추월했다. 퇴직연금 생태계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9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년보다 49조3000억원(12.9%) 늘어난 43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 221조2000억원에서 5년간 약 2배로 성장하며 연평균 13% 이상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결과다.
개인 중심의 연금 제도 확산이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각각 118조4000억원(27.4%), 98조7000억원(22.9%)으로 규모를 키웠다. 반면 확정급여형(DB)은 214조6000억원으로 절댓값은 가장 컸지만, 비중은 49.7%로 줄었다. IRP는 전년 대비 30.6% 증가하며 2년 연속 30%대 성장률을 유지해 퇴직연금 지형 변화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금융회사들이 집중하는 부분은 투자 패턴의 급속한 변화다.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 금액이 75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3.3% 급증했다는 게 핵심이다. 전체 적립금에서 실적배당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17.4%로 2022년 11.3%에서 6%포인트 이상 늘었다. DC와 IRP에서는 실적배당형 비중이 각각 23.3%, 33.5%에 달해 투자 활성화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품 선택에서도 명확한 패턴이 관찰되고 있다. TDF(생애주기펀드)가 퇴직연금 핵심 상품으로 등장하며 장기 투자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ETF(상장지수펀드) 투자는 국내보다 해외, 특히 미국 주식시장 지수 추종 상품에 몰렸다. 미국 S&P500 ETF에 1조9000억원, 미국 나스닥100 ETF에 1조2000억원이 몰리며 글로벌 투자 확산 양상을 보인 것이다.
수익률 면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2024년 퇴직연금 연간 수익률은 4.77%로 최근 5년 평균(2.86%)과 10년 평균(2.31%)을 크게 넘어섰다. 운용 방법별로는 실적배당형이 9.96%를 기록해 원리금보장형(3.67%)의 2.7배에 달했다는 게 특징이다. 제도별로는 개인 운용 성격이 강한 IRP가 5.86%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DC 5.18%, DB 4.04% 순이었다.
금융권역별 수익률 격차는 운용 접근법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증권사가 6.33%로 최고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생명보험 4.43%, 은행 4.25% 순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는 연간 수익률 10% 초과 가입자 비율이 31.7%에 이른 반면 은행은 84.7%가 4% 이하 수익률에 그쳤다. 실적배당형 상품 운용 비중 차이가 수익률 간극으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연금 수령 방식에서는 구조적 변화가 포착됐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57만3000개 계좌 중 13.0%가 연금 수령을 선택해 전년(10.4%)보다 2.6%포인트 늘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총 19조2000억원 중 57.0%인 10조9000억원이 연금으로 수령돼 일시금 비중을 제도 도입 후 처음 추월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수익률 상위 10% 가입자들의 운용 전략 분석에서 흥미로운 패턴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의 실적배당형 비중이 권역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았으며 은행 IRP 상위 가입자는 84%, 증권사는 92%를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해 각각 9.3%, 29.4%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다. 적극적 투자와 높은 수익률의 연관성이 입증된 셈이다.
정부는 퇴직연금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폴트옵션 제도와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로보어드바이저 제도를 차례로 도입했으며 최근 6개월간 약 3조8000억원, 6만5000건의 적립금 이전이 이뤄지는 등 가입자들의 더 나은 서비스 추구 움직임이 활발한 모습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가입자들이 과거에 비해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적립금을 적극 운용하는 추세를 보이며 퇴직연금 수익률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투자에 익숙하지 않은 가입자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지원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