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꼬여버린 스텝에 휘청이는 K배터리... 하지만 희망이 있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우스갯소리로 전국민이 물려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배터리 주식 말이다.
대장주라 불리는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초 36만원 선이던 주가가 23일 기준 26만 원 대까지 폭락하며 신저가를 기록했다. 삼성SDI는 23만원 대를 유지하다 유상증자 발표를 기점으로 주가 하락이 가속화돼 15만 원 대까지 낙폭이 커지며 투자자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소재 업체들도 아우성이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엔켐 등 굵직한 상장 주식들도 올 초 대비 10% 이상 떨어졌고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금양 같은 극단적 사례도 있다. 2022년 말부터 2023년까지 열풍이 불며 개인 투자가 몰린 섹터였던 만큼, 고점에 고립된 주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단순히 주식판의 헤프닝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이차전지는 반도체와 함께 국가의 미래 핵심 먹거리다. 최종적으로 셀을 제조하는 대기업들은 매년 10조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이어오고 있고, 셀 업체에 납품하기 위해 업계에 뛰어든 중견•중소 기업들도 줄줄이다. 작년 4분기부터 이어진 적자 행진으로 기업과 투자자 모두가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에 치이고 트럼프에 받히고... 악재 연달았던 올 상반기
한국의 미래라 불리며 대기업들이 잇달아 진출했던 배터리 산업이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을까. 업계에선 그간 전기차의 일시적 수요 정체를 의미하는 '캐즘'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지만, 사실 가장 큰 리스크는 중국이었다.
2020년만 하더라도 국내 3사의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35%로 CATL(당시 점유율 24%)를 꽤 큰 격차로 따돌렸다. 하지만 2021년 이후 중국이 엄청난 내수를 바탕으로 전기차와 이차전지를 국가 차원에서 키우며 상황이 역전됐다. 2025년 1분기에 CATL과 BYD의 합산 점유율은 55%, 국내 3사의 합산 점유율은 약 18%로 벌어졌다.
우리 배터리 기업들이 국내 증시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CATL은 이달 홍콩 증시에 상장해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 테크데이에서 5분 충전으로 520km를 주행할 수 있는 LFP 배터리 션싱(shenxing)과 LFP수준의 에너지밀도를 가진 소듐이온배터리 낙스트라(Naxtra)를 공개한 화제성이 IPO에 그대로 반영됐다.
이번 상장으로 CATL은 최대 7조원의 자본을 확보하고, 주가 상승폭에 따라 자본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자본을 다시 기술에 투자하는 그들의 선순환이 무서울 지경이다.
한국 배터리가 기술에서 밀렸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는 아직도 국내 3사가 기술 주도권을 갖고 있다. 테슬라, BMW, GM, 포드, 아우디, 리비안 등 고급 전기차는 대부분 국내 기업의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국내 3사는 삼원계 계통에서 각형, 파우치형, 원통형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있어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기술력으로나 글로벌 OEM과의 협업 경험으로나 고성능 배터리는 한국 기업이 승자다.
문제는 세계 시장의 흐름이다. 2010년대 중후반, 국내 기업들이 전기차용 배터리 산업에 뛰어들 때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가 이렇게 안좋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기차의 가장 큰 시장으로 내다봤던 유럽이 코로나와 러-우 전쟁으로 경제적 자상을 입었고 이에 따라 전기차의 수요도 중국산 LFP를 장착한 저가형에 몰렸다.
유럽에서 중국 BYD의 판매량이 테슬라를 앞지른 현상이 이를 설명한다. 이에 테슬라도 부랴부랴 중국사 LFP를 장착한 저가형 RWD모델을 확대하며 점유율 제고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역시 K배터리에 악재로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 개정안인 'One Big Beautiful Bill Act'을 통해 2031년까지 제공할 예정이었던 7,500달러 전기차 세액공제(30D)를 2026년까지로 종료 시기를 앞당기고자 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대차가 수혜를 받고 있었던 상업용 전기차 세액공제(45W)도 올해 말까지 만 제공한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미 하원을 통과한 상태다.
다행히 업계가 우려하던 2028년 AMPC 조기 일몰에 관한 내용을 빠졌지만 미국의 전기차 전환이 향후 탄력을 잃으면 해당 시장을 바라보고 있던 국내 배터리 출하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최근 GM, 혼다 등 굵직한 OEM들이 전기차 시장을 보수적으로 전망하고 투자에 한 발 물러서기로 결정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중국 제외하면 한국이 업계 유일한 교체선수, 시장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국의 배터리 산업은 여러모로 수세에 몰려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패닉이 올 만큼 산업이 침몰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가장 기대되는 변곡점은 미국이 중국의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한 이후다. 기존엔 2027년까지 중국 업체들이 IRA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 발효된 감세 개정안에는 해외우려기관(FEOC) 제한 기간을 앞당기는 안이 포함돼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국 업체는 2026년 1월 1일부터 모든 감세 혜택에서 제외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배터리도 AMPC 혜택을 받지 못하게 돼 사실상 중국은 미국 배터리 시장에서 완전 배제된다.
그 반사이익은 한국이 온전히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기업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로 남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유일한 비(比)중국 흑연 기업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수혜 대상이 된다.
중국 제품이 아무리 가격 경쟁력이 있다 하더라도 미국과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기엔 리스크가 있다. 지난 4월에는 영국 국방연구소에서 중국산 자동차에 도청 기능이 탑재돼 있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발하기도 했다.
철강, 화학 등 기초 소재는 중국산을 쓸 수 있지만 자동차, 배터리 같은 완성 제품을 중국산에 의존하기엔 세계 정세의 긴장감이 장애물로 작용한다.
중국의 LFP 배터리를 따라잡기 위한 국내의 저가형 소재 개발도 하나 둘 성과를 거두고 있는 부분도 기대해볼 만 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공동으로 차세대 리튬망간리치(LMR, Lithium Manganese-Rich) 배터리를 개발해 2028년부터 미국 본격 생산해 GM 전기차에 탑재한다고 밝혔다.
LMR 배터리는 기존 삼원계(NCM) 배터리 대비 망간 함량을 60~70%로 높이고 코발트 비중은 2% 이하로 낮춰 원가를 절감했다. 중국산 LFP 대비 에너지밀도가 약 33% 높아, 1회 충전으로 644km 이상 주행할 수 있어 가격과 성능 경쟁력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RA가 소멸되더라도 2027년 이후에는 전기차 수요가 배 이상 늘어나 세액공제 혜택 없이 기업들이 자주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업계가 내다보고 있다. 해당 시점엔 고농도 슬러리, 건식 전극, 고속 코팅 기술 등 공정 개선으로 제조 단가도 LFP와의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만난 국내 배터리 3사 중 한 곳의 고위 관계자는 "지금 주식 하락 폭이 너무 커서 이러다 한국 배터리 산업이 다 죽는 것 아니냐는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IRA는 일시적 보조금인 만큼 업계 모두 보조금 중단 이후를 바라보고 사업을 전개해왔고 AMPC 조기 종식 없이 FEOC 제재 기간만 앞당겨져서 오히려 한 시름 놓은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이번 대선 후보들마다 이차전지 산업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철강도, 화학도 중국의 물량공세로 한국 기업들이 어려운 실정에서 미래 기간 산업인 배터리까지 중국에 완전히 내줄 수는 없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이 되던 미국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우리 기업들의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