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1000억여 원으로 개발하는 반도체, 업계는 삼성 아닌 TSMC로..."국책과제, 기준 까다로워서 삼성전자에 못 맡겨요"

국책 과제인데 삼성전자 두고 TSMC로...업계, "당연한 현상" 기술력 갭 체감..."칩렛 기술·패키징, TSMC가 더 선단공정 보유" 반도체 개발, 파운드리 정해놓고 디자인...양산 때 반전 기대 무리 삼성전자, 소형 프로젝트 진입장벽↑...."'국책 파운드리' 필요"

2025-05-23     우연주 기자
[사진=삼성전자

[녹색경제신문 = 우연주 기자] 우리나라 정부가 향후 약 5년에 걸쳐 세금 1000억여 원을 들여 국산 반도체 기술에 투자하지만, 업계에서는 벌써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아닌 TSMC를 선택하는 움직임이 관찰된다. 사용할 파운드리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 디자인하는 반도체 특성상 양산이 시작돼도 반전이 일어나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국책 과제 지원하는데 우리 기업 두고 TSMC로...업계, "당연한 현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의 국책 과제에 지원한 국내 반도체 기업 A사는 TSMC 파운드리를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제안서를 작성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연구개발하지만 생산은 외국 기업이 한다는 상황이 묘하지만, 업계에서는 '놀랄 것 없다'는 반응이다. 

반도체 업계에 20년 이상 몸담은 B씨는 이를 두고 "당연한 현상이다. 많이들 그렇게 한다(TSMC를 쓴다)"고 말했다. 

반도체 디자인은 하나 만들어 두면 이 파운드리, 저 파운드리 골라서 쓸 수 없다는 점이 TSMC 선호 현상과 맞물려 있다.

업계 관계자 C씨는 "CPU를 개발한다 치면 옆에 GPU나 각종 인터페이스를 붙여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별도로 개발하지 않고 기존 디자인을 구매해서 쓴다. 그런데 이 IP(반도체 설계도)들이 TSMC에서만 찍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각종 설계 자료를 모두 TSMC가 갖고 있다면 TSMC의 파운드리를 쓸 것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입장에서는 계속 협업해 온 회사 기준으로 작업하는 것이 개발 과정에도, 완성도에도 유리하다.

반도체 연구에 조예가 깊은 D씨는 "해오던 곳을 선호한다. 그래야 익숙하고, 정보도 많으니 수정도 쉽다. 잘 아는 범위 안에서 수정해야 당연히 완성도가 높지 않겠나"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처음 TSMC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시작한 회사라면 계속 TSMC 기준으로 작업하게 되는 것이다.

과기부의 반도체 사업을 준비하는 업계 관계자 E씨는 "우리도 처음부터 TSMC랑 일한 데다, 특정 분야에서 TSMC가 우리 기술에 최적화돼 있어서 과제 준비할 때에도 당연히 TSMC 제조를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 세금 쓰는 국책과제, 기준 까다로워서 삼성전자에 못 맡긴다

국책과제의 경우 기준이 더욱 까다로운 것도 한몫한다.

E씨는 "정부과제인 만큼 수율을 따져야 한다. 목표를 기존 시장 제품보다는 더 높게 잡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세금이 쓰이는 만큼 더욱 스탠더드가 높은데, TSMC에서 진행하는 것이 더 안전한 결과물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입장도 '어쩔 수 없다'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부처 사정을 잘 아는 F씨는 "반드시 국책사업이니까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써야 한다는 조건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파운드리가 삼성전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고 말했다.

과제의 대부분은 기술검증 또는 시제품 생산이 목표다. 하지만 특정 파운드리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는 상품 특성상 양산 시점이 온다고 해서 반전이 일어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기술력'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E씨는 "기술력 자체가 갭이 있다"고 말했다.

칩렛 기술이나 패키징에서 TSMC가 더 선단공정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E씨는 조심스러워 하며 "과제 기간이 몇 년 있으니까, 그 사이에 삼성전자가 치고 올라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삼성전자, 소규모 프로젝트 진입장벽 높아....'국책 파운드리' 필요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진입장벽'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TSMC는 소규모 프로젝트도 환영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문턱이 높다는 점에 연구자들은 공감했다.

D씨는 "연구 과정에서 TSMC를 직접 써봤다. 아주 쓰기 용이했지만, 삼성전자는 안 용이했다"고 회고했다.

TSMC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위한 슬롯이 많이 열려있는데, 삼성전자는 그렇지 않더라는 것.

D씨는 "파운드리를 이용하려면 자기들만의 스케줄이 있다. '우리가 이걸 찍어주려면 언제까지 데이터를 주면 되고, 그러면 몇 월 며칠 두 번째 회차에서 만들어 줄게' 이런 식인데, TSMC는 그 횟수가 많았다. 내가 원하는 시점에 딱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규모의 차이로 보인다.

B씨는 "TSMC의 규모가 1000이라 치면 삼성전자의 규모는 대충 300 또는 그 이하로 봐야 한다. 똑같이 100개의 슬롯을 소규모 프로젝트를 위해 열어놓는다 치면, TSMC에게는 큰 비중이 아니지만 삼성전자에게는 큰 비중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삼성전자도 소규모 프로젝트를 위한 슬롯을 최대한 열어놓는다. 하지만 사기업이니만큼 고객 것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국책 파운드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선단 기술을 사용한 고부가가치 공정은 사기업이 하되, 연구를 위한 파운드리를 국가가 지어서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B씨는 "1~2조 원 정도면 국책 파운드리를 만들 수 있다. 3~4나노의 하이테크는 사기업에서 하면 되고, 연구자들의 수요에 맞춘 20나노 전후의 파운드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 수요는 상업화 분야와 다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소재 또는 공정기술을 연구할 때에는 3나노 같은 하이테크는 필요 없다. 소자가 작아야만 할 수 있는 연구는 극히 일부인 데다, 그건 사기업에서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