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쏟아부어도 멈추는 시스템'...카카오뱅크·키움증권 전산 ‘취약’

- 투자 증가에도 매년 늘어나는 전산장애…6년간 1763건, 피해액 295억원 - 카카오뱅크·키움증권, 전산장애 최다…프로그램 오류가 전체 장애의 73% 차지 - 금감원, 대책 마련에도 실효성 의문…제재 미미하고 피해보상 규정 미비

2025-05-21     나아영 기자
카카오뱅크.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금융회사들이 디지털 전환에 수천억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전산장애는 오히려 증가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카카오뱅크와 키움증권이 전산장애 발생 건수와 피해액에서 각각 최다를 기록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비상등이 켜졌다.

21일 국회 정무위 소속 강민국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5월까지 국내 금융권에서 발생한 전산장애는 총 1763건에 달했다. 이로 인한 장애 시간은 48만4628시간, 피해 금액은 295억432만원으로 집계됐다.

전산장애 발생은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추세다. 2020년 238건에서 시작해 2021년 289건, 2022년 327건, 2023년 347건, 2024년 392건으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올해도 5개월 만에 이미 170건의 전산장애가 발생해 연말까지 역대 최다 기록 경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권별로는 은행권이 577건으로 가장 많은 전산장애를 기록했으며, 피해 금액은 증권업권이 262억8293만원으로 전체의 89.1%를 차지해 금전적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카카오뱅크는 64건의 전산장애를 기록해 단일 금융사 중 최다 발생 건수를 나타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2022년 SK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핵심 기능이 멈추는 불상사는 피했지만, 금감원 검사에서 '전산자료 백업 및 소산 업무 불합리' 등의 문제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사건은 2020년 키움증권의 프로그램 오류로 인한 전산장애로 47억669만원에 달했다. 키움증권은 올해 4월에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에 이틀 연속 전산장애를 일으켜 고객들의 거래에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

금융권 전산장애 원인을 들여다보면 프로그램 오류가 722건으로 가장 많았고, 시스템·시설·설비장애 564건, 외부요인으로 인한 장애 366건, 인적재해 106건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장애의 73%가 프로그램 코드와 시스템 구조 자체의 취약점에서 비롯된 셈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금융회사들이 전산운용비를 대폭 늘리고 있음에도 전산장애는 줄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1개 증권사의 전산운용비는 2023년 5463억원에서 2024년 6329억원으로 15.9%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 증가율 28.4%의 절반 수준에 그쳐, 수익 확대에 비해 시스템 안정성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이 디지털 서비스 확장 속도에 걸맞은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산장애가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키움증권의 경우도 전산운용비를 확대했음에도 올해 4월 연이은 전산장애를 겪었다. 금융 IT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형 이벤트나 시장 급변 시기에 발생하는 전산장애는 단순한 일시적 과부하 문제를 넘어 시스템 설계와 인프라 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사안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금융회사들이 비대면 채널은 계속 확대하면서도 전산장애에 대한 문제의식이 미흡해 소비자 피해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 IT 분야 한 전문가는 "전산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자원 투입이 필요하지만, 기업들은 수익성 측면에서 적정 수준의 투자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잦은 전산사고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3년 '금융IT 안전성 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기업공개(IPO) 등 대형 이벤트 사전 대비, 비상 대응 훈련 범위 확대, 프로그램 테스트·검증·배포 통제 강화 등 기준을 제시했다.

강민국 의원은 "금융권 전산장애 사고 급증은 결국 소비자의 잠재적 피해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금감원은 전산장애 다발 회사에 대한 IT 실태점검을 강화하고 관련 가이드라인 준수에 미흡한 회사에는 추가 검사 및 제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재 금융권에서는 전산장애와 관련한 명확한 피해보상 규정이 없어 증권사들의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5년간 금감원이 전산장애로 특정 조처를 한 사례는 2022년과 지난해 각각 대신증권과 신한투자증권뿐이었으며, 이마저도 '피해 보상 권고'와 '과태료 8000만원 부과'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