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ESG 공시 '숨고르기' 선언..."스코프3 유예 등 기업 부담 경감 추진"

- EU, 옴니버스 패키지로 ESG 공시 대상 80% 축소 - 금융위, 스코프3 공시 유예기간 부여 및 추정 허용 검토 - 금융위원회·한국회계기준원, 2029년 EU 역외기업 공시 의무화 대비 로드맵 논의

2025-04-23     나아영 기자
김소영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금융위원회가 23일 'ESG 금융추진단 제5차 회의'를 개최하고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성 공시 규제 완화 등 국제 동향을 고려해 국내 ESG 공시 로드맵을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김소영 부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구조 특성과 최근 국제 경제 불확실성을 고려해 공시 기준과 시행 시기를 신중히 결정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구조의 특징을 고려할 때 공시 기준과 로드맵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지속하면서 주요국 동향을 좀 더 보아가며 결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EU는 올해 2월 기업 부담 경감을 위한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하며 ESG 공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임직원 1000명 이하 기업의 공시를 면제해 적용 대상을 축소했고, 비상장 EU 대기업의 공시 시점도 2026년에서 2028년으로 2년 유예한 상태다. 이번 완화 조치로 기존 CSRD(지속가능성정보 공시지침) 적용 대상 기업의 약 80%가 제외될 것으로 EU 집행위원회는 추정하고 있다.

일본도 지난 3월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기반의 최종 공시기준을 발표하면서 2027년부터 프라임시장 상장기업 중 시가총액 3조엔 이상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공시를 추진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일본은 스코프3(공급망 배출량)에 대해 1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으며 영국과 미국, 캐나다 등은 아직 공시 제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김 부위원장은 "EU의 역외기업 공시 의무화 시기가 2029년으로 예정된 점을 고려해 국내외 투자자에 정보제공 필요성이 높은 기업들의 최초 공시 시행 시기를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EU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2029년부터는 EU의 공시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점은 온실가스 공급망 배출량인 '스코프3'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김 부위원장은 "EU와 일본 등 사례와 기업 준비 상황을 감안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일정 부분 추정을 허용하는 등 세부 공시기준을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스코프3는 데이터 수집과 측정이 복잡한 특성이 있어 이에 대한 유예기간 부여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공시 준비 시간을 확보해 줄 전망이다.

이날 회의에서 한국회계기준원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검토 진행 상황을 소개했다. 공시 범위와 관련해서는 연결 기준으로 공시하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재무적 중요성에 따라 판단해 재무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자회사는 제외할 수 있도록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핵심적인 ESG 요소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실용적 접근으로 해석된다.

또한 회계기준원은 기후 관련 공시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산업 기반 지표와 내부 탄소 가격 중 톤당 가격 등을 선택 공시 사항으로 반영한 공개 초안의 주요 내용을 유지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접근은 기후 리스크를 우선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 부위원장은 "기관투자자나 신용평가사 등 많은 투자자가 기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지속가능성 공시 정보를 요구하고 있어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지속가능성 공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상호관세, 투자심리 악화 등 국내외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점, 주요국의 공시수준 조정 움직임 등을 고려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부위원장은 이와 함께 국제결제은행(BIS)이 기후변화가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불확실한 위험을 '그린스완'으로 표현한 것을 언급하며 "정부는 주요국 동향 변화를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기업의 준비 상황 등도 충분히 감안해 지속가능성 공시가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금융위는 이날 제시된 의견을 반영해 EU 등 주요국의 공시 관련 동향 등을 면밀히 살펴보며 공시기준과 로드맵을 검토·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국내 기업은 이러한 규제 변화에 대비해 ESG 정보 수집 체계를 구축하고, 특히 스코프3 배출량 측정 방법론을 개발하며 자회사별 중요성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