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 SK하이닉스 '갈등설' 대두…현시점 제기된 삼성전자 '협력추진설'
SK하이닉스와 대치 상황서 삼성 협력설 대두 한미 "과거 소송 불구 현재 일부 장비 거래 중" 일각선 양사간 구원·공정차이 거론 "어려울 것"
[인사이트녹경 = 조영갑기자] 최근 HBM(고대역폭메모리) TC본더 공급망을 두고, 최대 고객사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 한미반도체가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 내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HBM 2위 메이커 삼성전자발 '러브콜'인지, SK하이닉스를 압박하기 위한 한미반도체발 '블러핑'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모양새다.
21일 일부 보도와 업계 등의 말을 종합하면, 한미반도체와 삼성전자는 5세대 HBM(HBM3E) 12단 양산공정 부터 TC본더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의 기술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해당 보도와 팩트 소스에 대한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한미반도체는 해당 논의와 협력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 하지는 않았다. 기대감을 표현했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와의 협력 가능성은) 정확히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업계에서 한미반도체와 삼성전자(세메스)가 10년 전 특허소송이 있었기 때문에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바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는 하지만, TC본더 장비 외에 좀 더 저렴한 장비와 관련 삼성과 거래를 하고 있으며, (TC본더를 포함한) 협력이 이뤄지면 당연히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래에 대한 결정은 삼성전자가 결정할 몫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본더 장비 외에 후공정 장비단에서 일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D램 공정용 플립칩 본더 등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와의 TC본더 관련 협력을 두고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AI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되던 시기인 2023년 하반기부터 양사 협력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사실상 성사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TC본더 최대 고객사인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옛 한화기계정밀)과 싱가포르 ASMPT 등으로 TC본더 수급망을 이원, 삼원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미반도체와 삼성의 협력설이 재차 점화되기 시작했다. 밀월 관계였던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결정적으로 SK하이닉스가 3월 한화세미텍을 대상으로 약 420억원 가량의 TC본더 PO(구매주문)을 내면서 한미반도체의 반발 기류도 격화되기 시작했다. 반도체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SK하이닉스는 3월 PO외에 하반기 한화세미텍을 대상으로 약 70기 수준의 후속 PO 역시 계획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솔벤더(단독공급사)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장비가 인상안 제시 ▲TC본더 CS(고객서비스) 인력 철수 등으로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며, 솔벤더(단독공급사)의 지위 회복을 꾀하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는 부사장급 핵심 경영진을 포함한 다수의 실무진이 한미반도체 본사를 찾아 미팅을 갖고, TC본더 관련 갈등국면에 대해 논의했다. 해당 자리에서 곽동신 회장은 가격인상안 고수와 더불어 특허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한화세미텍 PO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고, 결과적으로 양사의 입장 차만 확인한 자리로 종결됐다는 전언이다. 한미반도체가 이천 양산라인에서 철수시킨 CS인력은 여전히 복귀하지 않고 있다. 공을 SK하이닉스에 떠넘긴 형국이다.
일종의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한미반도체에 대한 SK하이닉스의 속내는 복잡하다. 당장 엔비디아 신규 물량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HBM 수율 리스크가 터질까 노심초사하는 반면, 이참에 확실하게 길들이자는 강경론도 존재한다는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에 TC본더 대응 캐파를 체크하는 등 혹시 모를 플랜B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HBM 1세대부터 공동으로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본딩 공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고객사인 탓에 한미반도체를 쉽게 배제하지는 못할 거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 와중에 한미반도체-삼성전자와의 협력설이 부상하면서 갈등의 양상이 한미반도체 측으로 유리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게다가 최근 한미반도체는 HBM 3위 메이커인 마이크론의 PO 역시 따냈다. 초도 물량 20대를 비롯해 추가 50대 등이 거론된다.
마이크론은 그간 삼성전자와 유사한 TC-NCF(열압착방식) 적용했는데, 6세대부터 SK하이닉스 방식의 MR-MUF(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 병행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 역시 양 공정을 병행할 거라는 추측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마이크론향 공급망을 확보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까지 잡는다면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HBM 3사를 모두 잡는 셈이 된다. SK하이닉스의 포캐스트가 아쉬운 상황이 아니다.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30~40%, 마이크론 10~20% 가량으로 추산된다.
다만, 한미반도체-삼성전자와의 TC본더 협력설이 당장 구체화될 수 있는 그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업계의 의견이 갈린다. 양사 간 잔존해 있는 '구원(舊怨)'과 HBM 본딩 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점 때문이다.
한미반도체는 삼성을 대상으로 특허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한미반도체 창업주 故 곽노권 회장 시절인 2007년 삼성전자 계열사 세메스(옛 세크론)를 대상으로 후공정 장비 '쏘잉플레이스먼트(Sawing&Placement)' 관련 핵심 특허기술을 세메스 측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 2012년 1심 승소에 이어 2015년 2심까지 승소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슈퍼갑(삼성)을 대상으로 한 슈퍼을의 반란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 소송을 계기로 삼성은 한미반도체와의 거래를 사실상 중단했다.
삼성전자는 특허분쟁을 겪은 벤더사와 거래를 하지 않는 경향성이 있다. 그만큼 구원이 깊은데다 현재 SK하이닉스를 상대로 행하는 '을의 반란'을 삼성 SCM 부문에서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논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양산 공정의 차이 역시 거론된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의 HBM 본더 고객사로 알려진 일본 신카와(shinkawa)의 존재 역시 거론되는데, 삼성전자와 신카와의 협력은 밀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카와의 반발 역시 감수해야 할 변수라는 말이다.
SK하이닉스는 이른바 MR-MUF 방식을 중용하고 있는데, 적층된 D램의 범프를 연결한 뒤 그 사이에 충전재를 넣고 통으로 굽는 방식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적층 D램 사이에 비전도성필름(NCF)를 넣고, 다리미(본더)로 압착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가 6세대부터 양 방식을 병행할 거라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있다.
각 사의 사정에 정통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미 HBM 초기 버전부터 SK하이닉스가 깊게 관여해 개발한 특정 장비를 국내 소재 경쟁사, 그것도 삼성전자가 도입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한미-삼성 협력설은) 고객사 압박용 카드로 해석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