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시중은행 디폴트옵션 수익률 경쟁...정작 고객 대부분은 원금보장형 상품에 몰려

국민은행, 고위험·중위험에서 디폴트옵션 수익률 1위 초저위험은 우리은행이 수익률 1위 달려 가입자 87.1%가 초저위험 상품 가입해 금리 인하 시 초저위험 상품 수익률 악화 우려 "법 개정해 선진국처럼 원리금 보장 상품 빼야"

2024-07-09     강기훈 기자

[녹색경제신문 = 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br>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영제도)이 도입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너나할 것 없이 수익률 1위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입자 대부분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제도 도입 취지에 맞춰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가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물론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원리금 보장보단 실적 배당형 상품을 우선시하는 게 맞고 은행들도 고위험 상품을 꾸준히 개발 및 홍보하고 있다"며 "다만, 대다수 가입자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9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6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이 내놓은 48개 디폴트옵션 상품의 1년 평균 수익률은 연 9.74%로 집계됐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IRP)으로 이뤄진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작년 7월 공식 도입한 제도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에 대해 별도로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은행 등 금융사가 사전에 결정된 방법으로 투자 상품을 자동으로 운용한다.

은행권은 앞다투어 수익률 경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가령, 비보장·고위험 상품의 경우 국민은행의 '고위험 포트폴리오1'이 22.85%의 수익률을 기록해 전체 상품 중 1위를 기록했다. 이어 국민은행 '고위험 포트폴리오2'가 21.43%의 수익률을 보여 2위를 차지했으며, 신한은행(18.69%), 하나은행(18.5%), 우리은행(17.93%) 순이다. 

비보장·중위험 상품 역시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달리고 있다. 국민은행의 '중위험 포트폴리오1'의 수익률은 14.26%로 집계돼 중위험 상품 중 가장 높았다. 이어 신한은행의 '중위험 포트폴리오2'가 13.84%를 기록해 2위에 해당했으며, 하나은행(12.52%), 농협은행(12.42%), 우리은행(12.4%)이 뒤를 이었다. 

원리금 보장 상품인 초저위험형은 우리은행이 수익률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우리은행 초저위험 포트폴리오'는 3.13%로 나타나 가장 높았으며 '하나은행 초저위험 포트폴리오'가 3.11%를 기록해 뒤를 이었다. 

주요

이렇듯 각자의 분야에서 수익률 경쟁에 진심인 모습이지만 정작 대부분의 가입자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6대 은행의 1분기 말 기준 원리금 보장 상품 적립금은 18조393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고위험 상품 적립액인 2311억원의 약 79배에 달하는 수치다. 

금융권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초저위험 상품 쏠림 현상은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디폴트옵션 가입자는 526만9655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원리금 보장형인 초저위험 상품에 가입한 사람은 무려 87.1%(458만8454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원리금 보장 상품의 수익률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상품은 예금과 국고채 투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구조적으로 금리 인하 시기에 수익률 하락이 가파를 수밖에 없다. 

이미 1위인 우리은행 상품마저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3.5%) 수준을 밑돌고 있다.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정기예금보다 훨씬 낮은 수익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에 원리금 보장형 포트폴리오를 디폴트옵션에 넣은 게 제도 도입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 역시 뒤따른다.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디폴트옵션이 도입됐는데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넣어버리면 투자 경험이 거의 없는 국내 가입자들이 초저위험형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서다. 

미국, 호주 등 선진국들은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을 제외한다. 미국 퇴직연금제도인 401K 하의 디폴트옵션은 가입자들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때 자동적으로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도록 설계됐다. 원리금 보장 상품보단 위험하지만 적어도 연 7% 이상의 수익률을 거두고 있어 제도의 취지와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수익률 제고를 위해 원리금 보장 상품을 배제하기까지는 큰 험로가 남아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21조의2에 이미 원리금이 보장돼야 하는 경우를 못박아놨다. 결국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은행의 입김이 강력해 은행권 역시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 역시 뒤따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관련법이 개정될 때 은행권이 원리금 보장 상품을 넣어야 한다고 크게 목소리를 냈던 걸로 안다"며 "당장 법 개정이 힘들다면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가입자가 유입이 될 수 있을 만한 유인을 당국이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