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텍사스주 화석연료 차별 투자 반발에 기로에 선 'ESG & 녹색 투자"
블랙록 화석연료 360조원 투자…세계 최대 래리 핑크 회장 “화석연료 투자배제 없다” 국내·외 천연가스 택소노미 편입 논란 “탄소중립 전환 필수” vs “탄소저감 효과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에너지난을 겪으면서 화석연료 투자를 둘러싼 논란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텍사스주가 주정부 산하 연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이른바 ‘ESG(환경·사회·기업거버넌스) 보이콧’ 금융회사 주식을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이콧 금융회사들은 ESG를 기준으로 투자를 하는 회사, 즉 화석연료 관련 기업에 대해 투자를 꺼리는 금융회사들을 말한다. 이런 원칙을 가진 금융회사들은 텍사스주로써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석유, 가스 산업의 허브인 텍사스로써는 이해할 수 있는 조치다.
비슷한 시기에 플로리다주 역시 연기금 운용사가 투자 전략에 ESG를 고려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ESG를 빌미로 화석연료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금융사들은 블랙록, UBS, BNP파리바, 크레디트스위스, 단스케은행, 노르디아은행, 슈뢰더, 스벤스카은행 등 ESG 보이콧을 선언한 총 10개 금융회사와 348개의 뮤추얼 펀드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제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금융사들은 절대 화석연료 관련 투자를 차별대우하지 않고 있다고 항변하고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최근 화석연료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반(反)ESG 제재’ 위기를 떨치기 위한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블랙록의 화석연료 투자액은 우리 돈 약 360조원으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블랙록, “우리가 세계 최대 화석연료 투자자”…그린워싱 비판 직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지난 3일 그룹 지속가능 투자유닛 명칭을 ‘지속가능 및 전환 솔루션’으로 변경했다.
저탄소 전환이란 명목으로 화석연료 투자를 지속한다는 사실을 천명하기 위한 조치다. 블랙록은 최근 텍사스주 등으로부터 투자배제 조치를 당하는 등 미국 일부 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곤혹스러운 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반(反)화석연료’ 투자기관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와 달리 블랙록이 작년 상반기 기준 전 세계 화석연료 기업에 투자 중인 금액은 약 2600억 달러(약 360조원)다. 블랙록 측 대변인은 연초 텍사스주에 보낸 서한에 “아마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큰 화석연료 투자기관일 것”이라고 밝혔다. 블랙록은 텍사스주 기업에만 약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블랙록은 이러한 화석연료 투자가 ESG 정책과 양립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고탄소 집약기업의 저탄소화가 탄소중립을 이루는 열쇠로 이들 기업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은 올 초 기업 CEO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블랙록은 석유와 가스기업을 배제하는 투자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비록 고탄소 집약기업이지만) 전환을 선도하는 업체들이 고객들에게 중요한 투자기회를 제공하고 이러한 쪽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게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탈석탄을 선언한 국내 금융기관들도 이러한 전환적 투자라는 애매한 단어를 쓰면서 화석연료 투자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자기자본 기준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자체 ESG 투자 프로세스에서 석탄발전 투자 시 “탄소저감 의지 및 구체적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반영하여 거래를 검토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다만 블랙록과 달리 열어두기만 할 뿐 지난해 말 기준 실제 석탄 투자 익스포저, 즉 투자 비율은 0%다.
문제는 전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 즉 화석연료 기업의 저탄소화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아직 상용화조차 되지 않은 탄소포집기술(CCUS) 외엔 화석연료를 태우는 방식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일 대안이 없다. 이들 기업이 기존 생산시설을 모두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도 천문학적 비용을 고려해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린워싱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남는 이유다.
국제 환경단체 리클라임 파이낸스는 이러한 블랙록의 이중적 잣대를 두고 “화석연료 중독”이라고 표현했다. 라라 퀴블리에 지속가능투자 캠페이너는 “래리 핑크 회장의 지속가능 투자선언은 그린워싱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기후 악당이 아닌 리더가 진정 되길 바란다면 녹색단어와 행동을 일치시켜라”고 말했다.
한국도 LNG 택소노미 편입 논란…환경부 “공청회에 의견 전달하겠다”
녹색전환과 관련해 또 다른 중요한 이슈는 천연가스 투자다. 유럽을 비롯한 다수 국가에선 화석연료, 그중에서도 천연가스를 탄소중립 시대로 가는 일종의 중간다리 역할로 수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난 영향이 결정적이다. 치솟은 에너지비용에 따른 경제위기에 탄소중립 의제가 뒤로 밀려난 탓이다.
유럽연합(EU)는 지난 7월 천연가스 및 원자력 에너지를 ‘전환 에너지’로 분류하면서 녹색분류체계(텍소노미)에 편입했다. 다만 도입요건을 까다롭게 명시했다. 발전 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을 킬로와트시(Kwh)당 270g으로 제한하고, 2030년까지 신규설립을 허가하는 등 이른바 ‘독소조항’으로 사실상 투자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진투자증권 한병화 연구원은 “(EU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원전과 천연가스 발전의 포함을 허용하는 초안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외견상으로는 원전과 천연가스 발전 산업의 승리로 보인다. 하지만 막상 허용의 조건을 보면 의구심이 커진다”며 “추가적인 설비 없이는 EU 에서 천연가스 발전소가 신설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독소조항에도 불구하고 택소노미 편입을 반발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지난달 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단체는 EU가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서 제외하지 않을 경우 가까운 시일 내 유럽사법재판소(ECJ) 정식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EU를 답습하면서 K-텍소노미 초안에 천연가스와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다고 밝혔다. 천연가스의 경우 EU보다 넉넉한 기준이나 2035년까지 신규설립을 허가하는 일몰조항을 뒀다. 다만 환경단체의 비판이 거세다.
연초 기후솔루션,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등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러한 천연가스 편입문제를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과정을 고려하면 LNG 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석탄 발전의 70% 수준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에너지 인프라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고착해 ‘2050 탄소중립’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될 위험이 높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종오 국장은 “만약 부득이하게 녹색분류체계에 전환부문을 포함해야 한다면, 최소한 금융기관 공시에 녹색부문 공시와 전환부문 공시를 별도로 분리한 공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국정감사에서 올해 1~8월까지 공공민간에서 발행된 녹색채권 중 약 25%가 LNG 발전사업에 쓰인 자료를 제시하며 “LNG 발전이 녹색 분류 체계에 포함돼 재생 에너지에 갈 돈이 결과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우리의 녹색 분류 체계는 국내 상황에 맞춘 기준"이라며 공청회에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