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5사의 2019③] 에너지 전환 시대, 생존 전략 찾아야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금융… 석탄은 ‘좌초자산’ 위험 높아 발전5사 재생에너지 투자 ‘미흡’… 과도기 단계 ‘LNG’는 필수 공기업 희생만 강요할 수 없어… 전환 비용 마련에 사회가 나서야

2019-12-18     서창완 기자

우리나라 발전5사의 2019년은 한 마디로 '다사다난'했다. 고(故) 깅용균 씨의 죽음으로 발전사에 대한 '죽음의 외주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후 안전대책은 나왔는데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 평가이다.

미세먼지 저감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하나씩 문을 닫고 있다. 발전5사의 주력 발전원이 문을 닫으면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대책 마련에도 나서야 한다. 남동, 남부, 서부, 중부, 동서발전 5사의 2019년을 세 차례에 걸쳐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발전 5개 공기업이 전환의 길목에 섰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발전 5사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당장 싸고 풍부한 전기를 공급하는 게 목적이던 과거 에너지 공급 정책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전환은 우리 정부만 추진하는 정책이 아니다. 이미 각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변화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후발 주자다.

한국중부발전이

2013년부터 정부 주도로 전력 시장 개혁(EMR) 정책을 시작한 영국은 2012년 발전소 17기로 23기가와트(GW)이던 석탄발전량을 2016년 8기(14GW)로 감축했다. 독일은 사회적대화기구를 꾸려 늦어도 2038년까지 ‘탈석탄’을 통해 석탄발전량을 0으로 줄이기로 약속했다.

이런 흐름 속에 국내 발전 5사들의 역할이 주목받는다. 노동자 소득과 지역경제 안정화를 챙기면서 재생에너지를 확산하려면 정부와 공기업이 모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생에너지로 향하는 ‘돈’… 미래가 달렸다

글로벌 금융 자본의 흐름은 미래 에너지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돈은 석탄 대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향하고 있다.

미국 대형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우려가 높은 사업에 금융 제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6일(현지시간) CNBC 등 미국 현지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골드만삭스는 앞으로 10년 동안 지속 가능한 금융 관련 프로젝트에 75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화석연료 회사에는 보다 엄격한 대출 정책을 구현한다. 발전용 석탄 채광과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은 금융 제공 대상에서 제외했다.

지구촌이

씨티그룹은 이보다 앞선 2015년 기후변화 영향을 줄이기 위해 10년 동안 1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를 보면 씨티그룹은 이 돈을 녹색 이니셔티브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쓰기로 했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금융 자본이 석탄을 버리고 재생에너지로 향해가는 이유는 거기에 미래가 있기 때문”이라며 “석탄이나 원전은 미래에 좌초자산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좌초자산은 시장 환경의 변화로 자산 가치가 떨어져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을 뜻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저렴한 발전원으로 평가 받고 있는 석탄이 앞으로 탄소세와 환경 규제 등의 영향을 받게 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지난 3월 영국 금융 싱크탱크인 카본 트래커 이니셔티브는 석탄발전을 계속함으로써 한국이 입게 될 ‘좌초자산’ 손실액을 1060억달러라고 예측했다. 인도 760억, 남아공 510억, 인도네시아 350억 등 뒤따르는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보고서는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의 43%을 석탄발전이 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처장은 “세금이 계속 커지는 등 석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게 점점 더 비싸지고 환경오염 부담이 늘어나게 되면 발전소 운영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영상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이런 위험 요소가 없는 재생에너지를 하는 것 자체가 발전 공기업의 생존전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전5사 전환 속도 느려… 사회가 변화 고민해야

국내 발전 5사의 신재생에너지 설비 현황을 살펴보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빠르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공공데이터포털과 각사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대부분 발전용량 300메가와트(MW)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서부발전과 남동발전이 2019년 기준 350MW 수준으로 높은 편이었다. 각 발전사들은 5% 정도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030년까지 20~2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발전 공기업들이 주력하는 부분은 석탄발전소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전환하는 정책이다. 올해 내놓은 대체의향서 규모로만 설비용량 8000MW로 15~16기 규모다. 이밖에 폐쇄하는 석탄발전소 규모 또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거치면 20기 안팎으로 예상된다.

한국남부발전이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로 기존 석탄 만큼의 대용량 설비를 한꺼번에 갖추기 어려운 만큼 현재 5개 발전사들이 석탄에서 가스로 전환을 추구하는 건 맞는 방향”이라며 “국제적으로 공급이 늘어나 가격도 낮아졌고, 장기 계약 의존도도 떨어져 상황이 좋다”고 전망했다.

장기적으로 태양광·풍력 등 진정한 의미의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발전사들의 일자리 문제와 지역경제 붕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결국 연료가 유연탄에서 LNG로 바뀔뿐 화력발전소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선택지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 문제를 단순히 개별 발전사만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통합한다든지, 사회적대화기구를 만들어 논의의 틀을 확장한다든지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덴마크의 국영에너지기업 동에너지(DONG Energy)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석유 등 화석연료 기반 전력회사이던 동에너지는 2006년부터 발전소에서 석탄 소비량을 줄여왔다. 2006년 620만 톤이던 석탄 발전량을 10년 동안 170만 톤으로 감축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23년까지 석탄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동에너지는 석유와 가스 사업을 정리하고 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로 전략을 바꾸면서 회사 이름도 외르스테드(Ørsted)로 변경했다. 석유천연가스의 줄임말이었던 동(DONG)을 빼버린 것이다. 외르스테드라는 사명은 1820년 전류의 자기작용(전자기장)을 발견한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Ørsted) 이름을 본떴다.

독일 4대 독과점 전력회사 가운데 하나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전력회사(EnBW)는 2020년까지 기존의 화석연료 전력 판매수익을 80% 줄이고 대신 재생에너지로부터의 수익을 250% 증대하는 새로운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물량을 늘리는 데 너무 연연하지 말고, 과정을 유연하게 하는 기술 옵션 등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며 “가스복합이나 태양광 등 대안 설비들을 지역에 들여온 뒤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제대로 이루려면 보상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석탄발전을 일찍 문 닫게 하려면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보상해 줘야 하는 것”이라며 “노동자 일자리 전환, 계통 보완, 운영 등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정부가 국민에 솔직히 설명하고 전기요금 인상안 논의에 나서야 할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