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eets DESIGN] 직장은 갖고 싶지만 유연하게 일하고 싶어

테크는 젊은 세대가 원하는 워라밸의 해결책일까?

2019-09-26     박진아

지난 9월 21일은 청년의 날이었다. 올해로 3회 밖에 안되는 신생 기념일이지만 국회는 어린이 날, 성년의 날, 어버이날 외에 청년의 날을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청년이 스스로 원하는 삶과 미래를 공론화해야 정책입안자들이 그에 부응할 대책을 마련하고 제도로 정착시킬 수 있다는 논지다.

현정부가 2018년 7월부터 도입한 주 52시간 근무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워라밸’ 문화가 안착되고 있다. 과거 신의 직장에서나 있었던 칼출근 칼퇴근 특권은 이제 웬만한 직장에서도 재빨리 실행되고 있다. 이제 직원에게 야근을 시키거나 정해진 근무 시간 외 직원을 개인시간을 뺐는 고용자는 앞으로 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최근 청년들이 중요시하는 권리는 직장에서 두드러지게 표면화된다. 특히 젊은 세대 직원일수록 야근이나 주말근무는 없어져야 할 구시대적 근로문화이며 퇴근 후 직장회식은 근로시간의 연장이라 여긴다. 퇴근을 미룬채 책상에 앚아 있는 상사의 눈치 볼 것 없이 퇴근 시간이 되면 과감하게 책상을 박차고 일어난다. 20-30대층 젊은이들은 IMF와 2008~9년 국제금융위기를 격은 부모 세대를 보면서 평생직장이란 없고 직장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이 행복한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음을 직접 목격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

젊은 세대는 ‘워라밸’ 즉, 일과 삶 사의의 균형(work-life-balance)을 행복한 삶에 중요하다 여긴다. 실제로 국내를 포함한 전세계 각 기관의 통계치에 따르면, 젊은이들도 나이든 세대에 못지 않게 직장내 원만한 사회생활, 승진, 업무성과, 연봉을 중요시하지만 그렇다고 과거 세대가 해오던 잦은 야근과 퇴근 후 단체적 문화에 억지로 순응하면서까지 직장생활을 계속할 의향이 없다. 20-30대 젊은 세대는 그래서 취업 후 1-2년 사이 퇴사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이기도 하다.

그같은 추세는 선진국에서도 널리 보이는 현상이다. 과거 베이비부머와 X세대는 업무의 강도가 세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희생하더라도 높은 연봉과 고속 승진을 목표로 직장생활을 했다. 반면, 요즘 20-30대 젊은이들(1980-1995년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은 워라밸을 존중하는 직장을 위해서라면 연봉, 승진, 파트너 기업 관계 같은 물적 포상을 거리낌 없이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최근 《뉴욕타임스》지 9월 25일 자 기사는 보도했다.

밀레니얼과

그같은 추세를 간파한 국제 회계자문기업인 PwC는 차세대 일자리에 대한 인식 연구(‘NextGen’ 보고서, 2013년)를 발표했다. 2013년 당시 이미 PwC 본사와 해외지사를 통틀어 이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수 3분의 2가 밀레니얼과 Z세대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2016년에는 80%로 더 늘었다. 사원 세대 교체와 함께 기업조직 내 직장문화도 전격적으로 물갈이되고 있다.

일과 삶에 대한 이 세대가 가진 사고방식과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오래 두기 어렵게 됐다. 최근 경기 호황으로 높은 취업율을 누리고 있는 미국의 경우, 특히 숨가쁘게 급변하는 기술역량과 지식을 보유한 전문 인력이 당장 필요한 기업들은 공급이 한정된 우수인재 채용과 유지에 고심하고 있다.

그같은 기회를 틈타 테크관련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세대들은 워라밸이 존중되는 직장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고용자는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과 업무시간을 허용하나? 자녀양육・반려동물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나? 요가나 헬스 등 건강웰빙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나? - 가 구직 특전 점검표가 되고 있다.

가장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은 직장과 사생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PwC의 설문조사 결과는 이렇다. 1)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다. 여유있는 사생활을 희생해 가면서 과중한 업무를 맡지 않겠다. 2) 연봉이 줄고 승진이 늦더라도 사생활과 여가를 허용하는 직장을 택하겠다. 3) 개인주의적 성과위주 업무 문화 보다 의미와 만족감있는 프로젝트를 맡아 팀워크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4) 상부 경영진으로부터 정기적(월 단위)으로 업무에 대한 지원, 조언, 칭찬을 받는 등 상사와 개별적 교감을 공유하고 싶다. 한 마디로, 젊은 세대 사무직 직장인들은 워라벨을 보장하는 유연한 근무환경은 물론 직장 상사 및 동료와 정서적 만족과 피드백을 공유하는 소통하는 조직을 기대한다.

최근 기업들은 직원에게는 융통성있는 업무 환경을 지원하되 전체 생산성은 높일 수 있는 솔루션을 모색하기 위해 테크에 투자한다. 20-30대 인력은 모바일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갖가지 전자 소통방식 - 특히 이메일과 소셜미디어 플랫폼 - 에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런 소질을 발휘하는 세대라는 점 때문이다.

일-사교활동-취미생활-웰빙헬스-가정사

정해진 오피스가 아닌 곳과 근무시간 외 일할 자유 클라우드 기술 기반 협업 플랫폼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여러 직원들이 협동하고 공유하는데 유용하다. 구글은 이미 스케줄 관리, 이메일, 문서 협업, 비디오 컨퍼런스, 인스턴트 메시징 등 사용이 쉽도록 통합체제를 구축했다. 예컨대 구글 행아웃과 줌(Zoom)은 원거리에 분산돼있는 직원들이 다자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툴이다.

멀티태스킹을 돕는 앱 활용 일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헬스・웰빙 앱 - 현대인들은 요가, 명상, 헬스, 조깅, 등산 등 정기적인 체력단련을 하고 있으며 때론 일을 하면서 운동-오락-취미 활동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한다. 업무 중에도 신체와 정신의 건강과 웰빙을 관리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관리 앱 시장의 미래는 앞으로도 밝다.

20-30대

그러나 일의 융통성을 내세우는 워라밸 트렌드가 테크와 결합할 경우 문제점도 지적된다. 실제로 이미 영미권의 직장인들중 70%는 테크의 진보와 디지털화로 인해 직장 업무를 집으로 가져와 계속하고 있어 실질 근로시간은 더 길어졌다고 호소했다(Accenture 보고서, 2013년). 그 결과 각종 자가면역장애, 번아웃, 불안장애,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고학력의 화이트칼라 사무직 종사자 일수록 높은 위험에 노출돼있다.

직장공간과 사생활 영역, 정해진 근무시간과 비근무시간, 근무기와 휴가기, 직장동료와 가족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 진다 함은 곧 24시간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속박을 뜻한다. 융통성 있는 일과 사생활 사이의 경계는 어디까지 둘 것인가? 그에 대한 진지한 사려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테크의 지배 속으로 더 깊이 매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