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국내 사회책임투자, 이제 걸음마 단계...'ESG 투자' 시대가 온다

글로벌 시장서 사회책임투자는 이미 대세...국내는 채권 부문 강세

2019-05-20     이석호 기자

최근 사회책임투자(SRI, Social Responsible Investmen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비재무적인 요소를 반영한 ESG 투자 또한 주목 받고 있다.

ESG(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투자는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지배구조가 건전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ESG 투자는 비재무적인 요소를 반영하고 있어 개별 종목으로서 가치평가가 쉽지 않아 펀드나 ETF 형태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는 주요 대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과 행동주의 펀드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사회적 이슈와 결부된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주요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 지배구조의 건전성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에 기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제 ESG 투자 지표는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경영 전략 지표이자 기업 가치의 평가 기준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에 따르면, 지난해 사회책임투자 자산 총액은 3조 683억 달러로 2014년부터 13.83%의 연평균 성장율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6년 GSIR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자산별로 주식 65%, 채권 33%, 사모투자 등이 1%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투자주체별로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가 전체 투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국내 ESG 투자는 채권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LG화학은 글로벌 화학기업 최초로 15억 6000만 달러 규모의 그린본드(Green Bond) 발행에 성공했다. 그린본드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발행·유통되는 국제채권으로 발행 자금의 사용 목적이 재생에너지, 전기차, 에너지효율 개선 등 친환경 투자로 제한된다. LG화학은 그린본드 발행 성공으로 전기차 배터리 분야 최고 기업으로서 친환경 기업 이미지도 구축할 수 있었다.

신한은행은 작년 8월 그린본드 발행에 이어 지난 4월 4억 달러 규모의 '지속가능발전 목표 후순위 채권'을 발행했다. 투자자들의 지역별 분포는 아시아 50%, 미주 33%, 유럽 17%로 나타났다. 또한 산업은행은 지난 13일 4천억 원 규모의 지속가능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지난해 녹색채권 3천억 원과 사회적 채권 3천억 원을 발행한 데 이어 총 1조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한 것이다.

이외에도 지난 달에 현대캐피탈이 총 3천억 원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했고, 우리카드도 국내 여신전문금융사 최초로 1천억 원 규모의 사회적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이처럼 ESG 채권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ESG 투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또한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SRI 펀드 시장 규모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지난 4월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설정액 10억 원 이상 국내 공모 SRI 펀드 25개의 설정액은 3517억 원에 달했다. KTB자산운용은 지난 3월 KTB투자증권을 통해 ESG 우수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KTB지배구조1등주펀드'를 출시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도 최근 ESG 펀드를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해외 주요국들과 비교할 때 국내 ESG 투자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와 있다. 이미 글로벌 자본시장 선진국들은 대형 연기금 기관투자자들이 ESG 투자를 포함한 SRI 투자 규모를 크게 키우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국내 ESG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외에도 일반 개인투자자들도 ESG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객관적인 측정 기준에 따라 기업의 ESG 수준 평가가 정확히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금융당국에서도 ESG 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금융위는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연내 자본시장법 시행령 등을 개정하고, 대량보유 공시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총자산 2조 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에게 기업지배구조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고, 기업들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단순히 성장성과 수익성 위주의 단편적인 재무정보를 투자 기준으로 삼던 시대가 지나고, 기업의 인식을 좌우하는 비재무적인 위험 관리가 강조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ESG를 포함한 SRI 투자는 국내 연기금이나 대형 운용사 위주의 관심을 넘어서 중장기적인 투자와 지속가능경영에 관심이 높은 사모펀드, 민간 투자기관, 개인투자자들로 점차 확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