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DB하이텍이 '반도체 공급난'에도 설비투자에 신중 기하는 4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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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DB하이텍이 '반도체 공급난'에도 설비투자에 신중 기하는 4가지 이유
  • 김국헌 기자
  • 승인 2021.04.20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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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 확산에 DB하이텍도 주문 폭주..."증설통한 성장 없나" 주주 의견 커져
파운드리 미래 예측 힘들고 설비구매도 어려워...다품종 소량생산 체제, 자금투입 부담 등도 원인

DB하이텍이 설비증설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신중을 기하는 배경으로는 ▲불확실한 파운드리 시장업황 ▲다품종 소량생산체제 ▲부담스러운 설비투자 비용 ▲어려운 설비구매 등이 꼽힌다. 

현재 자동차로부터 비롯된 전세계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IT, 가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주주들로부터 DB하이텍도 증설을 통한 성장을 노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DB하이텍은 반도체 설비증설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DB하이텍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부족 현상은 현재 있는 일이고, 지금 투자하면 약 3년 뒤에나 완공되는데 그 때 수급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DB하이텍은 다른 대형 파운드리 회사들과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업체인데 '소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는 설비를 들여놔도 기존 고객사들이 우리를 찾을 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DB하이텍은 착실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 매출은 사상최초로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영업이익도 2396억원을 기록하며 23.4% 수준의 높은 영업이익률이 기대되고 있다. 

재무구조도 대폭 개선됐다. 부채비율을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2018년 91%에서 지난해 48%까지 낮췄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 현상으로 DB하이텍에도 주문이 몰리고 있다. DB하이텍은 경기 부천과 충북 음성에 팹 공장을 두고 있는데 주문량 급증으로 2개 공장이 모두 풀가동 중이다. 이 외에 넘치는 주문량을 처리하기가 모자라 회사 안팎으로 증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쉼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DB하이텍은 설비증설이 아닌 설비 합리화 등의 방법으로 생산능력을 소폭 늘리는데 그치고 있다. DB하이텍은 오래된 장비 교체 등 공정 효율화 작업을 통해 칩 생산여력을 2018년 월 11만7000장에서 2019년 12만4000장으로 늘린 바 있다. 2020년에는 12만4000장의 생산능력을 3분기12만9000장으로 5000장 가량 늘렸다.

DB하이텍 부천공장 전경.
DB하이텍 부천공장 전경.

파운드리 미래 예측 힘들고 설비구매도 어려워...다품종 소량생산 체제, 자금투입 부담 등도 원인

DB하이텍이 설비증설에 신중을 기하는 첫번째 이유는 파운드리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DB하이텍이 어떤 식으로든 자금을 들여 설비증설에 나서더라도 완공하는데 약 3년 정도가 걸린다. 

현재 반도체 공급부족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3년 뒤까지 공급부족이 이어질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들의 증설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섣부른 설비증설은 3년 뒤 자칫 독약이 될 수 있다. 

두번째 이유는 DB하이텍의 파운드리 사업 성격이다. DB하이텍은 유수의 파운드리 업체들이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과 달리 '다품종 소량 생산' 위주다.

현재 DB하이텍은 약 50여개의 펩리스 수요업체들과 거래를 하고 있다. DB하이텍이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설비를 증설한다고 해서 이들이 계속 주문을 넣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막대한 자금투입 부담은 세번째 이유다. 

보통 반도체 설비를 증설하는 데에는 적게 잡아도 1조원 이상이 든다. 하지만 DB하이텍의 지난해 매출은 9359억원으로 1조원이 안된다. 연간 매출을 뛰어넘는 투자를 쉽게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DB하이텍의 현금성 자산은 5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설비투자를 마음만 먹는다면 KDB산업은행의 투자를 받는 등 방법은 많지만 굳이 무리수를 두지 않는 이유는 상술한 위에 이유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네번째는 새로운 장비 구매가 어렵다는 점이다. DB하이텍은 8인치(200mm) 웨이퍼가 주력인 기업인 반면 TSMC와 삼성전자 등은 12인치(300mm)가 메인이다. 

8인치 웨이퍼는 전력관리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치비(DDI), 이미지센서 등이 만들어지는데 이들 제품은 미세공정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8인치를 사용해도 되며,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도 적합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세가 8인치에서 12인치로 바뀌면서 8인치 장비가 사실당 단종됨에 따라 8인치 설비를 구매하기가 어려워졌다. 신제품이 나오지 않으면서 8인치 장비들의 노후화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DB하이텍이 설비를 증설하려면 기존 잘하고 있는 8인치 설비를 구매해야 하는데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이유들로 DB하이텍은 설비증설을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DB하이텍은 회사 성장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설비투자가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다. 계속 8인치 위주로만 고집할 생각도 없다. 

다만 매출과 수익성 증대를 확실히 꾀할 수 있는 확실한 설비증설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DB하이텍의 성장에 DB그룹 제조부분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업계 관계자는 "다품종 대량생산을 하고 있는 DB하이텍은 의류업종으로 보자면 주문받아 소량을 생산하는 양복점과 같다"며 "어떤 식으로든 설비투자에 나서겠지만 확신이 설 때까지 내부에서 상당한 고심과 논의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국헌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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