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4주년 '안랩 나우' 깜짝 행사 "즐거운 일터 중요"...‘벤처기업’서 ‘국가대표 보안기업' 의미는?
상태바
창립 24주년 '안랩 나우' 깜짝 행사 "즐거운 일터 중요"...‘벤처기업’서 ‘국가대표 보안기업' 의미는?
  • 정두용 기자
  • 승인 2019.03.13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주년을 3일 앞둔 12일부터 복고풍 전시공간 등 ‘안랩 나우’ 사내 깜짝 행사 '훈훈'

안랩이 오는 창립 24주년을 3일 앞둔 12일부터 복고풍 전시장 세트를 마련해 ‘안랩 나우’ 사내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안랩 관계자는 13일 “올해 창립기념 행사는 대형 행사 대신 즐거운 일터 만들기의 일환으로 '안랩 나우'사내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랩 나우의 의미는 '안랩, 나에서 우리로’라고 한다. 이 이벤트는 임직원간 소통을 강화할 목적으로 기획됐다. '임직원 무작위 모임’, ‘추억의 간식 뽑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안랩 제공> 안랩이 오는 창립 24주년을 3일 앞둔 12일부터 ‘안랩 나우’ 사내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추억의 간식 뽑기' 이벤트 부스에서 직원이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

임직원 무작위 모임은 랜덤으로 12일, 13일 양일간 인원을 추첨해 조를 편성했다. 조별 구성원들이 이벤트 기간인 4월 중순 전까지 원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활동은 근무시간 2시간을 할애해 진행할 수 있다. 음주를 제외한 식사나 운동, 영화관람 등 자유로운 취미활동을 함께 즐기자는 취지로 기획됐다고 한다.

안랩 판교사옥 본사 지하 1층 '안랩 계단' 앞에는 ‘추억의 간식 뽑기’ 이벤트 부스가 설치됐다. 아폴로나 쫀디기 같은 옛 문방구에서 팔던 추억의 과자를 맛보고, 선물도 받을 수 있는 행사가 12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다.

안랩 관계자는 “사내 구성원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콘셉트로 진행됐다”면서 “즐거운 일터 만들기의 일환으로 진행된 만큼, 신나는 분위기에서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안랩이 창립 24주년을 맞아 판교 사옥 지하 1층 '안랩 계단' 앞에 복고풍 세트장처럼 전시 이벤트 코너를 마련했다.

또한, 안랩은 매년 3월마다 창립을 기념해 전직원이 모여 사진 촬영을 하는 행사도 이어오고 있다. 창립기념일인 15일은 회사 휴무일로 지정됐다.

안철수 박사가 세운 안랩, 단칸방에서 시작해 ‘국가대표 보안기업' 되기까지

우리나라의 대표 소프트웨어기업 안랩은 세계적으로 정보보안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지난 1995년 3월 15일 창립됐다. 창업자는 서울대 의대 출신 안철수 박사다. 그는 '백신(Vaccine)'이라는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발한 후부터 쌓은 정보보안 노하우를 기반으로 회사를 차렸다. 

지금은 '국민백신'이라 불리는 V3 Lite 등을 비롯 각종 보안솔루션, 통합보안장비, 보안관제서비스, 클라우드 보안 등 각종 보안사업을 하는 국내 최대 보안기업이다. V3 백신은 안랩 창립 이전인 1988년 당시 의대생 안철수가 만든 국내 최장수 소프트웨어이기도 하다.

안랩 창립 이전까지 무려 7년간 안철수는 자신의 자취 방에서 혼자서 개발 및 서비스 등을 모두 해내면서도 무료로 배포했다. 낮에는 의대 공부, 밤에는 백신 개발자 생활을 해냈던 셈이다.

<독자 제보>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에서 4차산업혁명시대의 미래 비전 등에 연구 중인 안철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현장에 지난 1일 방문했다. 안철수는 LG전자 등 글로벌 주요 기업 부스를 참관하며 5G 등 4차산업혁명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고 알려졌다.

한글과컴퓨터사는 1995년 당시 안철수에게 “연구소의 전반적인 운영과 개발은 당신이 맡고, 독점 판매권은 우리가 담당하겠다”며 “대신 5억원의 매출을 보장하겠다”는 투자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였던 안철수는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중에 한컴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안랩은 독자적 생존의 길로 가야 했다.

그렇게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는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3명의 인원으로 출범했다. 사무실 출범 직전 준비 1994년 당시는 안철수 대표의 가정집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1호 직원은 당시 어린 딸 설희 양과 함께 식탁에서 일해야 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벤처기업이란 말이 없을 당시라서 단칸방에서 세운 소기업인 셈이다.

1997년 IMF 위기를 넘긴 안랩은 1999년 'CIH 바이러스 대란'과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 캠페인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4.5배 성장했다. 국내 보안업계 최초로 매출 100억원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안랩은 24시간 바이러스 및 해킹 등에 대한 모니터링 및 대응을 실시한다.

2001년 9월 13일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 한국시간 기준 9.11테러가 벌어진 다음 날이다.

2002년에는 안랩도 사상 처음으로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 놓였다. 경제 침체가 원인이었다. 그러나 COO(최고운영책임자)와 CEO(최고경영자)의 역할을 분리해 김철수 부사장이 운영을 책임지고 안철수 당시 사장은 장기 전략 수립에 집중, 2004년 매출 300억원을 넘어섰다.

이후, CEO는 2대 김철수 사장, 3대 CEO인 오석주 대표, 4대 CEO 김홍선 대표로 이어졌다. 지금은 권치중 대표가 안랩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안랩은 스마트폰, 클라우드, 소셜네트워크 등 IT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지난 2011년에는 국내 소프트웨어 및 보안 업계 최초로 수주 1000억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안랩은 창립 이전부터 지금까지 개인에게 무료로 백신 보급은 물론 2003년 1.25인터넷 대란, 2009년 디도스 대란 등 국가적 사이버 재난에 무상으로 긴급백신, 보안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등 공익기업으로서 의미가 크다. 이를 수입대체효과 등 비용으로 환산 시 국민들이 받은 혜택은 수조원~수십조원 가치로 추정된다. 

안랩 판교 사옥

안랩의 창업 이념이 "우리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에서도 기존 기업과 차별화된다. 공익정신에 기반한 '사회적기업'의 시초라 할 수도 있다.

안철수는 안랩 창립 10주년에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순이익만 100억을 돌파하면서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직후였다. 2005년 3월 18일, 당시 안철수 이사회 의장은 퇴임 인사를 대신해 '안랩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며'라는 글을 전해 후훈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창업자 오너가 회사가 가장 좋은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에게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맡기고 경영에서 물러난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

그는 당시 글에서 기업경영을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두고 “윤리경영이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이 되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며 “공익과 이윤추구가 상반된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고 밝혔다.

정두용 기자  lycaon@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