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연금 의결권 원칙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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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연금 의결권 원칙은 있는가
  • 편집부
  • 승인 2013.10.2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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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관훈 선문대교수

2005년 기금관리기본법의 개정으로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가 전면 허용된 후,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400조원이 넘는 막대한 기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지난 해 말 기준으로 5%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도 218개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의결권행사와 관련한 문제이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가 허용된 시점부터 의결권행사와 관련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은 국민연금이 재벌개혁이나 경제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는 국가에 의한 기업통제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이러한 논란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이처럼 혼란이 계속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와 관한 명확한 원칙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개인 주주와 달리 타인의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경우 운영자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연기금의 의결권행사와 관련하여 명확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1988년 미국 정부는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는 ‘자산운용행위’의 일부분이라는 원칙을 확립하였다. 당시 미국 기업연금의 자산운용에 대해서는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ERISA)’에 따라 가입자 및 최종수익자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신인의무(fiduciary duty)’가 적용되었다.

의결권행사가 자산운용행위의 일부분이라고 한 것은 의결권행사도 궁극적으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수익률 제고를 기본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미국정부의 입장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기업연금이 일정시기에 동시에 개최되는 주주총회의 의안들을 모두 분석하여 가입자의 이익을 고려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하여 연기금등 기관투자자의 의결권행사를 돕는 ‘의결권행사 자문회사’가 성장하였다. 최근 KB금융에서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하기 위해 내부정보를 유출한 사건과 관련되었던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대표적인 의결권행사 자문회사이다.

미국 기업연금과 우리 국민연금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국민의 자산으로 조성된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에도 명확한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의결권행사의 기본원칙은 가입자인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국민은 국민연금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기대한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기금운영은 가입자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수익률 제고를 최우선 목적으로 해야 한다. 당연히 의결권행사도 그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공적성격의 국민연금이 무조건 수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사회책임투자(SRI)’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도 국민연금이 사회적, 환경적, 지배구조적 요소를 고려한 투자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수익률 제고가 기본원칙이며, 다른 요소들은 일종의 ‘외부효과’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는 투자대상 기업이 경영상 문제가 있는 경우 즉시 주식을 처분하기 어려우며 의결권 등 주주권의 행사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게 된다.

즉, 기업의 수익 및 경제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지배구조의 개선도 요구하고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할 것도 요구하는 것이다. 1998년 미국 노동부가 기업연금이 ‘사회책임투자(SRI)’를 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의에 대해 다른 투자수단보다 수익률이 낮지 않다는 조건 하에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즉, 투자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 윤리적 측면만 고려한 투자나 의결권 행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기업연금연합회의 의결권행사기준의 경우도 정치적, 윤리적 목적만을 위한 의결권행사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를 통해 재벌개혁이나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기업가치 향상을 통한 투자수익률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나 신인의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과연 투자수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수익률제고라는 신인의무의 준수를 위해 ISS와 같은 의결권행사조언회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 국민연금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ISS로부터 자문을 받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의결권을 행사함에 있어 수익률제고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도 주주인 이상 당연히 의결권을 행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다만, 무엇을 위한 의결권행사인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은 정하고 가자는 것이다.

편집부  g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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