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보호법 허점 ‘재건축 편법’...홍대에서 밀려나는 예술인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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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보호법 허점 ‘재건축 편법’...홍대에서 밀려나는 예술인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없나?’
  • 정두용 기자
  • 승인 2019.02.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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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가 재건축을 위해 임차인들을 내보내는 조건으로 계약금을 걸어둔 상태”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공상온도. 홍대 인근에서 문화 복합공간으로 유명한 이 카페는 독립출판물서점, 인디 밴드 공연장, 미술품 전시장으로도 활용된다. 이곳을 운영 중인 함현희씨(33)는 지난 1월14일 "새 건물주가 재건축을 원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사진=정두용 기자]

“3월 말까지 가게를 비워주세요.”

함현희씨(33)는 지난 1월 14일 건물주로부터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졌다고 한다. 홍대 인근에서 문화 복합공간으로 유명한 카페 ‘공상온도’에 떨어진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유는 “4월 중순에 바뀌는 새 건물주가 재건축을 원한다”였다.

올해 공상온도와 건물주간의 임대차 계약 기간은 12월까지였지만, 재건축 앞에서 ‘상가 임대차보호법’은 쓸모가 없었다. 처음 건물에 입주할 당시 5년까지 보장받았던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도 1년이나 더 남아있었기에 건물주의 요구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

2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공상온도에서 만난 함씨는 “이 공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보상금이라도 받아 이사하려면 건물주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5년 12월부터 “화장실밖에 없었던” 40평 남짓한 지하 공간을 ‘홍대의 문화 아지트’로 만들기까지. 지금의 공상온도엔 한씨의 노력이 곳곳에 묻어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결국 함씨는 지난 21일 새로운 건물에 입주 계약서를 썼다. 지금 위치보다 유동인구가 더 적고, 반지하에 규모도 13평 작아졌지만 보증금은 2,000만원, 월세는 100만원이 올랐다. 하지만 신축 건물이라 지금처럼 재건축을 빌미로 쫓겨날 위험이 적다는 점이 한씨의 발을 붙잡았다.

사라져가는 홍대 문화...“결국 남은 건 빚”

사진작가였던 함씨는 ‘함께 꾸려가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어 공상온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카페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이 항상 비치돼있고, 인디 밴드의 공연과 미술품 전시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함씨는 “주변 예술인들이 물질적인 여건에 부딪혀 본인의 작업을 줄이고 결국엔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면서 “어떻게 하면 비용을 최소로 줄이고 자신을 홍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다른 부분은 대부분 줄일 수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대관료였다”고 전했다. 

이어 “내가 직접 공간을 운영한다면 비용 문제로 꿈을 포기하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공상온도의 취지를 설명했다.

공상온도에선 정기적으로 인디 밴드의 공연이 열린다. [사진=함현희 제공]

이런 특색 때문인지 입소문을 타고 공상온도를 찾는 사람은 많아졌다. 최근 주말에는 평균 150명 남짓한 손님 받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조금씩 수익이 나고 있지만, 2년 동안은 늘 적자였어요. 계속해서 빚만 쌓여갔죠. 이제야 숨통이 조금 트였는데, 다시 시작하려니까 막막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매출을 회복하려면 적어도 6개월은 걸릴 거라고 보고 있어요. 3년 넘게 운영해 왔는데 결국 남은 건 빚밖에 없네요.”

함씨는 대출 4,000만원을 받고 카페를 열었다. 2년 동안 빚은 8,000만원까지 불어났고, 요즘에서야 조금씩 갚고 있다고 한다. 

“빚이 늘어나도 투자라고 생각했어요. 계약 당시 상가 임대차보호법으로 영업 기간 5년은 보장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4년도 못 채우고 나가야 할 상황이 되니까 참담합니다. 2~3년 할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마이너스 지출을 감당하지 않았겠죠. 6,500만원 빚을 떠안고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계속 카페를 운영했다면 대부분 갚을 수 있었던 금액이죠.”

소방시설도 문제였다. 함

씨는 “건물이 근린생활시설(상가)로 허가가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방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다”면서 “지하 30평 이상의 가게에선 꼭 소방시설을 갖춰야 장사를 할 수 있다, 결국 설치비용 1,900만원 중 150만원을 제외하고 모두 내가 부담했다”고 말했다. 

이런 금액 모두가 5년의 카페 운영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투자였다는 설명이다.

함씨는 이같이 판단한 근거로 3년 전 계약 당시 ‘현 건물주가 건물의 외부 리모델링을 완료했다는 점’, ‘반년 전에 건물을 매입했다는 점’을 꼽았다. 5년도 안 돼 재건축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그러나 “새 건물주가 재건축을 위해 임차인들을 내보내는 조건으로 계약금을 걸어둔 상태”라며 “사정을 좀 봐 달라”던 현 건물주가 제시한 보상금은 턱없이 적었다. 

함씨는 시세차익의 20분의 1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보상금을 받지 못하면 이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카페를 접어야 했어요. 그래서 보상금 협상에만 3주가 걸렸는데도 결국은 큰 손해가 났죠. 새로 입주할 공간의 시설공사ㆍ인테리어ㆍ이사비용 등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2달가량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계약 해지를 통보받아 새로 입주할 곳의 공사 기간도 빠듯해요. 한 달 이상은 영업을 못 할 것 같은데 걱정입니다. 당장 3월만 하더라도 양쪽 건물에 월세를 내야 하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위험성까지 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이 캄캄합니다. 이곳에서 계속 카페를 했다면 나가지 않았을 지출인데, 왜 그걸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23일 공상온도에서 만난 함현희씨는 "홍대가 문화의 중심이라는 입지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정두용 기자]

함씨는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냥 참담했어요. 모든 것이 좌절감으로 다가왔죠. 당장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이걸 접어야 하나, 접으면 난 무엇을 해야 하지. 그 많은 빚은 어떻게 하나. 어디 가서 숨어 살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일주일을 통틀어서 3시간도 잠들지 못했어요. 저에겐 목숨이 걸려있는 문제였으니까요.”

이런 그에게 힘이 돼 준 것은 동료 예술인들이었다. 공상온도에서 공연이나 전시를 했던 예술인들과 독립출판물을 냈던 작가들의 응원 덕에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다고 했다. 

함씨는 “공상온도는 이미 나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이들의 열정이 공상온도를 만든 것”이라면서 “사실 너무 힘이 들어 다 그만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문화공간이 하나씩 없어진다면 결국에 홍대 문화는 결국에 사라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를 하면서 공간이 더 작아지긴 했지만, 힘든 예술인들에게 계속해서 설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재건축이란 이름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점은?

함씨가 현재 카페를 운영하는 곳은 홍대의 주된 상권과는 거리가 멀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오피스텔이 즐비했던 지역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홍대의 ‘걷고 싶은 거리’ 만큼이나 길가에 사람이 가득했고, 골목골목마다 특색 있는 가게들이 들어섰다.

2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동진시장 골목은 젊은 행인들로 가득했다. 최근 동진시장엔 독특한 분위기의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정두용 기자]

상권이 형성되자 임대료가 올랐다. 높아진 서교동의 임대료를 피해 망원동ㆍ동교동ㆍ연남동ㆍ연희동으로 자리를 옮긴 젊은 예술인이 만든 독특한 분위기 덕에 형성된 상권이지만, 그 이익은 문화를 만든 이들이 아닌 ‘건물주’에게로 돌아갔다. 한씨도 ‘홍대 문화’를 형성한 사람 중 하나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해묵은 문제다.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문화 형성 등의 이유로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올라 기존 세입자가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홍대 인근에서 나타났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란 말도 이때 탄생했다.

부동산 114에서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4분기부터 2017년 4분기까지 임대료가 가장 많이 오른 지역에 망원동(3위ㆍ15.1% 상승)과 연남동(5위ㆍ12.7% 상승)이 꼽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가구주택을 매입한 후 상가로 개조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연남동에서는 2015년부터 주거형 다가구주택을 구입해 1, 2층을 소규모 카페나 음식점 등으로 개조해 임대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조사 전문업체 ‘부동산 도서관’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연남동에서 다가구주택을 상가로 개조한 경우는 2015년 85건, 2016년 102건, 2017년 75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23건이 집계됐다.

5년 전부터 연남동에서 독립출판서점 ‘헬로인디북스’를 운영하는 이보람씨(40)는 “지금은 조금 주춤하지만, 심할 땐 한 집 건너 한 집이 상가 개조공사를 했다”면서 “5년 전과 비교하면 거리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동진시장 인근의 공사장 모습. 옆 카페와 공사 중인 건물의 모습이 대비 된다. 연남동에서는 2015년부터 주거형 다가구주택을 구입해 1, 2층을 소규모 카페나 음식점 등으로 개조해 임대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사진=정두용 기자]

함씨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잃은 것이 주거지인지 가게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국회에선 지난해 10월 임대료 급등으로 거리에 내몰리는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고자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주요 골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의 행사 기간을 5년에서 10년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전히 허점은 존재했다.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사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 1항에 명시돼 있지만, 예외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제10조 7호 나목과 다목에선 각각 ‘건물이 노후ㆍ훼손 또는 일부 멸실되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경우’와 ‘다른 법령에 따라 철거 또는 재건축이 이루어지는 경우’엔 임대인이 계약을 거부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함씨가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게를 뺀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건물이 1990년 7월에 지어져 노후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법정 다툼을 할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 12월까지 버텨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더라고요. 솔직히 이길 자신도 없었죠. 차라리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보상금을 받고 건물주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제가 운영하는 문화공간을 다른 곳에서라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불확실한 보상금의 문제도 남아있다. 제10조 3항엔 ‘서로 합의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한 경우’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 다툼의 소지가 있다. 함씨의 경우도 ‘상당한 보상’을 두고 건물주와 합의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연남동에서 10년째 부동산을 운영는 김모 공인중개사(56)는 “홍대 인근에서 함씨의 경우가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니다”면서 “함씨처럼 홍대 문화를 만든 젊은 자영업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임대차보호법이 강화됐지만, 재건축 등의 이유로 기간을 못 채우고 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면서 “문화예술인들이 이 주변에 정착하면서 임대료가 계속해서 오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함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홍대가 문화의 중심이라는 입지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홍대 인근에서, 홍대 문화가 좋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할 거라 생각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돈보다 ‘문화공간이 계속 운영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장소가 좋아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건물주분들도 이런 공간의 특성을 조금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너무 좋아하지만, 빚을 내면서까지 할 순 없잖아요.”

23일 공상온도 운영 중인 함현희씨(33)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사진=정두용 기자]

정두용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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