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에 미친 사람
상태바
전기자동차에 미친 사람
  • 편집부
  • 승인 2013.08.19 0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수종 언론인

김수종
김대환 씨는 조그만 전기사업체를 경영하는 사장입니다. 그의 집은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앞에 있는 아파트이지만, 그의 직장은 제주시 영평동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있습니다. 하루 두 번 5·16도로를 타고 해발 750m의 한라산 중턱을 넘어 60㎞를 출퇴근해야 합니다. 산악기상이 변덕스러워 비, 눈, 안개, 바람이 수시로 운전자를 괴롭히는 곳입니다. 웬만한 중형차는 고개를 오를 때 힘이 달리니 자동차 상태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김 씨는 요즘 이 산악도로를 타는 게 즐거워졌습니다. 그의 새 ‘애마’ SM3 ZE가 앞에 가는 차들을 여유롭게 제치고 언덕을 쉽게 치고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르노삼성이 야심차게 내놓은 준중형급 전기자동차입니다. 소음은 타이어 굴러가는 소리가 차체를 통해 전해지는 정도입니다. 매연은 물론 이산화탄소도 배출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동력이 좋습니다. 연료비(충전료)도 휘발유 차의 20% 정도로 헐합니다.

하지만 김 씨는 전기자동차를 타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배터리를 가득 충전해도 약 130㎞밖에 달리지 못합니다. 급속충전기로는 30분, 가정용 완속 충전기로는 대여섯 시간 걸립니다. 김 씨는 회사에 도착하면 충전기에 자동차를 연결하고, 퇴근하면 집에서 충전합니다. 저녁에 손님 접대를 하면서도 충전기가 있는 곳에 차를 세워야 합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이런 게 귀찮아 휘발유 차를 선택하게 마련입니다.

전기차에 충전하는 김대환씨
김 씨는 이런 일을 귀찮아하기는커녕 즐기는 듯합니다. 마치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재빨리 구입해서 이것저것 시험사용하는 얼리어답터(early-adaptor)와 비슷합니다. 그는 사실 전기자동차의 '얼리어답터‘입니다. 그가 타는 전기자동차는 언덕을 내려갈 때는 저절로 충전이 됩니다. 그는 한라산 중턱을 내려가는 15㎞ 동안 자동차가 발전기 노릇을 한다는 사실에 즐겁습니다.

그는 독일 BMW가 출시하는 전기자동차 ’i3'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한국인으로는 제일 먼저 사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i3은 옛날 휘발유차 모델에 단순히 엔진만 없앤 것이 아니라 소재와 디자인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새로운 컨셉의 전기자동차라고 합니다. 그는 탄소제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스마트그리드, 전기자동차를 결합시키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 찾아가 공부합니다.

김 씨가 전기자동차에 미쳐 있는 것은, 그의 이력과 업(業)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는 강원도 횡성군 시골에서 태어나서 안양공고를 거쳐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우연히 군대 생활을 제주도 서귀포에서 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제대 후 서울이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했습니다.

90년대 중반 서귀포 시내에 ‘대경엔지니어링’이란 간판을 달고 조그만 전기회사를 차렸습니다. 소도시 어디에서든 필요한 전기의 설비, 감리, 방재 서비스를 해주는 사업입니다. 시골 인심이 후하다고 하나 여행객에게나 통하지 토착인들과 경쟁하며 장사할 때는 전혀 딴판입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서 배타적인 섬 문화를 극복합니다.

제주도는 전력수요가 고작해야 60만㎾에 불과하고 그 수요량의 40% 이상을 육지에서 해저 케이블로 끌어다 쓰는 에너지 스트레스 지역입니다. 따라서 보통 전기사업자의 눈에는 관공서의 공사 수주나 잘 받고 안전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것 외에 다른 성장 잠재력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김 씨는 제주도에서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전력소비시장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곳이지만 미래 전력산업의 발전추세로 볼 때 테스트베드(test-bed)로서의 잠재력을 보았습니다. 전력산업 연구 분야에서 일하는 그의 대학 동창들이 제주도에 놀러왔다가 들려주는 얘기가 주로 도서지방의 신재생에너지 이용방안, 지능형전력망(스마트그리드) 발전 가능성 같은 정보들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 씨는 제주도가 섬의 크기, 인구수, 지정학적 위치, 경관 등으로 볼 때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의 실험무대로서 더없이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굳혀갔습니다.

김 씨는 서귀포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그의 친화력을 무기로 사업 노하우를 터득했습니다. 수도권, 울산, 포항 등에 있는 굵직한 전기 관련 회사 CEO들이 제주를 찾을 때 유대관계를 맺고 육지의 전기공사를 따낼 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활용분야의 테스트베드로서 제주도의 장점을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 앞 작은 섬 가파도에 올레길을 유치하고 ‘탄소제로 섬’의 컨셉을 만들어 그의 영향권에 들어온 CEO의 관광코스로 삼았습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 정책을 내놓으면서 제주도에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실증단지를 구축했습니다. 전력산업과 IT산업이 결합되는 이 국가적 정책 사업은 한전을 비롯한 대규모 전력회사와 IT회사 그리고 정부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남다른 호기심과 벤처정신이 강했던 김 씨는 토착기업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이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쌓아놓았던 공직, 기업, 학계 인맥이 보잘것없이 작은 그의 회사를 이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김 씨는 작년에 또 하나의 일을 저질렀습니다. 제주도가 환경부의 전기자동차 선도지역으로 지정되는 것을 계기로 포스코ICT를 비롯한 유력기업들을 제주도에 끌어들여 ‘제주전기차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제주도가 장차 전기자동차의 테스트베드가 되면 충전인프라와 서비스 등 전기자동차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지금은 돈만 먹는 하마이지만 그는 제주도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전기자동차의 섬’으로 변신하는 것을 비즈니스 종착역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김 씨는 제주도가 전기자동차 시범도시로 이상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제주공항을 기점으로 어디를 가든 60㎞ 이내의 거리에 있습니다. 웬만한 곳은 한 번 충전으로 왕복이 가능합니다. 또 해발 1m에서 1,100m까지의 고도를 따라 도로가 있고, 높은 한라산의 영향으로 기상변화가 심한 것도 테스트에는 더없이 좋다는 것입니다.

지난 7월 전기자동차와 관련해 놀랄 만한 일이 제주도에서 벌어졌습니다. 전기자동차 선도도시로 지정받은 제주도가 올 하반기 160대의 전기자동차를 민간에 보급하기로 하고 공모한 결과 무려 487대의 신청이 접수되어 경쟁률이 3 대1을 넘은 것입니다.

사실 신청자가 몰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와 제주도의 보조금입니다. SM3ZE의 경우 환경부 보조 1,500만원과 제주도 보조 800만원이어서 같은 차종 휘발유차보다 불리하지 않은 가격대입니다. 그러나 아직 불편 요인이 많습니다. 제주도 전역에 설치된 충전소가 386곳밖에 안 되고 충전시간도 깁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전기자동차를 주문하는 것은 자동차 소비심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 씨는 “일단 타 보면 소음과 배기가스가 없어 상쾌하고 파워도 좋은데다 환경을 생각하는 시민의식이 서서히 작동하는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신재생에너지, 스마트그리드, 전기자동차는 일관된 정책시스템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거대한 그림입니다. 국책연구소나 대기업에서 실험적으로 할 분야 같습니다. 그런데 구멍가게 같은 전기회사의 사장이 나서는 것을 보면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우화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스마트그리드와 전기자동차 분야에 미친 듯이 달려드는 김 씨를 보면 성패에 관계없이 그 도전이 아름답습니다. 환경과 관련된 산업분야는 정부정책에 좌우됩니다. 정부는 외양이 화려한 하드웨어를 좋아합니다. 기업이 소프트웨어로 이 하드웨어를 채워줘야 하는데 김 씨 같이 혼신의 열정을 다하는 중소기업가들이 많이 참여해야 열매가 영글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김대환 씨는 구경할 만한 대상입니다.

김 씨에겐 남다른 집념이 있습니다. 그는 30여명이 근무하는 회사 사무실을 제주시에 두고 있지만, 본사의 주소는 대여섯 명이 근무하는 서귀포 사무실로 등록했습니다. 사는 곳도 서귀포를 고집합니다. 서귀포에 본사를 둔 코스닥 상장회사, 5,000만원 이상의 연봉 사원 50명을 가진 강소기업을 만드는 게 그의 꿈입니다.

기업적으로 김 씨의 꿈이 유효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한 사람의 성공담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고 허망한 실패담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기업가의 집념이란 게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흥미롭게 김 씨를 지켜봅니다.
 

편집부  gnomics@naver.com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