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에서 보낸 최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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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보낸 최열의 편지
  • 편집부
  • 승인 2013.07.0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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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언론인

 
지난 6월 중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환경운동가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감옥에서 보내온 편지였습니다. 최열은 지난 2월 15일 알선수재 혐의로 상고심 공판에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뉴욕특파원으로 근무하던 1992년 6월 유엔환경개발회의(Earth Summit)가 열린 브라질 리우에 취재를 갔을 때 처음 최열을 대면하게 됐습니다. 나는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중요한 환경이슈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있는 데다, 몇 년 전 중국사막화에 대한 책도 같이 쓴 인연과 그의 친화적인 태도로 인해 사적인 교류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감옥에 간다는 것은 개인에게 중병에 맞먹는 큰 환난이라 송별 인사라도 나누는 게 마땅했지만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즈음 어머니가 입원했고 얼마 후 운명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보내온 조의에 감사의 뜻도 전할 겸해서 간단히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고, 얼마 후 그가 편지를 보내온 것입니다.

그의 편지를 읽고 자유칼럼 독자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란 대개 사적인 사연을 주제로 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사적인 냄새보다는 한 환경운동가의 신념, 세계관 그리고 내공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옥살이를 하는 그가 첫 번째 옥살이와 지금을 비교하며 피력하는 감회가 흥미를 끌었습니다. 그의 편지 봉투를 뜯으며 자유를 상실한 답답함이 배어날 줄 생각했는데 그런 구절이 한 줄도 없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습니다. 그는 역시 타고난 시민운동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시민운동가 최열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불편한 글일 수도 있으나, 감옥 속에서 생각을 정제해가는 시민운동가의 편린을 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부를 묻는 몇 줄을 빼고 최열의 편지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처음 수감되었을 때 운동장에 눈이 수북이 쌓였는데, 벌써 한여름이 되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이곳 천왕산 아카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방에까지 그득했는데 지금은 밤꽃 향기가 그득합니다.

38년 전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된 서울구치소 감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네요. 평반 독방에는 수세식 좌변기와 수도가 설치되어 있고 벽에는 23인치 LCD TV가 설치되어 드라마와 뉴스도 볼 수 있습니다. 신문도 구독하고 책도 구입해 볼 수가 있어 그간 30여 년 동안 현장을 쫓아다니느라 방전된 머리를 재충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 ‘내 안에 감옥’이라는 감옥체험 수양관이 건립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변기가 달린 1평반짜리 독방 32개를 만들고 4박5일 일정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참회와 명상으로 수련한다고 하네요.

이곳 교도소는 1명이 1년간 생활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이 2,300만원이라고 하네요.
나는 옥중에서 환경공해 공부하고 환경운동가가 되었는데 큰 덕을 본 거지요.

얼마 전에는 긴급조치 9호 재심으로 법정에 출두해서 검사 무죄구형에 재판장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재판장이 국가가 잘못했다고 공식으로 사과를 하더군요.

이곳에 들어온 이후 매일 1시간씩 운동장에서 조깅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몸도 가뿐해지고 유연해졌습니다. 규칙적인 생활과 식단으로 봄에는 사과와 딸기를 먹고 지금은 참외와 방울토마토를 먹고 있습니다.

사실 21세기 들어오면서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경쟁이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과를 내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마모시키는 자기착취로 가는 것 같습니다. 피로사회, 위험사회, 양극화사회. 이 때문에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불면과 만성질환 자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네요.

나는 이번 감옥생활이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글북의 작가 키플링이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를 보고 화를 낼 것이다. 아름다운 신념, 꿈, 야망으로 세상을 보고 웃어라.” 전적으로 동감하는 말입니다.

최근 남북간의 끊임없는 긴장관계나 일본 3·11 후쿠시마 대재앙을 보면 앞으로 생태환경과 평화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대기중 CO2농도가 400ppm을 초과했고 핵에너지 문제의 위험성과 대안 에너지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 같네요.

빅데이터를 이용한 미국의 대선, 주식종목도 예측하고, 류현진 투수도 타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빅데이터를 이용했다는 뉴스를 보면 세상은 더욱 양극화되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앞으로 이런 것을 감안하면서 환경재단을 어떻게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도 차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3년 6월 17일 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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