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만원의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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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만원의 ‘조롱’
  • 편집부
  • 승인 2013.06.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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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전 언론인ㆍ한남대 교수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폭로한 조세회피처(Tax Haven)의 한국인 명단에 들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의 이름이 전대통령의 비자금 행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품어온 궁금증을 풀어 줄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997년 대법원은 대통령 재임 7년 동안 그가 걷어 쓴 1조원대의 정치자금 중에서 2,205억원을 불법뇌물로 확정, 추징판결을 내렸습니다만 그는 532억원만을 납부하고 나머지 1,673억원은 미납상태입니다. 그는 미납사유를 대면서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말하는 통에 ‘29만원’은 그의 후안(厚顔)을 조롱하고 개탄하는 상징어가 됐습니다.

재임 중 그는 손이 큰 대통령으로 이름이 났었습니다. 퇴임하는 측근들에게 주는 전별금이 수 억원에서 수 십억원이라는 얘기가 파다했습니다. 아무리 씀씀이가 컸기로서니 자신의 퇴임 후는 준비했겠지 라는 일반의 생각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움직이는 곳엔 ‘29만원’밖에 없는 사람으로선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골프를 치거나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빈번했고, 모교인 육사의 모금행사에 1,000만원을 쾌척, 모금 유공자로서 초청돼 사열을 받아 구설수에 오른 것이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한 것은 1988년이고,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인 1993년입니다. 퇴임 후 은닉한 재산이 있었다 하더라도 세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꺼낸 29만원 얘기는 “재주가 있으면 찾아보라‘는 금융당국을 향한 조롱으로 들렸습니다.

사실 그의 3남 1녀의 자녀들이 천억원 대의 재산 소유자라는 것을 안다면 그의 씀씀이의 출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자녀들 말고도, 그로부터 혜택을 받은 기업인이나 공직자들이 신세를 갚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장남 재국 씨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는 1990년 1,000만원에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해 지금 자산가치 600억원 대의 출판사로 키웠습니다. 시공사의 부지는 전 대통령이 5공청산 때 국가에 반납하기로 약속했다가 백담사 유배 후 흐지부지됐던 땅입니다.

재국 씨의 사업 수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출판업자가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차렸다는 것은 얼른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2004년 그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차린 유령회사 블루 아도니스의 계좌 관리는 아랍은행에서 맡아 했는데 거액예금자만 상대하는 이 은행에 관리를 맡긴 것부터 그가 굴린 돈이 매우 수상쩍은 돈이라는 냄새를 풍깁니다.

재국 씨는 “아버지와 관계가 없는 돈”이라며 “1989년 미국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할 때 학비와 생활비로 가지고 있던 돈을 옮겨놨던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나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오히려 그 무렵 2남 재용 씨의 조세포탈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연관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더 그럴 듯합니다.

재용 씨는 2004년 국민주택채권 119억원에 대한 세금포탈죄로 징역 2년6개월에, 벌금 60억원을 선고받았는데 돈 세탁과정에서 노숙자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하고 무기명채권을 반복 구입하는 등의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밖에도 전씨 자녀들의 재산 증식과정에는 의혹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조세회피처의 유령회사까지 등장하게 됐습니다. 더욱이 추징시효가 오는 10월로 임박하면서 추징 범위를 직계 자녀, 친인척까지로 넓히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터졌습니다.

전씨는 2003년 재판에서 “측근이나 자녀들이 추징금을 낼 생각이 없냐”는 판사의 물음에 “그들도 겨우 생활하는 수준이라 낼 여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부인 이순자 씨는 지난 대선 때 투표장에서 기자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자 “그렇게 되면 연좌제죠”라며 펄쩍 뛰었습니다.

검찰과 국세청 금감원이 총동원되고 국회까지 나서 추징의무의 확대 및 강제추징 등을 골자로 다소 무리다 싶은 법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이번 수사로 ‘29만원의 조롱’이 끝장을 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합니다.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현 한남대 교수
 

편집부  g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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