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기후기금, 글로벌 이해관계 중재자 역할 요구"LG경제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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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기후기금, 글로벌 이해관계 중재자 역할 요구"LG경제硏
  • 편집부
  • 승인 2012.10.2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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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기후기금(GCF, Green Climate Fund) 유치 효과에 대한 관심이 크다. 기금 규모나 국제적 영향력은 아직 유동적이며, 순항을 확신하기도 일러 보인다. IMF나 World Bank의 경우처럼 어려운 상황이 기구의 발전에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선진권과 개도권의 이해 상충이 큰 만큼 GCF의 성공을 위해서는 한국이 글로벌 이해 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20일, 우리나라가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에 성공했다. 그 경제적 효과가 연간 2천억~3천8백억 원 규모라거나 평창 동계올림픽의 100배에 달할 것이라는 등의 낙관적인 전망들이 함께 쏟아지면서 한 때 증권가와 부동산 시장마저 들썩였다.

그러나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 그 자체가 경제적 효과를 보장해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GCF의 미래에는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은 만큼 앞으로 만들어갈 여지가 훨씬 더 크며, 이 기금의 역할이 얼마나 구체화되고 그 규모가 확대되는가에 따라 경제적 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기대되는 막연한 성과에 주목하기보다는 GCF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후변화 분야의 세계은행(World Bank) 역할 기대

GCF는 개도국들이 기후변화에 제대로 적응(adaptation) 할 수 있도록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국제금융기구이다. 교토의정서 등 기후 변화 관련 국제협약들이 애초에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전세계가 기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기후 관련 선진국-개도국 간 격차 해소와 이를 지원할 장기재원 마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2010년 12월 칸쿤 회의에서 이 기금을 설립하기 위한 공식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2020년까지 연간 1천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으며, 이후 2011년 12월 더반 회의에서 ‘녹색기후기금 설계위원회(선진국 15개국과 개도국 25개국 등 40개국 참여)’가 마련한 기금설계방안을 채택하면서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기후 변화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해 관계가 크게 엇갈리는 이슈이다. 선진국은 개도국의 무분별한 산업시설 확대와 탄소 배출을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꼽으며 친환경 기술과 시설을 도입하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 주장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이런 요구가 한발 앞서 경제발전을 이룬 배부른 국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맞받아친다. 따라서 선진국과 개도국들 사이의 이해 관계 차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기후 변화 관련 대책은 현재의 교착 상태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 하에 이 문제를 전담할 국제금융기구를 출범시킨 것이다. 즉, 세계은행(World Bank)이 저개발국의 SOC, 교육, 위생 등 각종 빈곤 문제 해결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세계경제 전체의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GCF가 기후변화 분야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기금규모와 국제적 영향력은 아직 유동적

GCF 사무국 유치가 외교적인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이익이 클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치하는 대규모 국제기구 사무국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가 유치했던 국제기구들을 살펴보면 독립적인 국제기구, 즉 국가들 간에 체결된 협약을 근거로 설립된 기구는 별로 없고 국제기구 자체의 총회나 이사회 결의, 혹은 해당 기구 사무국과의 합의를 통해 설립된 국제기구 산하기관이나 협력기관이 주를 이뤘다. 산하기관과 협력기관의 경우 유치국이 인력과 재정의 상당 부분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적 효과보다는 국제적 지위나 정보 획득, 국제기구 유치 경험 축적 등 경제외적 측면에 더 주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GCF는 이런 기관들과 달리 국제협약에 따라 설립이 확정되었고 기금 규모 역시 1천억~8천억 달러를 목표로 할 만큼 커 외교적 영향력이나 경제적 효과 모두 충분히 기대할만하다. 물론 아직 사무국 상주 인원이나 기금 규모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 정도의 유발 효과가 발생한다고 전망하기는 어렵다.

일부 기관에서 발표한 2천억~4천억 원의 경제적 효과 추정치도 그 가정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900조원의 기금’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1천억 달러씩 총 8천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2010년 칸쿤 합의가 실제 성과로 이어질 때 가능한 숫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출자 총액이 4천억 달러에도 못 미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를 1조 달러로 확대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실제 출자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 세계은행의 동원 가능한 자본(callable capital) 규모가 1,780억 달러 수준이라는 사실 등에 비춰보면 8천억 달러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후 변화’만을 다루는 GCF가 글로벌 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IMF나 World Bank의 2~4배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은 현재로서는 과해 보인다.

더군다나, 이 기금의 상당 부분을 선진국이 부담하기로 합의했지만 유럽 재정위기와 경기 침체로 선진국 재정 여력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 기여한 금액만큼의 의결권을 보장하는 지분(quota) 방식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납입액을 약속(pledge)하는 방식으로 한 발 물러난 형편에서 과연 각국의 기금 공여를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무역 및 기후 관련 협약은 이해 상충으로 합의 이행 쉽지 않아

설립에 합의했다고 해서 앞으로의 순항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표적 국제기구로 꼽히는 IMF, World Bank, WTO 등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그 발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IMF와 World Bank 회원국이 현재는 188개국에 이르지만 두 기관이 설립된 1945~1946년 당시만 해도 29개국에 불과했다.

WTO는 더욱 험한 길을 걸어왔다. WTO의 전신인 ‘국제무역기구(ITO, 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는 환율 안정과 자유무역체제 확립을 목표로 1948년 설립 예정이었으나 미국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고, 그 설립조건과 내용을 크게 완화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체제로 출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자유무역의 이점이 부각되고 지나치게 많은 예외 규정이 불공정 무역행위를 규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확산되면서 ITO 설립 무산 후 거의 50년 만인 1995년에 드디어 WTO가 출범하였다.

GCF처럼 환경 관련 이슈를 다루는 국제 협약들 중에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도 다소 신경이 쓰인다. 국가 간 기후 문제를 다루는 가장 대표적 협약인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to 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997년, 리우 UN환경회의(1992년)가 채택한 기후변화 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2012년까지 선진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2% 감축한다는 목표로 야심 차게 출범했지만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이 탈퇴하거나 불참하면서 실효성이 크게 약화되었다. 협약 만료 기간을 연장하는데 겨우 합의했으나 EU를 제외한 상당수 국가들의 불참 선언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이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사회와 주요 국제기구가 걸어온 길은 무역 자유화나 기후변화 방지처럼 각국 간의 이해가 충돌하기 쉬운 이슈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어렵고,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그 내용을 제대로 실행하고 발전시키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도약을 위한 모멘텀 마련 노력 필요

주어진 상황과 앞으로의 길이 녹록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헤쳐나가기 위해 설립하는 만큼 어려움이 클수록 역할이 커질 수도 있다. IMF, World Bank 등이 걸어온 험난한 길은 적절한 환경이 갖춰지고 각국의 협력을 이끌어낼 모멘텀 마련에 성공한다면 얼마든지 그 역할 확대가 가능하다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

최근의 자본금 확대 논의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IMF는 세계경제에 외환위기나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규모와 인지도가 확대되어 왔다. 글로벌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국가 간 경제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소수의 선진국이 답안을 제시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묵묵히 이를 따르던 방식이 힘을 잃었고, 다수의 국가가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게임의 룰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를 위한 공유와 협력의 장으로서 IMF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제기구를 둘러싼 질서와 환경뿐 아니라 각 기구 스스로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World Bank나 각 지역의 개발은행(Development Bank)들이 좋은 예다. World Bank가 밟아온 길을 시기별로 나누어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World Bank는 흔히 1세대로 불리는 출범 후부터 1968년까지만 하더라도 자금 운용 기조가 매우 보수적이었다. 회원국들의 자금 요청 중 절반 정도를 기각했고, 대출을 승인하는 경우에도 매우 엄격한 조건을 덧붙였다. 자연히 국제사회로부터의 호응 역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2세대(1968년~ 1980년)에 접어들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항만, 발전소 등 유형의 SOC 프로젝트에 대해 제한적으로 허용하던 자금 공여를 학교나 병원과 같은 사람 중심의 사회 서비스와 기타 다른 분야로까지 크게 확대한 것이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의 대외부채가 연평균 20%씩 늘어나는 등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World Bank를 후발 개도국의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인적자원 개발에 기여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 3세대(1980년~1989년), 4세대(1989년~현재)로 이어지면서 수원국에 대한 지나친 구조조정 요구와 이에 대한 비판으로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각 시기마다 이를 바로잡고 새로운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국제기구의 역할과 위상은 확정적이라기보다는 매우 가변적이며,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국제기구 스스로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한국, 글로벌 이해관계의 중재자로 리더십 업그레이드 필요

이번 GCF 사무국 유치를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리더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도 한국의 글로벌 정책은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왔다. 세계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며 개방과 경쟁에만 매진하던 시기를 거쳐 통합과 연대를 강조하며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한 한 축으로까지 성장했다. 저개발국을 위한 공적개발원조(ODA)와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을 후발국과 함께 나누는 지식공유사업(KSP)을 확대하는 것이나, G20 멤버로서 선진권과 개도권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것 등이 좋은 예다.

그러나 GCF를 기후 변화 분야의 World Bank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야 한다. 즉, 지금까지 G20 등을 통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글로벌 리더십이 개도권과 선진권 사이에서 서로를 납득시키고 이해시키는 전달자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서로의 이해 관계를 잘 저울질해 양측을 설득하고 양보를 받아내는 중재자(arbiter) 역할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재정위기로 정부지출 여력이 크게 줄어든 선진국들로부터는 기후 변화 기금 확충이 왜 필요한지를 입증해 분담금을 받아내야 하는 한편, 경기 침체로 투자 부진과 비용 압박에 시달리는 개도국들에게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수용하라는 요구를 전달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역할을 함께 담당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와 GCF 사무국을 잇따라 유치한 것은 기후·환경 분야의 글로벌 리더십 확보라는 전략적 관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오래 전부터 식량 및 농업 관련 논의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이탈리아가 UN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등 관련 국제기구들을 독점 유치하다시피 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이슈의 선점과 주도권, 국제기구 유치는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기후·환경 등 녹색 분야에서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뢰’와 ‘실력’이다. 선진권 국가들과 개도권 국가들 모두를 귀 기울이게 할 수 있는 신뢰를 쌓아가야 하며, 기후 변화나 녹색 성장 관련 기술과 표준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만한 실력을 지속적으로 갖춰나가야 한다.

비록 GCF의 국제적 위상은 아직 그다지 내세울만하지 않지만, 우리가 관련 이슈의 중요성을 얼마나 잘 부각시키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상충하는 이해 관계를 얼마나 잘 중재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
 

편집부  ggal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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