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은 왜 지나간 버스를향해 손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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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은 왜 지나간 버스를향해 손드나
  • 정우택
  • 승인 2011.12.06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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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연구를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움직임을 두고 말이 많다. 여야가 피터지게 싸울 때는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대통령의 서명까지 끝난 지금 와서 사법주권 침해니 뭐니 하면서 재협상을 들고 나온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천지법 김하늘 부장판사는 TF 구성에 동조 의사를 표명한 판사 174명에게 이메일로 청원문 초안을 돌렸다. 그는 ‘대법원장님께 드리는 건의문’에서 ‘우리 사법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한·미 FTA에 대해 재협상 연구를 진행할 TF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는 건의문 형식으로 돼있다고 한다.

    정우택 국장. 판사들의 한미FTA 재협상 주장은 월권이라고 말한다
건의문은 아직 대법원에 접수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판사의 TF 구성 요구를 수용하기도 그렇고, 동조 판사 170여명의 입장을 생각해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단 요청서가 접수된 후에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판사들의 한·미FTA 재협상 요구에 대해 가장 열 받는 곳은 한나라당이다. 체루가스 까지 맞아가며 국회에서 처리하고, 대통령도 부수법안에 서명을 했는데 판사들이 뒤늦게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정권 사무총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직 판사가 스스로 3권 분립 원칙을 훼손하는 언행을 자중해주길 바라는 국민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이재오 의원은 트위터에서 “판사는 표현의 자유도 있지만 정치적 중립의 의무도 있다. 그것이 헌법정신”이라고 일부 판사를 비판했다. 그는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한국의 판사들이 어떻게 판결했던가. 그때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향유했던가. 그랬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불쾌감을 나타냈다.

일부 판사들의 한·미FTA 재협상 요구를 어떻게 봐야 할까? FTA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골백번 맞는 말씀이다. 반대로 FTA를 찬성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 일 것이다.

실제로 안양지청 김용남 부장검사는 ‘법정에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라는 제목의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렸다. 그는 “한·미FTA 재협상을 위한 TF를 법원행정처에 두도록 대법원장에게 청원하겠다는 것은 백번을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반박했다. 김 부장검사는 판사들의 행동은 삼권분립 침해라고 비판했다.

판사들도 어떤 현안에 대해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의견을 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습이 그게 아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있고, 방법이 있는데 이번에는 시간도, 방법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판사들이 ISD가 사법권을 침해한다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의견을 내야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한·미FTA를 두고 얼마나 싸웠나? 민노당 강기갑의원의 외통위 CCTV를 가린 것 부터 FTA 괴담유포 - 여야 끝장토론 - 한나라당 기습처리 - 김선동 최루액 살포 - 한·미FTA 무효화 시위 - 경찰 물대포 발사 - 종로경찰서장 폭행 - 이명박 대통령 부수법안 서명 등 힘든 과정이 많았는데 그때는 뭐하고 있다가 이제와서 재협상을 주장하는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법원은 한·미FTA로 인해 분쟁이 생겼을 때 판단만 잘 하면 된다. 뒷북을 쳐가며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고 말할 입장에 있지 않다. 여야가 싸울 때 판사들이 ISD가 우리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말했으면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판사들을 등에 업고 더 극렬하게 반대했을 것이고, 한나라당은 감히 기습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한·미FTA가 비준되면 미국과 재협상을 하겠다고 분명히 약속을 했다. 대통령이 약속까지 한 마당에 판사들이 새삼스럽게 재협상을 연구를 위한 TF를 만들자고 한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그것도 FT를 대법원 행정처 밑에 둔다는 것은 더 웃기는 것이다. 연달아 뒷북을 치는 꼴이다.

한미FTA는 법으로만 따질 일이 아니다. 정치적인 감각부터 시작해 경제, 사회, 노동, 교육, 서비스, 특허 등 모든 걸 다 포함한다. 그렇다면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는 데 판사들이 법률적인 시각으로만 본다면 코끼리 세워놓고 엉덩이만 만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판사들의 재협상 주장은 지엽적인 것을 들어 대세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정우택 기자

 

정우택  cwtgre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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