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5대 금융지주는 공기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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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5대 금융지주는 공기업이 아니다
  • 이영택 기자
  • 승인 2022.11.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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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시중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기업 자금조달 어려워졌다”
금리 인상의 직접적인 원인 ‘금통위 빅스텝’은 일절 언급하지 않아
“채권시장 안정화 도와달라면서 각종 제재와 핍박은 그대로”
출처:금융위원회 제공
금융위원회 건물 [사진=금융위원회]

5대 금융지주를 향한 정부의 개입이 선을 넘고 있다. 국내 자금시장 유동화를 위해 도와달라고 할때는 언제고, 금리 인상의 책임을 금융지주에게 돌렸다. 예금 금리가 올라가면서 대출금리도 따라 올라가 기업과 개인이 자금조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 9월말 레고랜드 사태까지 우리나라 자금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미국 연준이 4달 연속 자이언트스탭(기존 금리 0.75%p 인상)을 강행하면서 금통위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빅스텝(기존 금리 0.5%p 인상)을 시행하게 됐다. 이로서 한국 금리는 3.24%로, 미국 금리 3.75~4%와의 격차를 줄이게 됐다.

이에 따라 5대 시중은행은 예적금, 대출 금리를 올리게 됐다. 이는 저축은행도 마찬가지다. 정부채가 은행채보다 안정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시장원리에 따라 정부채보다 높은 금리로 판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9월 말에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다. 강원도가 레고랜드의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강원도가 보증한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가 최종 부도처리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공기업 채권에 대한 불신이 생겨났고, 실제로 많은 공기업 채권들이 유찰되는 결과가 생겨났다. 이는 결국 도미노처럼 국내채권 시장의 경색화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말, 정부는 레고랜드가 초래한 국내 채권시장 경색화를 막기 위해 시장 유동성 프로그램을 50조원 규모로 확대했다. 더 나아가 11월 초에는 5대 금융지주 임원을 불러 은행채 발급 자제 및 자금시장 유동성 확대를 위한 안정펀드 조성을 부탁했다.

11월1일 5대 금융지주는 총 95조원 규모의 자금으로 안정펀드를 조성해 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열린 금융위원장 주최 5대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 [출처=금융위원회]<br>
지난 7월 열린 금융위원장 주최 5대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 [사진=금융위원회]<br>

돌연 정부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3년전 라임사태의 책임을 물으며 ‘문책경고’ 중징계를 내렸다. 이는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손태승 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자금시장 유동성에 힘써달라고 부탁한 지 불과 9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더 나아가 이복현 금감원장은 손태승 회장에게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했다. 추후 압박을 염두로 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슈퍼 을의 입장에선 무서울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23일 정부는 시중은행이 예금금리를 올려 대출금리가 올라가게 됐다며, 과도한 예금금리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시중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제2금융권의 자금이 빠져나오는 ‘머니무브’가 촉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금리를 크게 올린 건 금통위다. 지난 10월12일 금통위는 이전 사전안내지침을 어기면서까지 빅스텝을 강행했다. 이로 인해 5대 시중은행은 시장 흐름에 맞게 금리를 올려야 했다. 정부채가 은행채보다 안정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5대 시중은행에게 책임을 돌렸다. 정부의 뜻에 따라 은행채 발행도 자제하고 95조원의 자금을 마련해 시장 유동성을 이끌겠다고 발표했지만, 이젠 정부가 자금조달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금통위가 빅스텝을 강행한 것은 문제로 삼지 않고, 시장 분위기에 맞게 금리를 올린 시중은행이 문제라고 지적한 것이다. 자유경제시장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출처=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5대 금융지주는 3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보이며, 호황을 누리고 있는 건 이미 공언된 사실이다. 하지만 부도위험이 이전보다 3배 증가한 만큼, 재정건정성 또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예적금 금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도 사실이나, 향후 험난한 상환과정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5대 금융지주들은 95조원이라는 자금을 시장 유동성에 쓰기로 결정했다. 위험부담이 상당한 상황에도 시장 회복을 위해 큰 결심을 내린 것이다.

엄언히 따지면 5대 금융지주는 공기업이 아니다. 현재 채권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시장 안정화를 위해 정부를 돕고 있지만, 이들도 결국 수익을 추구해야하는 집단이다.

정부가 채권시장 경색화를 막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서는 걸 탓하는 게 아니다. 책임을 5대 금융지주에게 돌리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5대 금융지주는 그저 시장 흐름에 맞게 움직인 것뿐이다. 정부 정책에 동참할 수는 있어도 정부 정책에 책임을 지는 주체가 아니다.

분명히 도와달라면서 온갖 제재와 핍박은 다 주는 정부, 과연 채권시장 경색화를 막고 싶은 게 맞을까? 진짜 속내가 궁금하다.

이영택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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