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뇌 100% 활용하는 초인을 꿈꾼다...영화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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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뇌 100% 활용하는 초인을 꿈꾼다...영화 '루시'
  • 한익재 기자
  • 승인 2017.03.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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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중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아인슈타인이 죽고 난 후, 학자들은 그의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이 유달리 두껍다는 것을 발견했다.

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뇌에 집착했던 것은 평범한 인간과 천재는 뇌의 구조나 활용도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뇌의 몇 %나 활용하는 것일까.

'인간이 두뇌를 100% 사용할 줄 알게 된다면 어떨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뤽 베송 감독이 10년 동안 쓴 작품이 있다. 바로 영화 <루시>다.

허채정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위원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뇌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해 줄 작품이라며 이 영화를 추천했다.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황당무계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뇌의 모든 용량을 쓸 수 있게 될 때 인간이 겪는 변화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영화 속 루시의 능력

루시는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어느 날 갱단의 우두머리인 미스터 장에게 납치되어 몸속에 강력한 합성약물을 넣는 수술을 받고 낯선 곳에 버려진다. 이 합성약물은 임신한지 6주차가 된 임산부에게서 발생하는 물질인 CPH4로, 강력한 생명 탄생의 힘을 지닌 물질이다.

루시가 자기의 머릿속 이미지를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장면.

정신을 차리자마자, 약물이 온몸에 퍼지면서 그녀의 두뇌 가동 용량은 급속도로 치솟는다. 두뇌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루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중력과 전파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아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그녀는 미스터 장 무리에게 복수를 하고, 뇌 과학자 노먼을 찾아가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인류에게 전수할 방법을 찾는다. 결국 USB에 자신의 지식을 담고 컴퓨터 네트워크 속 존재가 되어 "I'm everywhere(나는 어디서나 존재한다)"라는 마지막 대사를 문자 메시지로 남긴다.

"루시가 뇌를 100% 사용할 수 있게 됐을 때, 만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한 개의 세포에서 생명이 시작된 순간을 보고, 우주 생성의 기원까지 헤아리게 되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의 두뇌 용량이 극대화된다면, 인류가 하고 싶은 일은 많을 거에요. 하지만 감독은 루시를 통해 생명과 우주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실현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모든 비밀을 알게 된 루시가 부럽습니다."

루시가 초능력으로 미스터 장의 생각을 읽고 있다.

허 연구위원은 루시의 메시지에서 종교적 의미를 느꼈다며, 어디에나 심지어 우리 마음속에도 신이 있다고 말하는 불교나 기독교의 가르침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도처에 존재하게 된 루시는 과연 신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일까. 허 연구위원은 루시의 주장대로, 우리는 이미 세상에 대한 답을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루시가 네트워크속 존재가된 뒤 형사에게 보낸 문자 '아임 에브리웨어'.

우리의 뇌는 이미 100% 풀가동 중이다

실제로 우리가 두뇌 사용 용량을 늘린다면, 루시처럼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허 연구위원은 영화 속 초능력은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 연구위원은 우리는 이미 두뇌를 100% 풀가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뇌가 활성화되는 부분만으로 소위 뇌를 '사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말이나 행동을 하려면, 뇌에서 필요한 부분이 활성화되는 동시에 필요 없는 부분이 모두 억제돼야 하는데, 이러한 억제 활동조차도 뇌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뇌에서는 신경세포의 활성보다는 억제가 더 중요해요. 실제로 억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신경세포들이 활성을 띠게 되는 상태가 바로 간질과 같은 상태입니다. 실제로 루시처럼 약물로 인해 뇌의 모든 신경세포가 동시에 모두 활성화된다면, 인간은 간질발작과 비슷한 상태로 빠지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를 겁니다."

허 연구위원은 뇌가 24시간 내내 어마어마한 양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뇌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건강한 정신 작용이 가능하도록 끊임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루시처럼 초능력은 쓸 수 없겠지만, 인간의 뇌는 모든 활동을 관장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배고픔을 느끼는 것도 사실 뇌가 밤새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신경세포를 새로 만들고, 이동시키고, 필요한 혈관도 생성하느라 많은 포도당을 쓰기 때문이죠. 밤새 청소도 합니다. 우리가 잠을 잘 때, 뇌 척수액이 뇌 조직 속으로 깊이 흡수돼, 낮 동안 뇌를 쓰느라 생긴 찌꺼기들이 씻겨 내려가도록 해요. 심지어 우리가 멍할 때에도 뇌는 시냅스를 정리하고 기억을 체계적으로 관리합니다."

기억과 학습 능력의 비밀을 품은 뇌

영화에서 루시는 배 안의 약물을 꺼내는 수술을 받으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이제껏 어머니가 해준 수천 번의 입맞춤을 기억하고, 젖을 먹던 느낌까지 기억난다고 말한다. 분명히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가 떠올릴 수 없는 수많은 기억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기억력은 루시가 얻은 초능력의 일종으로 그려지지만, 평범한 인간도 모든 경험이 어딘가에는 쌓여있을 것으로 봅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할머니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거주지 주소를 정확하게 기억해 찾아간 일이 보고된 바 있어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증거인 셈이지요. 기억은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루시는 기억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두뇌 활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환자의 생존율도 계산하며, 뇌 과학자 노먼의 6천 페이지가 넘는 모든 연구 논문을 단숨에 읽어낸다. 영화 속 약물과 같은 효과를 갖는 물질이 있다면 어떨까. 학습력과 집중력을 높이고 싶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이목을 끌 것이다. 실제로 아이의 집중력이 정상임에도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 치료제를 아이에게 주입해 집중력을 높이려는 학부모들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정상인은 뇌 신경세포의 활성과 억제를 조절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이미 뇌신경의 흥분과 억제를 잘 조절하고 있는 정상인에게 뇌신경 활성을 유도하는 약물을 주입하면, 과도하게 신경이 흥분돼 뇌에 부담이 됩니다. 때문에 정상인에게 신경 흥분제나 정신질환 치료제를 투여하는 것은 부작용의 우려가 높습니다. 공부할 때 뇌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뇌의 신경 세포 재생을 비롯한 여러 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해 주는 것이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의 학습의지가 사고력과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므로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학부모가 자녀의 뇌를 발달시킬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인류를 위한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남기는 것

루시는 뇌 과학자 노먼에게 자신이 의도치 않게 갖게 된 능력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물었고, 노먼은 이에 대해 '생명체의 유일한 목표는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루시는 이 말을 듣고, 인류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찾은 의미있는 정보를 남기고 가는 것이라 확신한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갖는 삶의 목표는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유전자를 남기지만, 자신이 죽은 후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의 유전자 전체도 아닌 절반이 전부죠.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의 유전 정보 외에 다른 정보들도 세상에 남길 수 있어요. 이왕이면 경험을 통해 얻은 좋은 정보를 남기고 가는 것이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겠죠. 저 또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썼던 한 줄의 문장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를 보고 제 존재의 역할이 무엇인지 찾았고, 여기까지 왔네요."

허 연구위원은 학부 때 물리학을 전공하고 우주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헤아리기 어려워, 자신 안의 우주가 뇌라고 생각하고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는 허 연구위원. 그녀의 꿈은 뇌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다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이미징 기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허 연구위원이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뇌의 진실들을 세상에 들려주기를 기대한다.

한익재 기자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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