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이재용·정의선 단독 회동 1년 '엇갈린 운명'...현대차 '미래차 질주' vs 삼성전자 '반도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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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후] 이재용·정의선 단독 회동 1년 '엇갈린 운명'...현대차 '미래차 질주' vs 삼성전자 '반도체 위기'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1.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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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정의선, 작년 5월 이어 7월 두차례 공식 회동...미래차 등 협력 기반 구축
- 정의선, 작년 10월 회장 승진 후 리더십 발휘...이재용, 올해 1월 구속 수감 후 '삼성 위기'
- '삼성 공화국'은 더 이상 없어...'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기업 '삼성'의 역할 커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단독 회동을 한 지 1년이 지났다.

재계 1·2위 대기업 총수가 역사상 처음으로 단 둘이 만났다는 점에서 자율주행차, 플라잉 카 등 신사업 협력에 관심이 모아졌다. 삼성이 만든 배터리가 현대차 전기차에 탑재될 것이라는 관측도 무성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두 사람은 엇갈린 운명과 조우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체질 전환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반면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할 때 삼성의 위기는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현대차 입장에서도 삼성과 협업으로 미래차 등에서 도약을 준비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그날

재계 1·2위 총수, 역사적인 단독 회동...미래차 등 협력 시대 열어

2020년 5월 13일 오전 10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충남 천안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역사적인 회동을 가졌다.

이날 만남의 주요 목적은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과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등 삼성 측 전기차 배터리 관련 핵심 임원과 현대·차기아 연구개발본부 알버트 비어만 사장, 서보신 상품담당 사장 등도 동행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삼성SDI 천안사업장은 소형 배터리와 자동차용 배터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공장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1회 충전 주행거리가 800km에 달하는 전고체전지 혁신 기술을 발표하며 미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전고체전지는 배터리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하는 배터리로, 기존 리튬이온전기와 비교해 대용량을 구현하고 안정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재계를 이끌고 있는 두 총수 간 전격 만남이 이뤄진 것은 최신 기술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적극적인 요청이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당시 현대차 관계자는 "미래 사업 준비 상황을 참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현대차·삼성SDI' 배터리 동맹 체결 가능성이 회자됐다. 삼성SDI는 해외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협력 파트너가 아니었다. 현대·기아는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재계 1·2위 총수가 공식 자리에서 다시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자동차, 전자 등 사업 진출을 두고 앙숙 관계가 된 이후 두 그룹은 협력이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두 살 터울인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었다. 두 총수는 정부 주도의 기업인 간담회 등을 통해 여러번 자리를 함께했지만 사업과 관련해 별도 공식 만남을 가진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특히 3세대 경영인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래성장산업에 있어 협력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 부회장은 코로나19 등 위기 속에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 지속 성장 기반을 구축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었다.

두 총수 회동은 삼성과 현대차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대두됐다. 대기업 관계자는 “두 총수의 만남은 글로벌 경쟁에서 국내 기업간 협력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코로나19 사태와 미국-중국 분쟁 이후 위기감은 국내 기업 사이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 증대에 관심이 커졌다”고 전했다.

◆ 그후

정의선 시대, 미래성장동력 투자 강화...이재용 부재, 글로벌 경쟁 낙오 우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같은 해 7월에 또 만났다. 이 부회장이 답방하는 형식이었다.

이 부회장이 방문한 현대차 남양기술연구소는 국빈에게 공개되기는 했지만 국내 대기업 총수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날 삼성 측에서는 김기남 부회장, 삼성SDI 전영현 사장,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강인엽 사장, 삼성종합기술원 황성우 사장 등이 동행했다.

삼성 경영진은 차세대 친환경차와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로보틱스 등 현대차그룹의 미래 신성장 영역 제품과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관심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특히 양사 경영진은 연구개발 현장을 둘러보고 자율주행차와 수소전기차 등을 시승했다.

이후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같은 해 10월 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지 2년만이다. 정몽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정의선 시대가 본격 막이 오른 것이다.

정의선 회장

정의선 회장은 취임사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모든 활동은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고객이 본연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려야 한다”면서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여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총수가 만남에 따른 협업 결실도 있었다. 올해 1월, 삼성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가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에 적용될 것이란 소식이 나왔다.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처음 적용된 전기차 '아이오닉 5'의 사이드뷰 카메라 시스템에 탑재되는 OLED 디스플레이를 삼성으로부터 공급받기로 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2011년 내비게이션용 8인치 LCD(액정표시장치) 공급을 맺고 3년간 물량을 공급했으나, 그 이후 눈에 띄는 협업 사례는 없었다. 또 삼성이 지난 2017년 인수한 전장기업 하만의 제품이 현대차 제품에 일부 적용되기는 하지만 현대차와 삼성 간에 직접적 계약은 최근 없었다.

그런데 두 총수는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1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기 때문이다. 삼성으로선 ‘총수 부재'라는 위기 상황에 빠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대표는 재계를 대표하며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기도 한다. 정 회장은 지난해 이 부회장과 만났듯이 최 회장과 구 대표도 각각 회동했다.

◆ 그리고, 앞으로

한미 정상회담, 반도체 등 주요 화두....'이재용 사면론' 확산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깜짝 만남’ 이후 다양한 협력이 기대됐지만 이 부회장 구속 수감으로 더 이상 협력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엇갈린 운명과 마주했다.

정 회장은 취임 이후 미래성장동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 회장이 집중하는 분야는 미래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봇, 수소경제 등이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을 앞세워 신사업 발굴은 물론 과거와 완전히 다른 그룹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정 회장의 현장 행보도 파격적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수소경제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또, 총수 최초로 현대차 노조 지부장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1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고 기술력을 지닌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결정했다. 정 회장은 인수를 위해 사재도 2400억원 가량 쏟아부었다. UAM 사업에서도 인재 영입과 투자를 강화했다.

유럽 반도체 기업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러나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그룹의 분위기는 적막하다. 대형 투자 결정이 늦어지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심지어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새 먹거리로 앞다투어 진출한 수소경제 분야에서도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다.

총수의 부재가 심각한 점은 글로벌 경쟁이다. 코로나19 이후 산업 생태계가 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며 국제 무역 질서가 재편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가 미국과 중국간 무역분쟁 중심축이 됐다.

따라서 재계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이재용 사면론’이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는 지난달 청와대에 이 부회장의 사면 건의서를 내고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도 새로운 위기와 도전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고 호소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를 온 국민이 느낀 장면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 기자회견에서 “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를 할 것”이라며 “여기 자리에 계시면 잠시 일어나 주세요”라고 한국 기업인들에게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등 한국 BBC(바이오, 배터리, 반도체) 분야 기업인들이 일어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생큐”를 세 차례 반복하며 “(미국에) 수천 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반도체나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며 “훌륭한 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엇갈린 운명은 ‘팀 코리아’를 외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부담일 수 있다. 삼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공화국’은 이제 더 이상 없다”며 “코로나19 이후는 국가간 경제전쟁이 더욱 커질 수 있어 ‘팀 코리아’ 차원에서 이재용 사면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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