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후] 끝나지 않은 'SK vs LG'의 '배터리 전쟁'...최태원·구광모가 나서야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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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그후] 끝나지 않은 'SK vs LG'의 '배터리 전쟁'...최태원·구광모가 나서야 해결될까
  • 김국헌 기자
  • 승인 2021.03.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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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악연, 인력 빼가기로 정점을 찍고 진흙탕 싸움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도 현재진행형
아직도 첨예한 대립...총수가 나서야 해결될까

2월 11일은 설 연휴 첫 날이었다. 이 날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일부 직원들은 날밤을 새야 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벌이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ITC는 당초 지난해 10월 5일이었던 최종 결정을 3차례나 연기한 바 있다. 소송은 무려 3년동안 이어지면서 소송비용만 수천억원에 달한다. 3번이나 연기한 만큼 이번에는 최종 결정이 확실하게 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관련 직원들은 11일 설 명절 전날부터 회사 또는 재택 등에서 야근하며 ITC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결과는 LG에너지솔루션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결과가 났음에도 양사의 배터리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소송도 남아있고, 아직 합의가능성도 열려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분쟁은 정치영역으로 확전되는 분위기다. 

◆그 날

오랜 악연, 인력 빼가기로 정점을 찍고 진흙탕 싸움으로 
    
전기차 배터리 기술 유출과 특허 침해를 둘러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은 ‘인력과 영업비밀 빼가기’ 논란에서 비롯됐다. 본격적인 소송전은 LG화학이 지난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LG화학은 2017년부터 2년간 연구와 생산 등 각 분야에서 핵심 인력 100여 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해 갔고, 이 같은 인력 빼가기로 인해 배터리 핵심 기술이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은 이에 대한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이 인력 채용 당시 이력서에 연구프로젝트, 참여원 이름 등을 작성토록 한 점, 면접에서 지원자가 수행했던 프로젝트를 상세히 발표하도록 요구한 점 등을 들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자발적 이직이었으며 LG화학과 기술개발 및 생산방식이 달라 기술유출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SK이노베이션은 특히 자기소개서 제출과 면접은 경력직 채용 시 지원자 역량 검증을 위해 통상적인 수준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또 임직원의 이직은 연봉 등 처우 개선과 미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양사가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사실 지난 2011년부터다. LG화학은 이차전지 분리막 특허를 출원하고 SK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이후 2014년 두 회사는 이후 10년 동안 국내외 관련 특허 소송 금지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LG화학은 2017년 이같은 협정을 깨게 된다. LG화학은 자사의 인력 76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자 인력채용을 멈춰달라는 공문을 SK이노베이션에 발송했다. SK이노베이션이 적법한 채용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LG화학은 2017년 12월 '전직금지가처분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LG화학이 대법원에서 최종승소하면서 승리로 끝났다. LG화학은 멈추지 않고 2019년 4월 미국 ITC와 델라웨어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영업비밀침해 등으로 제소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제소에 이어 2019년 해 5월 국내 경찰에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 유출방지 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맞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6월 국내 법원에 ‘LG화학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밝혀 달라는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와 함께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같은 해 9월엔 ‘자사의 배터리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와 연방지방법원에 LG화학과 LG전자를 제소했다. 

이에 LG화학 측은 같은 달 ITC·연방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양사가 1년 6개월간 국내외에서 진행한 소송은 총 10건이다. 

양사 분쟁의 핵심은 ITC 소송이다. ITC는 LG화학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해 올해 2월 예비판결을 내렸고 4월 SK이노베이션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재검토를 결정했다. ITC는 소송의 최종 판결을 지난달 5일로 예정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같은 달 26일로 늦춘 뒤 다시 12월 10일로 연기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2월 11일로 또다시 추가 연장된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좌),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우)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좌),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우)

그동안 양사는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받는다. 양사는 소송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불꽃튀는 여론전을 펼쳤다.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월 18일 또 다시 미국 특허청 결정문을 놓고 충돌했다. 지난 1월 15일에 이어 이날도 미국 특허청 특허심판원이 SK 측이 신청한 전기차 배터리 관련 특허무효심판을 기각한 것을 놓고, 두 회사는 반박과 재반박 공세를 펼치며 공방을 이어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같은 여론전이 SK이노베이션이 고도의 전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이 계속되는 갈등양상을 표출함으로써 관계자와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주면서 낮은 금액으로 합의를 유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국민들이 양사의 여론전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정치권에서 나서서 양측의 합의를 중재해주길 바라고 여론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수조원으로 예상되는 합의금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한다.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협상과정에서 최소 3조원 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SK이노베이션은 이를 1조원 밑으로 낮추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래사업 가치가 더 큰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 ITC가 반도체 장비나 무전기 영업비밀침해 사안들 보다 더 무거운 배상금을 물릴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협상금액을 밝힌 적도 없으며 합리적인 금액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수조원이라는 합의금액도 LG에너지솔루션이 자체적으로 예측해 흘린 정보이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소송이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의 민사소송까지 가게 될 경우 손해배상액이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도 합리적인 산정방식에 의해 계산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하게 될 경우 미국 공장의 수입금지 조치 기간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최근 있었던 메디톡스-대웅제약, ITC 판결을 예로 들었다. 

ITC 위원회는 지난 달 16일(현지시간)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균주 분쟁 최종판결에서 ‘대웅제약 나보타 10년 수입 금지’의 예비판결과 달리, 21개월로 수입 금지 기간을 크게 줄였다. 패소하더라도 SK이노베이션 미국 공장의 수입 금지 조치가 예상보다 짧을 수 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패소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양 사가 현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 ITC 최종판결 이전 극적인 합의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했다. 

양 사에 협상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협상은 2019년 9월에 있었다. 당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마주앉았다. 소송전 시작 5개월 만이었다. “합의의 노력을 하라”는 정부의 중재를 통해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이 만남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LG 측에서는 당시 정호영 LG화학 최고운영책임자(COO·현 LG디스플레이 사장)가 참석하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SK측 협상 파트너로는 당시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던 윤예선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의 참석을 요구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의 생각은 달랐다. SK이노베이션은 처음부터 김준 총괄사장의 참석을 생각했다. ‘결정권자’가 나와야 의미 있는 협상이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만남은 시장의 기대와 달리 2시간 만에 끝났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소송을 제기할 때부터 요구해왔던 △공개적인 사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합리적 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인력 유출에 따른 피해 보상 등을 제한적으로 제시하며 협상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간 공방전이 이어지자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부끄럽다'고 표현하며 양사 합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월 28일 LG에너지솔루션(구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놓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소송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해 “정말 부끄럽다”며 “양사가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집요하게 SK이노베이션을 몰아세운 배경으로 과거 LG그룹이 겪었던 아픔의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LG그룹은 지난 1999년 김대중 정부의 IMF 구제금융 후속 조치로 이뤄진 빅딜에서 LG반도체 겨영권을 뺏겼다. LG는 현대전자와 누가 인수주체가 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펼쳤고, 이후 현대가 LG반도체를 인수해 출범한 현대반도체는 경영난을 겪다가 공교롭게도 2012년 SK그룹의 품에 안겼다.

LG 입장에서는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현재 잘 나가는 SK하이닉스가 LG의 주력 계열사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LG가 SK에 우호적일 수 없다는 분석이다. LG는 이 사건으로 자체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사업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당시 일본 히타치의 기술력에 의존한 LG보다 독자 기술력을 보유한 현대전자가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이번 SK이노베이션과의 치열한 법적 다툼과 기술 유출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번에 양보하면 사업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 근거다. 

◆그 후

LG에너지솔루션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도 현재진행형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021년 2월10일 LG에너지솔루션(과거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최종 판결문 일부. 10년간 수입금지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021년 2월10일 LG에너지솔루션(과거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최종 판결문 일부. 10년간 수입금지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결국 미 ITC의 판결 이전에 양사의 합의는 없었다. 미국 ITC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2월 11일(현지시간)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로 제소한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의 일부 배터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에서의 수입을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3차례나 연기되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세기의 소송전'은 일단 LG에너지솔루션의 승리로 끝났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ITC가 '예외 조항'을 뒀다는 것이다. 미국은 극과 극의 판결을 내리지 않고 SK이노베이션에 '숨쉴 구멍'을 만들어줬다. 

ITC는 예외적으로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인 포드에 대해서는 4년간 배터리 공급을 허용한 것이다. 또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 중인 폴크스바겐에 대해서도 2년간 공급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각각 2년, 4년간 포드와 폴크스바겐에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SK이노베이션이 새로 짓고 있는 조지아주 공장 등의 가동이 가능해졌다. SK이노베이션이 공급계약을 맺은 것은 포드와 폴크스바겐 2개사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만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다면 미국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포드,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이 줄줄이 타격을 입고 미국 내 일자리 등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고려된 판결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내세웠고 SK의 조지아주 공장에서는 2천 개가 넘는 일자리가 나올 예정이었다. SK와 공급 계약을 맺은 포드와 폭스바겐의 전기차 생산까지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ITC가 SK이노베이션 조기 패소 판결은 그대로 인정하되, 여러 이해관계자가 제시한 의견과 미국 경제 영향 등을 고려해 공익(Public)적 부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쓴 의도가 엿보인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 전기차 시장의 원활한 성장을 위해 행정부 차원에서 ITC 판결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ITC 결정을 미 행정부가 뒤집은 사례는 단 5차례에 그치는데다 이번 결정에서 이례적으로 '예외 조항'을 두면서 SK이노베이션에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계속 바이든 정부의 거부권 행사를 노리는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분쟁'에 백악관 개입을 요청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분쟁이 정치영역으로 확전되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이 지난주 백악관에 양사간의 배터리 분쟁에 미국 백악관의 개입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서류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 명령을 내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이 조지아주(州)에서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분쟁은 법적 소송의 영역에서 벗어나 정치 영역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 이익에 부합된다고 판단할 경우 60일 이내에 판결을 무효화할 수 있다. 대통령이 ITC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드물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애플과 삼성 간 소송 관련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번에 백악관에 서류를 제출한 것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SK이노베이션이 백악관의 개입을 요청한 것은 행정기관인 ITC의 결정은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ITC 결정에 대해 정책적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착공식.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착공식.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약 26억 달러(3조원)을 투자해 연간 43만대 분량(21.5GWh)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1, 2공장을 건설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의 26억달러 규모 공장은 조지아 주 역사상 최대 투자 규모다. 게다가 2022년 말까지 연간 22GW 규모의 생산능력을 달성하면 미국 배터리 생산에 큰 힘이 될 수 밖에 없다. SK이노베이션은 이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업, 자동차 기업들, 미국 입법자들, 조지아 주 관료들의 지원을 얻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고객사도 합의를 종용하는 상태다. 실제로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11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회사의 합의는 궁극적으로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와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며 양사의 합의를 종용했다.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전기차 도입을 가속화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특히 조지아 주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판결을 무효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한 바 있다. 

일각에선 양사가 합의없이 민사소송에 갈 경우, 손해액의 최대 2배까지 부과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액과 변호사 비용 배상이 추가돼 SKI가 9조원 이상을 부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는 이달 11일자 보고서에서 “양사간의 합의금이 적어도 5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ITC 판결 효력이 발생하면, SK이노베이션은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한다는 방침이다. 연방고등법원 판결이 나온 뒤 델라웨어 연방법원 민사 소송으로 넘어가는데, 이 과정만 짧으면 1년, 길면 2~3년으로 예상된다.

SK 관계자는 “LG측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성실하게 협상에 나서라’고 하지만 혐의를 인정하는 순간 범죄 기업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LG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쉬는 없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바이든의 거부권 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협상에 진척이 없을 경우 델라웨이주 연방지방법원을 통해 소송을 이어갈 방침이다. 일반적으로 ITC는 영업비밀 침해 여부와 수입 금지 범위를 판단하고 지방법원은 손해배상 규모를 결정한다. 

LG 관계자는 “30여년간 공들여 쌓은 LG의 영업비밀을 탈취하는 범죄 행위로 수십 조원을 수주한 SK가 가해자로서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성있게 협의에 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그리고 앞으로

아직도 첨예한 대립...총수가 나서야 해결될까

최태원 SK그룹 회장(좌)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우)
최태원 SK그룹 회장(좌)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우)

양사간의 향후 핵심은 과연 합의에 이를 것인지 여부다. 에너지솔루션(약칭 LGES)은 3조원 이상을 요구하는 반면, SK이노베이션은 1000억원대의 자회사 지분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3조원의 배상금은 우리가 앞으로 20년 이상 벌어야 하는 돈이다. 아직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는 내년(2022년)에야 겨우 소폭 흑자를 낼까말까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LG가 태도를 전향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대통령 거부권 시한 종료 후 연방항소법원 항소(抗訴) 같은 카드를 활용해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LG로부터 탈취한 영업비밀을 사용하여 2017년 이후 SKI가 수주한 금액인 약 60조원과 미래 수주 예상금액을 보수적으로 예측해도 수십조원 이상 수주를 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징벌적 배상액을 제외한 수조원대의 배상액은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항소에서 패소한다면, 델라웨어 민사 소송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액과 법정 소송 비용까지 추가돼 SK가 내야할 배상금이 7조~8조원 이상으로 불어나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것이 SK이노베이션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LG에너지솔루션이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단 LG에너지솔루션은 목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생각치 못한 코나EV 화재로 인한 리콜비용 부담이다. 

현대차는 3월 4일 2차 리콜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리콜 결정에 따라 국내외 차량 총 8만1701대를 대상으로 배터리 교체를 실시할 계획이다. 해당 기간에 생산된 차량의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BSA)을 전량 교체한다는 것이다. 리콜 비용은 총 1조원~1조4000억원이 거론된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비용분담은 3:7로 결정됐다. 

4일 LG에너지솔루션은 5550억원의 코나 EV 등 리콜 비용을 충당금으로 반영했다. LG에너지솔루션으로써는 막대한 리콜비용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업계에서는 미 ITC 전기차 배터리 소송전에서 승소한만큼  SK이노베이션과 합의가 이뤄지면 받아낼 합의금 중 일부로 리콜비용을 채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합의금을 받아내더라도 대다수가 리콜비용에 쓰이는 상황으로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리콜비용을 부담해주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보자면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항소, 미 연방법원 손해배상 소송의 개시 등 변수는 남아있다. 불필요한 출혈을 막기 위해 합의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양사가 이견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결국 SK와 LG 총수가 나서야 해결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다음 달 안으로 옥중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외한 구광모 회장, 최태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모임이 예상된다. 이들 4대그룹 총수는 지난해 9월, 11월, 12월에도 서울 모처에서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구 회장과 최 회장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면 배터리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얘기가 오갈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락하면서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오른 것도 재계에서 눈여겨보는 대목이다. 최근 정세균 총리 등 정치권에서도 양사가 빨리 합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사기업간 경쟁을 위한 쟁송보다는 ‘K배터리’라는 프레임이 작동해 부담스럽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현재 국면에선 양사가 합의하면 SK의 미국 내 수입금지 조치가 무효화되므로 큰 타격이 예상되는 SK가 협상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소송에 투입된 법률비용과 앞으로의 진통, 코나EV 리콜비용까지 고려하면 LG도 ITC의 판결을 근거로 이른 시일 내에 합의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배터리 업계의 판단이다. 구광모 회장이나 최태원 회장의 결정 없이는 양사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미 양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피로도가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정치권과 미국 자동차 회사들까지 양사의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배터리 회사의 선두그룹인 두 회사의 소송전으로 반사이익은 중국 업체 등 경쟁사들이 얻고 있다. 국익을 위해, 양사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소모전은 그만하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다. 두 총수가 한발짝씩 양보하고 조속한 합의에 이르기를 전 국민이 원하고 있다. 

 

김국헌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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