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경 칼럼] 시차는 있으나 오차는 없다...그리고 세상에 공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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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경 칼럼] 시차는 있으나 오차는 없다...그리고 세상에 공짜도 없다
  • 방형국 기자
  • 승인 2021.02.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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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센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몇 해 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센델이 정의(定意)한 정의(正義)는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는 것’ 등이다. 행복과 자유, 선(善)이 키워드이고, 다수와 공동 등이 공통분모이다. 줄이면 함께 행복하고 자유로우며, 선을 추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정의(justice)의 올바른 뜻이 아닌가 싶다.

용기(勇氣)는 무엇인가. 용기는 단순히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혜와 분별력, 냉철함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전쟁에서 전진하는 것만이 용기일 수는 없다. 때로는 후퇴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일 수도 있다. 수많은 병사의 목숨이 걸려 있는 전장터에서 지휘관이 전진이냐, 후퇴냐를 결정할 때는 지혜와 분별력, 냉철함을 갖고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용기다. 지혜와 분별력, 냉철함이 결여된 판단과 결정은 아집이거나, 비겁 또는 만용이다. 

쳬육계가 뒤숭숭하다. 프로배구 선수들의 과거 학교폭력을 폭로한 것이 온 국민을 놀라게 하고 체육계를 뒤흔들고 있다. 어린 시절 악몽과 같은 상처를 받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가 아니었다면 그냥 묻어버릴 수도 있는 일들이었다.

지난해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민주당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부정·기부금 유용 의혹을 폭로한 것은 오랜 인고의 시간과 고민이 점철됐을 것이다. 그 인고와 고민은 일본군의 만행을 바로 알리고, 일본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는 데 집중하기 위해 되도록 잡음을 내지 않으려 참고 또 참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자제는 지혜와 사안을 똑바로 보는 분별력, 냉철함이며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 용기로 분출된 것이다.

서울남부지법 보안관리대 소속 황모씨가 지난 16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실명으로 ‘최악의 대법원장, 그리고 실종선고 된 양심과 썩은 정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탄핵하자고 설치는데 사표를 어떻게 수리하겠냐는 대법원장의 말씀은 사법부를 정권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인식으로써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이런 최악의 대법원장은 처음이다.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답변했다는 대법원장의 이중 거짓말은 사법의 신뢰를 스스로 붕괴시켰다”고 비판하며 “대법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사법부 신뢰회복을 위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황 씨를 모르지만, 그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온몸에서 용기를 쥐어 짜냈을 것이다. 직(職)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의 상관이나, 가족들로부터 “왜 이런 글을 썼느냐?”,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질 거 같으냐?”는 강한 핀잔을 들었을 수도 있다. 

지병으로 업무수행이 불가능한 후배 판사의 사표를 여당의 눈치를 보느라 반려하고, 이에 대한 거짓 해명마저 들통난 김명수 대법원장의 정의과 용기는 무엇인가. 사법부의 흔들림 없는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정의이고,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움직임이 용기였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그에게 정의와 용기는 무엇일까. 

시차(時差)는 있으나 오차(誤差)는 없다. 선행과 악행은 언젠가는 반드시 그 값을 받고, 치른다. 그리스 로마시대, 최고의 지혜로 꼽힌 경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이다. 모든 일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방형국 기자  re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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