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취임 1년 맞은 한샘 강승수, '50년 후' 밑그림 그리고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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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후] 취임 1년 맞은 한샘 강승수, '50년 후' 밑그림 그리고 뚜벅뚜벅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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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샐러리맨 전설 쓴 비결은 상상력과 추진력
- 국내 매출 10조, 해외 사업, 신성장동력 마련 등 3개 과제 진행 중
- B2C 사업에 초점, "B2B 의존 시대 저물고 있다"
▲ 강승수 한샘 회장 (사진 = 한샘 제공)
▲ 강승수 한샘 회장 (사진 = 한샘 제공)

2019년 12월, 500대 기업 기준 국내 최장수 전문 경영인이었던 최양하 한샘 회장이 25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뒤를 이은 건 최 회장 못지 않게 샐러리맨의 전설인 강승수 회장이다.

한샘에 입사한 뒤 8년 만에 임원이 되고, 25년 만에 회장직에 오른 그의 포부는 거침이 없었다. 중기에 국내시장 매출 10조 달성.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리고 강승수 회장의 취임 1년 성적표는 어떠한가.


그날

업계 1위로 도약할 수 있었던 전문경영인 중심 '한샘 전통'

▲ 한샘 상암사옥 전경 (사진 = 한샘 제공)
▲ 한샘 상암사옥 전경 (사진 = 한샘 제공)

 

2020년 한샘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2일 한샘의 최고 경영자에 오른 강승수 회장은 신임 대표이사로서 '다가올 50년'의 준비를 강조했다.

'부엌가구 제조업체' 수준의 브랜드였던 한샘이 지금의 '종합 인테리어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는 강승수 회장보다 앞서 '샐러리맨 신화'를 썼던 최양하 전 회장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양하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현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을 다니던 엔지니어였다. 최 회장이 한샘에 입사한 것은 1979년. 당시 대우중공업의 매출액은 연 1000억원, 한샘은 15억원에 불과했다.

싱크대 등을 만드는 작은 기업이 지금의 입지를 갖기까지에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내외 환경변화의 바람을 탄 까닭도 있다. 서울을 기점으로 전국 방방곡곡 아파트 개발이 본격화되며 현대식 주방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 '한국형 입식 주방'의 청사진을 그린 건 최 전 회장의 공이다. 당시 과장으로 입사했던 최 회장은 4년 만에 공장장이 됐고, 15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대표 취임이 몇년 지나지 않아 한샘을 비롯해 한국 기업 대부분이 큰 위기에 직면한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허다한 가구회사들이 차례차례 무너졌다. 이 엄중한 시기에 한샘은 오히려 인테리어 분야로 사업을 넓히며 공세를 취했다. 결과는 성공적.

▲ 한샘의 '모던 브라운' 거실 인테리어패키지 쇼룸 모습 (사진 = 한샘 제공)
▲ 한샘의 '모던 브라운' 거실 인테리어패키지 쇼룸 모습 (사진 = 한샘 제공)

 

지난 2014년에는 스웨덴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이케아가 국내에 진출했다. 인접 가구사들은 바싹 긴장하며 원가 절감에 열을 올렸다. 혹은 이케아의 방식을 흉내내 온라인 판매로 돌아섰다. 그러나 한샘은 오히려 영업과 시공에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방어가 아닌 공격에 나섰다. 한샘의 작전은 구매자가 직접 제품을 조립해야 하는 이케아와는 차별화된 지점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또 한번 성공적. 2013년 가구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선 한샘은 2017년 매출 2조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 회장의 뒤를 이은 강승수 회장의 이력은 전임자와 사뭇 비슷한 구석이 많다. 강 회장은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대한항공 법무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강 회장은 대기업 법무팀에서 주어지는 일이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는 나 하나 없어도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았다.

강 회장이 한샘에 대리로 입사한 것은 지난 1995년. 당시 한샘의 매출액은 연 1000억원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입사 8년 후인 2003년 이사 대우, 2007년 상무, 2009년 전무, 2010년 부사장, 2014년 사장, 2016년 부회장을 거쳐 2019년 대표이사 회장직에 올랐다. 주요 요직을 맡으며 고속 승진의 연속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한샘은 국내 최초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선진국형 토털 인테리어 전시장 '한샘플래그샵'을 선보인다. 부엌 가구 관련 사업만 진행하던 한샘이 인테리어 가구 사업을 론칭한 것이다. 이후 2001년 한샘은 인테리어 가구업계 1위에 올라섰다. 인테리어 사업본부를 실질적으로 총괄해온 강 회장이 이 성과의 주역이다.

강 회장의 고속승진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사원 4년, 대리 4년, 과장 4년 이후에야 차장, 부장, 임원 승진을 기대해 볼만했던 시기 강 회장은 1993년 사회생활을 시작해 임원이 되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그후

아파트건설 붐 시절은 지나가고···B2C로 무게중심 이동

▲ 한샘 DBEW 디자인센터 전경 (사진 = 한샘 제공)
▲ 한샘 DBEW 디자인센터 전경 (사진 = 한샘 제공)

 

2013년 연 매출 1조원 달성 이후 4년 만인 2017년 한샘은 연 매출 2조원을 넘어섰지만 이후 주춤한 상태다. 비단 한샘만이 아니라 2018년부터 가구업계 전반은 건설 경기 침체 여파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2019년 한샘의 연 매출도 1조7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의 여파에 타격이 예상됐다. 하지만 강승수 회장 취임 첫해 한샘은 비교적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 3분기 기준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도에 비해 뚜렷하게 개선됐다. 매출은 1조526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0.8%가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37억원으로 87.4%가 개선됐다.

건설경기의 침체 여파는 여전해 보인다. B2B 실적은 오히려 작년에 비해 3.5% 감소한 3232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B2C 부문의 성과는 크게 개선됐다. 리모델링·부엌의 매출은 작년 4648억원에서 올해 5667억원을 21.9% 증가했다. 인테리어 가구 매출도 4054억원에서 4578억원으로 12.9% 늘었다.

강 회장은 "B2B 시장에 의존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규제로 신축 경기나 매매 경기가 움츠러들고, 사람들이 이사하기 어려워질수록 인테리어에 대한 수요는 높아진다. 낡은 집을 리모델링하고 가구도 새로 들여 새집과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실적이 확인해준 것처럼 B2C 가구 시장은 앞으로 계속 커질 것으로 강 회장은 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매출 10조·해외진출·신성장 동력 발굴···3대 과제 향해 뚜벅뚜벅

▲ 대표이사 취임사를 하고 있는 강승수 한샘 회장 (사진 = 한샘 제공)
▲ 대표이사 취임사를 하고 있는 강승수 한샘 회장 (사진 = 한샘 제공)

강승수 회장은 취임사에서 "과거 50년을 돌이켜 보면 한샘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라고 말했다.

1970년 창립 당시 한샘은 단돈 200만원의 자본금으로 7평의 가게에서 출발했다. 세계 제일의 부엌 가구 기업이 되자고 말했을 때 모두가 불가능한 목표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지금 이 회사는 국내 1위 종합 인테리어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한샘의 향후 50년 목표는 무엇일까? 강 회장은 새로운 도전의 여정을 시작하며 ▲중기 국내시장 매출 10조 달성 ▲해외시장 본격 진출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 등 세 가지 중점 과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시장 매출 10조 달성은 건자재와 부엌, 가구를 토탈 홈인테리어 공간 패키지로 구성하고, 이를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동시에 전개해 경쟁력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짚었다. 일종의 '테마'처럼 소비자가 마음에 드는 스타일의 옵션을 고르기만 하면 벽지, 바닥, 창호, 가구처럼 인테리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복안이다. 이런 서비스로만 향후 매출 5조원을 목표로 달린다.

이처럼 국내시장에서 완성된 홈 인테리어 비즈니스 성공모델을 기반으로 해외시장 진출의 시도도 지속한다. 또한 기존의 리모델링 패키지 사업 이후에는 스마트 홈과 스마트 시티가 미래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 회장은 판단하고 있다.

미래를 장미빛 청사진으로 그리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측과 분석으로 짜임새 있는 설계도를 그리기 위해 ▲디자인 ▲디지털 ▲인재 강화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디자인 한샘'은 단지 개성 있고 아름다운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인류 발전에 공헌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동서양을 넘어서는 디자인으로 미래 동북아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디지털 부문 역량 강화는 미래 먹거리인 스마트 홈과 스마트 시티 사업과 연동된다. 기존의 사업역량에 ICT 기술을 접목해 고도화시키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다.

비전은 리더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기업의 구성원 누구나 기회가 주어지고,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가능성이 보이는 일이다. 강 회장 본인이 그런 문화의 수혜를 누렸다. 그런 '한샘의 전통'을 더욱 발전 시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탁월한 목표에 도전하는 자율과 창의의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게 강 회장의 꿈이다.

▲ 한샘 디자인파크 부산센텀점 전경 (사진 = 한샘 제공)
▲ 한샘 디자인파크 부산센텀점 전경 (사진 = 한샘 제공)

 

여느 기업·조직과 마찬가지로 한샘도 그 과정에 많은 장애물에 직면할 것이다. 거침없이 승승장구만 해온 듯 뵈는 강 회장도 과거 중국 진출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한샘 스타일의 사업모델인 표준화된 인테리어 패키지가 중국 소비자들에게 그다지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강 회장은 해외진출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 상황임에도 계획을 앞당겨 밀어부친다는 뚝심이다. 특히 중국에 아직 인테리어 제안부터 건자재 시공, 가구 인테리어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업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현지 가상현실(VR) 기업과 협력해 3D로 인테리어 후 모습을 둘러볼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강 회장이 바라보고 있는 미래는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거 압축성장과 함께 속속 들어서는 아파트에 규격화된 모델의 부엌 가구를 들이게 하며 한샘은 지금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는 더 다양하게 세분화된 소비자들의 기호를 한샘이 알아서 그려주겠다는 제안이다.

실제로 한샘이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것과 흡사하다. 현재도 수만 개의 인테리어 사례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취향과 집 구조에 딱 맞는 설계를 뽑아주려 한다.

그냥 인테리어 업체, 기존의 가구 기업을 연상하면 강회장이 그린 한샘의 미래계획은 과거 그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코웃음만 나올지 모른다.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위기는 뚫고 나올 수 있는 차돌 같은 저력을 가진 기업의 제품이 'K-인테리어' 바람을 불어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된다.

 

박종훈 기자  marke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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