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KAI, 무결점 운동 선포 2년...부정 인식에 발목, 항공우주산업 생태계 사활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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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후] KAI, 무결점 운동 선포 2년...부정 인식에 발목, 항공우주산업 생태계 사활 기로
  • 김의철 기자
  • 승인 2020.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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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 '특정업체' 아닌 '국내 항공우주산업 생태계'...수백개 협력업체와 수천명 전문인력 사활 기로
- KAI의 자구 노력도 절실...'방산비리' 굴레 벗고 기술력으로 도약해야
- 방산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 여전...지속가능한 항공우주산업 측면에서 고려해야

2년 전인 2018년 11월, 국내 유일의 항공우주산업 분야 플랫폼 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59개 협력기업들과 함께 항공기 품질 무결점 운동을 선포하는 행사를 가졌다. 그해 7월 포항에서 벌어진 수리온 헬기 추락 사고로 촉발된 회사와 제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행사였다.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김조원 사장은 이 행사에서 “무결점 품질경영을 위해 KAI는 물론 협력업체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사소한 것 하나도 간과하지 않는 디테일한 품질관리로 국산항공기 신뢰회복과 고객만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KAI는 그날 이후 무결점 운동을 비롯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그에 따른 품질향상도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최근 KAI의 수리온 헬기 조종사들은 과거 초도생산분에 비해 월등히 품질이 향상됐다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명품 헬기'라는 찬사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AI의 상황은 썩 여의치 않다. 결정적으로 수주전에서의 고전이 뼈아프다. 더욱이 올 국회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들로부터 "회사의 특수성을 앞세워 '특정업체'로서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냐"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자면 KAI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KAI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KAI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지나치게 냉혹하고 KAI가 경쟁하는 기업들은 세계 최강의 방산기업들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장애물은 '방위산업은 비리산업'이라는 편견과 '미국 무기는 곧 세계 최고'라는 고정관념이다. 

지난 2018년 11월 28일 59개 협력업체와 KAI는 품질 무결점 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사진=KAI]
지난 2018년 11월 28일 59개 협력업체와 KAI는 품질 무결점 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사진=KAI]

그날 

KAI, 59개 협력업체와 품질 무결점 운동 선포...KAI는 플랫폼 기업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협력업체는 지난 2018년 11월 28일 경남 사천 KAI 본사에서 항공기 품질 무결점 운동을 선포했다. 이날 선포식에는 KAI와 한화, LIG넥스원 등 59개 주요 협력업체가 참여해 무결점 운동 실천을 선서하고 품질경영 동참을 다짐했다.

KAI는 이에 앞서 두달 전인 그해 9월 28일 창립기념식에서 'KAI 무결점 첫날'을 선포한 바 있다. 이 선언을 통해 KAI는 품질 무결점 실천 계획으로 분야별 품질 책임제, 비행 안전품목 특별검사, 내부 품질 신문고 제도, 품질개선 테스크포스를 통한 관리 시스템 강화 등을 수립했다. 유사한 선언이 연거푸 나온 것인데, 선포식이 앞서 창립기념일의 언급과 다른 점은 품질 관리의 주체를 '협력사'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KAI가 끊임없이 '품질'을 강조해야 했던 까닭은 그 무렵 KAI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한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KAI는 지난 2017년 7월 하성용 사장이 대규모 회계분식과 채용비리, 방산 비리 문제로 물러나는 사태의 후유증을 앓는 중이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하 전 사장 퇴임 후 석달 뒤인 2017년 10월 감사원 출신의 김조원 사장이 취임했다. 당시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가 취임한 명분은 미국의 고등훈련기 사업을 비롯한 굵직한 해외 사업 수주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감사원 출신의 김 사장은 이를테면 '방산비리'라는 불을 끄고 KAI를 회생시킬 소방수로 투입된 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의 재임 기간동안 해병대 마린온 추락 사고가 발생하면서 불은 더 커져버렸다.

2018년 7월 경북 포항 비행장에서 시험비행중이던 해병대용 마린온 1대가 추락했다. 추락 후 화재로 승무원 6명 중 5명이 순직한 이 사고 헬기는 KAI의 수리온을 해병대용으로 개량한 것으로 모두 4대가 해병대에 인도된 상태였다.

"사소한 것 하나도 간과하지 않는 세심한 품질관리로 국산 항공기 신뢰회복과 고객 만족에 힘쓰겠다"고 밝혔던 김조원 사장으로서는 무엇이 됐든 '액션'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KAI는 한국형 전투기(KF-X), 소형 무장헬기(LAH) 등 주요 개발사업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품질을 강화할 것과, 방산제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을 위해 품질 무결점 운동을 추진하게 됐던 것이다. 김조원 사장은 KAI에서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작년 7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갑자기 자리를 옮겼다.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의 수습 필요성과 별개로 무결점 운동 돌입은 KAI가 차지하는 산업적 특수성으로 볼 때도 중요한 일이었다. KAI는 항공우주산업의 생태계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의 최정점에 있는 플랫폼 기업이기 때문에 품질에 대한 강조는 경쟁력 강화로 직결된다.

KAI는 지난 1999년 10월1일 국내 항공우주산업 육성을 위해 대우중공업,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의 항공사업부가 통합돼 출범한 회사다.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부 출신인 하 사장은 유일한 내부 출신 사장이고, 항공전문가였다. 비록 방산 비리의 오명을 쓰고 최근까지 재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는 5년이나 KAI를 이끌면서 지금 KAI의 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하성용 전 KAI 사장 [사진=연합뉴스]

KAI의 경영자들은 2대 길형보 사장은 육군 참모총장 출신이고, 그 외에는 현 안현호 사장을 포함해 모두 관료출신이다. 기업인 출신은 하 사장이 유일하다. 

항공우주산업의 해외 경쟁기업들은 하나같이 최첨단 기술력을 보유했다. 항공우주분야의 첨단기술은 곧 한 나라의 국(방)력의 지표다. KAI와 경쟁하는 기업들은 록히드 마틴, 보잉, 노스롭그루먼, BAE 시스템스, 다쏘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다.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쳐두고 매번 투명성만을 앞세워 이들과 경쟁하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얘기다. 실제로 KAI는 '그날' 이후 수주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안현호 KAI 사장 [사진=KAI]
안현호 KAI 사장 [사진=KAI]

그후 

품질은 향상됐지만 불신은 여전...전문성·효율성 보다 투명성 강조해 성장에 발목 잡혀

무결점운동 선포식이 있은 지 10개월 후인 지난해 9월 5일 안현호 사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그는 같은 달 27일 사천 본사에서 열린 ‘창사 2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수주 확대를 강조했다. 

안현호 사장은 창립기념사에서 “척박한 환경에도 임직원과 협력업체의 노력, 정부 유관기관의 지원이 어우러져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지만 지난 5년 동안 매출과 수주의 정체로 위기상황”이라며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수주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뼈를 깎는 원가 절감과 선제적 연구개발로 수주 경쟁력을 향상해 지속성장이 가능한 튼튼한 한국항공우주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국내 항공우주 대표 업체로서 비전을 제시하고 중소협력업체와 상생하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안 사장은 작년 11월 2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면담 자리에서 "10년 내 매출 10조원 규모에 도달하기 위해 뼈를 깎는 혁신 노력으로 완전한 수출 산업화, 인공위성, MRO 산업 등에 혼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8일 안 사장 취임 후 첫 MRO(항공 정비) 물량 수주에는 성공했다. 안 사장 취임 후 첫번째 MRO 물량 확보였다. 미국 연방항공청(FAA) B737 항공기 정비능력 인증 등으로 공신력이 커진 것을 바탕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 안 사장은 MRO사업을 적극 키우고 있었다.

KAI는 2018년 국내 최초 정부 지정 MRO 전문업체인 한국항공서비스(KAEMS)를 설립했다. KAEMS가 민간 MRO 물량을 새롭게 수주한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었다. 약 8개월 만에 신규 사업을 따낸 셈이다.

업계에서는 MRO 사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를 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 수주로 업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안 사장은 선두에서 MRO 사업 확대를 이끌었다. 지난해 9월 취임식 후 가장 먼저 찾은 곳 역시 KAEMS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안 사장이 취임 이후 MRO 분야에서 성과가 일어난 것과 달리 현재까지 KAI 생산품의 해외 수주는 전무하다. 국내 800여대에 이르는 관영헬기 시장에서도 KAI의 수주실적은 10대 남짓에 불과하다. 국내 수주가 부실하다보니 해외 수출은 더욱 난감한 상황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다른 헬기 생산국들이 관용헬기를 50%~90 이상씩 자국산으로 구매하는 것과 비교하면 국산헬기에 대한 불신이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KAI의 초도 생산분에서 있었던 몇 가지 문제를 여전히 수리온 헬기의 품질 수준으로 여기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에 기인한다. 

KAI가 개발한 수리온 기반의 군.관용 파생헬기 [사진=KAI]
KAI가 개발한 수리온 기반의 군.관용 파생헬기 [사진=KAI]

그리고, 앞으로

KAI는 국내 항공우주산업 생태계 대표...수많은 협력업체와 항공우주산업 인재들의 미래 봐야

KAI 생산물에 대한 비우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음에 따라 육군 수송헬기와 해병대 공격용 헬기 사업이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은 육군의 수송용 노후 UH-60(블랙호크) 120여대를 KAI의 수리온 헬기로 교체하는 사업에 대해 사업비 등을 비교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해병대는 상륙용 공격헬기를 20여대 장만하려고 한다. 해병대는 미국의 바이퍼헬기를 원하고 있고, 방사청은 KAI의 수리온을 무장형으로 개량해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대안으로 검토하는 중이다. 

당시 한기호 의원은 산업파급효과 등을 이유로 수리온 헬기로 교체하는 것은 '특정업체'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의를 했다. 

KAI는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전투기와 헬기 제조업체다. 한국수출입은행(26.41%)과 국민연금(7.04%)이 최대 주주다. 바꿔 말해 사실상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여서 어려워질 수는 있어도 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결점 운동을 다짐한 59개의 주요협력업체들과 2차, 3차 협력업체들은 입장이 다르다. 경남 사천을 비롯해 수많은 항공우주산업 관련 중소기업들의 사활이 이번 결정에 달려있다.

KAI와 헬기 관련 직거래를 하고 있는 1차 협력업체들만 하더라도 200군데가 훌쩍 넘는다. 2, 3차 협력업체들까지 포함하면 1000여곳이 넘는 기업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 생태계가 선순환할 것인지 여부가 이번 결정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당초 국산헬기를 개발하기 위해 투입된 예산이 1조원이 훨씬 넘다보니 국산화율도 65%에 이를 만큼 높다. 그런 만큼 KAI는 한기호 의원이 지적한 대로 '특정 업체'로 보기는 어렵다. KAI는 조립업체일 뿐, 수많은 구성품을 생산하는 협력기업들은 국내 최고수준의 항공기 기술력을 갖춘 중소, 중견기업들이다. 또한 그 기업들에는 항공우주산업과 관련한 수많은 인재들이 일하고 있다. 한 마디로 KAI는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군은 25년 넘게 사용해온 블랙호크 헬기의 잔여수명(약 5년, 성능개량시 약 15년)에 대한 향후 감사 등을 이유로 국산헬기 교체를 취소하고 보잉사를 통한 성능개량 쪽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랙호크 성능개량 비용과 수리온 교체 비용, MRO비용 등을 따져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해외에 지출하는 것과 국내 기업에 지급하는 것은 산업파급효과와 일자리 창출 효과 측면에서 비교가 안된다.

조진수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국내 약 1800여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와 약 4조원의 수입대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성능향상과 원가절감이 가능해지면 국산 헬기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막대한 예산과 많은 노력을 기울여 국내 개발이 완료된 제품을 쓰는 것조차 머뭇거리면 국내 항공우주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린다. 항공우주산업분야는 한번 다른 나라에 뒤쳐지면 따라잡기 어려운 분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인재를 키우고 조직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헬기 생산국들이 차세대 헬기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시점이다. 차세대 군용 헬기는 스텔스 고기동 헬기와 무인 헬기 등으로 이미 시제품이 생산돼 시험단계에 들어가 있는 나라도 있다. 

KAI의 무인헬기 NI-600VT
KAI의 미래형 무인헬기 NI-600VT

또한 KAI는 국방력과 관련해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국에서 전투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8개국에 불과하고 헬기를 생산하는 나라도 10개국이 안된다. 국내생산이라는 선택권이 사라지게 되면 협상 때 마다 끌려다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방산 전문가들도 많다. 

올해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헬기를 생산하는 나라 중 미국, 러시아, 프랑스는 자국산 헬기 사용 비율이 모두 90%를 넘는다. 이탈리아(42%), 독일(50%), 스페인(56%)에 비해서도 한국의 자국산 헬기 사용 비율은 19%로 너무 낮다. 

국제통화기금(IMF)를 비롯한 많은 국제경제기구들이 우리나라의 올해 GDP가 세계 10위 안에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정도 경제규모를 지켜내려면 그만한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 

방위산업의 육성은 지속가능한 국방생태계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이 최근의 인식이다. KAI는 곧 우리나라의 항공우주산업 생태계를 대표한다는 점을 정책 관계자들이 단 한순간도 잊으면 안된다. 한번 무너지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복구될 지 알 수 없는 분야가 바로 항공우주산업 생태계다. 

품질향상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생산물량이 확보돼야 한다. 이는 모든 제조업의 기본이다. 

 

 

 

 

김의철 기자  re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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