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KT 아현지사 화재 2년...'초연결사회 마비' 겪은 구현모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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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후] KT 아현지사 화재 2년...'초연결사회 마비' 겪은 구현모의 숙제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0.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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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유의 통신재난 사태...KT 외 정부-서울시 등 대책 미비 '책임론'
- 황창규 회장 비서실장 출신 구현모 대표...최초 내부 승진 인사 "수익성과 안전, 두 마리 토끼 잡아야"

2년 전 오늘, KT 아현지사에 불이 났다. 이 사건으로 유·무선 전화가 불통되고 치안과 의료시설은 물론 카드, ATM 등 통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통신선으로 이어진 '초연결 사회'가 마비된 것이다. 세계 최초 5G 서비스를 1주일 앞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충격은 더 컸다.

KT 통신망 마비 사태의 배경으로 백업 시스템 부재와 비용 절감에 따른 인력 감축, 정부의 통신재난 대책 부재 등이 지목됐다. 그러나 정작 화재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당국은 올해 3월까지 조사를 계속 했지만 ‘원인불명’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황창규 회장은 화재 현장에 나와 고개를 숙였다. 그 후 소상공인 피해 보상프로그램과 재발방지대책도 발표됐다. 하지만 여전히 백업 인프라 구축 등 과제는 남았다. 황 회장은 6년 연임 임기를 마치고 퇴장했다. 황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KT 대표이사를 맡은 구현모 사장에게는 안전하고 안정된 초연결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 그날

서울 시내 곳곳 통신 마비 사태...황창규 회장 현장 찾아 사과문 발표

2018년 11월 24일 토요일 오전 11시 12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KT 아현지사 건물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통신구는 케이블 부설을 위해 설치한 지하도를 뜻한다. 통신구에는 전화선 16만8천 회선, 광케이블 220조(전선 세트)가 설치돼 있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유·무선통신 장애가 초래돼 큰 불편이 빚어졌다.

2018년 11월 24일, KT 아현지사 화재 현장 모습

소방당국은 인원 208명과 장비 60대를 투입했지만 초기 진압에 실패했다. 불길이 통신구 맨홀 아래 있어 내부 진입이 불가능한 탓이었다. 통신구에 설치된 광케이블이 불에 타면서 현장 주변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이날 화재로 KT 아현지사 회선을 이용하는 서울 중구·용산구·서대문구·마포구 일대와 은평구·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에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해당 지역에서는 KT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가 모두 마비 상태에 빠졌다. KT 통신망을 사용하는 카드결제 단말기와 포스(POS·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가 '먹통'이 되면서 커피전문점, 편의점, 식당 등 소상공인의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시민들의 불편도 컸다. 일부 경찰서, 병원 등 국가 주요 시설도 마비됐다.

KT는 초유의 사태에 전사 대응 체제로 전환했다. KT는 "화재가 진압된 후 소방당국의 협조를 받아 통신 서비스 복구에 즉시 임할 것"이라며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신망 우회복구, 이동기지국 신속배치, 인력 비상근무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KT 아현지사 화재로 상점 등은 카드 결제가 불가능해 현금 결제로 대신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부 과천청사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잇달아 개최하고 중요 통신시설 점검 및 재발방지대책을 찾아 나섰다. 과기정통부를 비롯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서울시,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은 통신재난에 가용자원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황창규 KT 회장은 24일 오후에 이어 25일 현장을 찾아 복구를 지휘하면서 거듭 사과와 함게 재발 방지책과 보상 방안 마련을 약속했다. 황 회장은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소방 당국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며 "이번 사고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국의 모든 통신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황창규 회장이 화재 현장에서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출처 방송 캡처]

KT는 우선 소상공인의 유선망 장애에 대해 1000대의 무선 라우터를 보급해 영업 피해 최소화에 나섰다. 또 피해를 입은 유선 및 무선 가입고객에게 1개월 요금을 감면하기로 했다. 이 같은 보상안은 약관의 2배 수준이었다. KT가 파격적인 보상을 결정한 데는 통신장애가 장시간 이어졌기 때문인데, 최근 15년간 통신장애가 만 하루를 넘긴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전례가 없었기에 광범위한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방안 마련은 간단치 않았다.

아현지사 화재 복구에는 1주일 이상이 걸렸다. KT가 수익성 위주 경영을 해오면서 백업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황창규 회장 책임론이 나온 까닭이다. KT전국민주동지회는 "민영화 이후 KT가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펼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에는 지점별로 분산돼 있는 통신시설을 소수의 집중국으로 모으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며 "통신망을 집중하며 통신사고에 대한 대비책은 소홀히 했다. 인력구조조정을 위해 핵심업무를 모조리 외주화한 것도 신속한 복구를 어렵게 했다"고 전했다.

통신재난에 전혀 대처를 못한 과기정통부, 행안부, 서울시 등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도 컸다. 아현지사는 전국의 주요 통신국사 가운데 정부 기준 D등급으로 분류됐다. D등급은 백업시스템을 의무적으로 이원화할 대상이 아니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D등급에 무리한 투자를 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 그후

KT 아현지사 화재 후폭풍...통신재난 대책 마련 및 소상공인에 62억 피해 보상

화재가 진화되고 물리적 복구 작업이 얼추 마무리되었으나 KT에는 화재 후폭풍이 밀어닥쳤다. 아현지사 화재는 KT 추산 469억원의 물적 피해를 초래했다. 당장 2018년 4분기 매출이 줄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8.4% 감소했다. 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요금감면 비용이 모두 반영됐기 때문이다. 연말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집중 타깃이 됐다. 

KT는 2019년 3월 통신대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KT 통신 재난 대응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3년간 총 4800억원을 투입해 통신구 감시 및 소방시설 보강, 통신국사 전송로 이원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앞서 KT는 각 분야별 전문기술인력을 투입해 전국의 통신구 및 전체 유무선 네트워크 시설에 대한 통신망 생존성 자체진단을 실시하기도 했다.

KT 아현지사 현장은 화재로 케이블이 모두 소실돼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

우선 KT는 고객수용 규모 및 중요도가 높은 통신국사의 통신구를 대상으로 소방시설을 보강하기로 했다. 중요 통신시설 생존성 강화를 위해 우회 통신경로 확보, 통신 재난대응인력 지정·운용 및 출입통제, 전력공급 안정성 확보에도 나섰다. 신규 지정된 중요 통신시설에 대해서는 3년간 단계적으로 우회 통신경로를 확보키로 했다.

아울러 전력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모든 A·B등급 통신국사에 대해 이원화를 3년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KT는 “앞으로 2년간 전체 통신구에 대한 소방시설 보강은 물론 감시시스템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라며 “통신구 내 전기시설 제어반에 대해선 내구성이 약한 FRP(섬유강화플라스틱) 재질의 제어반을 스테인리스 재질로 전량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같은 달, 피해 지역 소상공인들에 대한 지원금을 확정했다. 지원금은 서비스 장애복구 기간의 차이를 고려해 4개 구간으로 나눴다. KT는 서비스 장애복구까지 1-2일이 걸린 소상공인에게는 40만원, 3-4일은 80만원, 5-6일은 100만원, 7일 이상은 120만원을 지원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지원금 지급대상은 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이 KT 유선인터넷 또는 전화 장애로 인해 카드결제나 주문 영업을 못해 피해를 본 경우로 정했다. 일부 업종에 대해서는 연 매출 50억원 미만 도소매업도 포함했다. KT는 소상공인 1만1500명에게 62억5000만원을 보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상공인을 비롯해 전체 피해고객 110여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요금 감면의 규모는 350억8000만원에 달했다.

한편 경찰은 화재 발생 직후 수사전담반을 편성한 뒤 수사를 진행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한전, 전기안전공사 등 유관기관이 수사에 참여해 화재 현장 조사를 3차례나 진행했다. 통신구 출입구와 중간 맨홀 주변에서 인화성 물질 검출을 위한 간이 유증검사를 한 결과 ‘음성’이 나왔다. 국과수가 수거물에 대한 인화성 물질 확인 시험을 한 결과에서도 휘발유·등유·경유 등의 유기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KT 화재 원인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같은 해 5월, 경찰은 5개월간 수사를 진행했지만 "방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결론만 내놨다. ‘원인 불명’인 셈이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장시간 화재로 통신구 내부가 심하게 불에 타 구체적 발화지점을 한정하지 못했고,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발화원인을 규명할 수 없어 사건을 내사 종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그리고, 앞으로

구현모 체제, 화재 재발방지책 등 과제 산적

KT는 아현지사 화재 재발방지책 마련에 분주했다. 올해 들어 KT는 통신재난 대응체계 구축과 백업 인프라 확보에 집중했다. 지난 8월까지 주요 시설에 대한 이원화 작업은 완료했다. 그러나 동일한 재난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구리선(동축케이블)의 광케이블로의 교체는 그 중 하나다. 화재 후 2년이 지나도록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화재 당시 복구작업에서도 구리선은 적지 않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구리선은 굵고 무거워 맨홀로 빼내는 게 어렵고, 모든 회선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1:1로 연결해야 했기 때문.

구리선 기반 유선전화는 정부가 지정한 '보편적 서비스 제도'에 발목이 잡혀 있다. 보편적 서비스는 통신기본권 차원에서 유지해야 한다. 유선전화는 KT가 의무제공사업자다. 이 제도는 구리선 유선전화(PSTN)에만 적용되며 광케이블 기반 인터넷전화(VoIP)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KT가 구리선 교체를 마음대로 못하는 것. 5G 이동통신 시대로 가는데 보편적 서비스가 2000년 2G 시대에 만들어진 구리선 기반 음성 중심의 시내전화에 머물러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KT는 “구리선 전화가 VoIP로 바뀌면 섬마을에서도 온라인 교육을 받아 디지털 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과기정통부도 통신재난 대응책에 부심했다. 정부는 지난 1월 2020년 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변경했다. 전국 망 관리센터(4개)의 기준을 강화(C→A급)함에 따라 A급으로 상향된 2개 통신사(KT, LG유플러스)가 제출한 전력공급망 이원화 계획 등을 반영했다. 또 티브로드와 SK브로드밴드 합병에 따라 기존 티브로드 관련 내용을 SK브로드밴드의 내용으로 통합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확산, 비대면 생활 일상화에 따른 트래픽 증가 등 새로운 위험요인에 대한 대응체계도 마련했다.

통신재난을 계기로 통신3사가 공동 대응에도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동통신 재난 로밍’ 도입이다. 이는 화재 등으로 통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용자가 다른 통신사 망으로 음성‧문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긴급 지원해주는 서비스다. 이를 위해 통신3사는 각각 약 100만 회선을 수용할 수 있는 재난로밍 전용망을 구축했다.

또한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통신 4사는 내년까지 통신망과 전력공급망을 이원화하기로 했다. 내년 말까지 대상 시설의 98.5%에 통신망 이원화가, 92.7%에 전력공급망 이원화가 완료된다. KT는 12월 10일 시행되는 소방시설법 개정안에 따라 2022년까지 500m 미만 통신구에 소방시설을 설치하고, 500m 이상 통신구에는 방화문 등 소방시설을 보강할 계획이다.

구현모 KT 대표가 지난 10월, KT 2020년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의 도약과 B2B ICT 시장 1등 기업 실현을 위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구현모 KT 대표가 지난 10월, KT 2020년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의 도약과 B2B ICT 시장 1등 기업 실현을 위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화재 당시 KT를 지휘한 황 회장은 사건 후 1년여를 지나 6년 연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6년 연임을 무사히 마친 경우는 KT그룹 사상 처음이다. 회장 재임 시 그가 겪은 크고 작은 사건이 여럿이지만 화재 사건만큼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킨 사례는 없었다. 

그의 뒤를 이어받은 구현모 사장은 황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1987년 한국통신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30년 이상 KT에서만 근무한 '정통 KT맨'이었다. 그는 지난 3월 주주총회를 통과한 뒤 취임 일성으로 “KT그룹을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그는 취임 5일 만에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법무실과 윤리경영실 내 컴플라이언스 관련 조직을 컴플라이언스위원회로 재편해 상설화했다. 

구 대표가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강화한 까닭은 명확하다. 민영화 이후 KT에서 벌어진 문제 열에 아홉은 구대표의 표현대로 '외풍'에 기인한다. 구대표 역시 관련이 있는 전임 황창규 회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 대표적이다. 준법경영의 목표가 리스크 관리를 통해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있다고 볼 때, 아현지사 화재 사건은 전혀 무관한 사안이 아니다.  

KT 아현지사 화재는 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앞둔 시점에서 발생한 만큼 '초연결시대' IT 기반 시설의 통신재난 대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일깨웠다. 구현모 KT 대표는 '포스트 황창규'에서 벗어나 '수익성과 안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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