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안 맞는 이케아 노사···조합원 96.8% 파업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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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안 맞는 이케아 노사···조합원 96.8% 파업 찬성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11.0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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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노조 설립 후 교섭 지지부진···비용발생 40여개 조항에 노사 이견
사진 = 이케아지회 제공
사진 = 이케아지회 제공

 

스웨덴 본사 글로벌 가구기업인 이케아가 한국선 노사관계가 삐걱이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이케아코리아지회(지회장 정윤택)는 3일 전체 조합원 558명 중 96.8%인 540명의 지지를 얻어 쟁의행위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케아에 노조가 설립된 것은 지난 2월. 이후 7개월여에 기간 동안 28차에 이르는 교섭을 진행했음에도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마트노조 김성익 사무처장은 "120여개 조항의 단체협약에서 80개 가량은 합의에 이르렀으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40여개 조항에 대해선 한국법인 교섭당사자들이 대단히 미온적 태도"라며 "사측 교섭위원이지만 결정 권한이 없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결국 지회는 지난 10월 22일 교섭 결렬을 선언했고, 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을 거쳐 쟁의행위 절차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노동조합은 한국의 이케아 노동자들이 글로벌 사업장 기준에 비해 차별적인 요소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 = 이케아지회 제공
자료 = 이케아지회 제공

이케아는 전 세계 35개국에 350여개 매장을 열고 있으며, 한국엔 광명, 고양, 기흥, 동부산 등 4개 대형매장을 운영 중이다.

특히 노조는 ▲주말수당 150% ▲18시부터 지급하는 120% 워라밸 가산수당 ▲식대 등을 타국 매장에선 지급하고 있으면서, 한국에서만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케아 코리아는 "노조 설립 이래 지난 4월부터 단체협약을 위한 교섭에 성실히 임하며 2500여명의 코워커가 모두 공정하고 차별없는 환경에서 근무할수있도록 하는 원칙과 기준을 토대로 의견을 좁히고자 노력해온 바 있다"며 "아쉽게도 지난 10월 22일, 노조 측에서 노사간 의견 차이로 교섭 결렬을 통보해왔으나 이케아 코리아는 단체협약을 원만하게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가 있으며, 앞으로도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떠나 코워커 모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더 나은 근무환경 조성을 위해 6개월 유급 출산 휴가, 1개월 유급의 아빠 출산 휴가, 전 매장 어린이집 운영, 난임휴가, 근무 시간에 관계없는 동등한 대우 등의 복리후생 정책을 갖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앞서 노조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선 딱히 입장표명이 없다.

'살트셰바덴(Saltsjöbaden) 협약'으로 잘 알려져 있는 협의와 합의 중심 상생 노사관계를 자랑하고 있는 스웨덴 출신 기업이 왜 하필 한국에선 말썽일까?

비근한 사례를 찾아보는 것은 국내 유통업 노사관계의 역사 속에서도 어렵지 않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여년간 대형마트 사업을 진행했던 프랑스 까르푸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 납품업체에 고압적인 태도로 단가인하를 종용하거나, 인건비 등 고정비 절감을 위해 종업원을 파견직으로 고용했으며, 노조가 설립되자 이들을 기피업무로 배치해 압박하는 등의 행태를 보여왔던 것.

당시 까르푸의 작태는 최규석 작가의 만화 '송곳'을 비롯해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로 소개되며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결국 여하한 이미지 실추와 함께, 프랑스 본사에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매출 수준 등으로 국내서 철수를 결정하게 된 것.

흔히 유럽 국가들의 선진적 노사관계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노동조합의 위상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에 반해 198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노조 설립 이후 지속돼 온 한국의 갈등적 노사관계를 상대적으로 후졌다고 보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이거야 말로 큰 오해. 유럽의 소위 노사관계 선진국의 역사는 유혈이 낭자하다.

이케아의 친정인 스웨덴만 해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살트셰바덴 협약은 파국의 노사관계 끝에 비극을 종결짓고자 만들어졌다.

1930년 무렵 미국에서 비롯된 대공황의 여파가 스웨덴에까지 미치자, 주력 산업이었던 철광석 수출은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안그래도 열악했던 당시 스웨덴 노동자들의 처우는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졌고, 결국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과 학생, 부녀자, 노인과 어린아이들까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결국 사달이 터진 건 1931년 5월, 스웨덴의 수도 스톡흘름 인근 도시 오달렌의 한 제재소에서 파업 노동자들을 지지하던 시위대 3000여명에게 군대가 발포했다. 임산부를 포함한 5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은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여론을 달구었고, 결국 이듬해 총선에선 노동조합 세력을 기반으로 한 사회민주노동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아무튼 사람들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만 과거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기 마련. 특히 자국에선 불가능한 일을 해외서 관철하고 있다는 점은 새삼 상황을 씁쓸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무엇보다 앞서 까르푸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상대적으로 임금이나 고용구조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업종에서부터 갈등 상황이 촉발된다는 점은 더욱 안타깝기 그지 없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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