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두산그룹 위기 시초된 밥캣 인수… 반복된 실패 '혈세'로 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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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후] 두산그룹 위기 시초된 밥캣 인수… 반복된 실패 '혈세'로 덮다
  • 서창완 기자
  • 승인 2020.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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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프라코어, 2007년 당시 사상 최대 규모 M&A에 5조원 투입
두산밥캣 '알짜'로 올라섰지만… 그룹 유동성 위기는 지금도 계속
두산건설 살리기에 10년간 2조원 쏟아붓기도
두산중공업 재무 구조 개선에 '혈세' 3조6000억원… '책임 경영' 절실

'기업 포식자.'

2000년대 두산그룹을 요약할 수 있는 단어다. 두산그룹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시작으로 2007년 미국의 밥캣 등 공격적 인수·합병(M&A)을 수차례 진행했다. 체질 개선과 위기 자초. 두산그룹의 이런 공격적 M&A에 붙는 2가지 해석이다.

두산그룹은 1991년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등을 겪으며 그 영향으로 위기를 맞았다. 적자 규모가 불어나자 택한 길이 자사 소비재 산업 포기였다, 이후 두산그룹은 1990년대 중·후반 합병과 철수를 거친 뒤 2000년대 체질 개선 드라이브를 걸었다. 경공업 중심 사업을 운영하던 두산그룹은 지금의 중공업 위주 기업으로 변모했다.

다만, 체질 개선과 경영 성공은 별개의 문제였다. 위기가 닥쳤다. 2007년 미국 '밥캣' 인수가 시초였다. 그 뒤 '경영 위기'에 빠진 두산그룹은 패착을 거듭하며 2020년 현재 두산중공업 자구안을 진행하고 있다.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두산중공업에 혈세 3조6000억원을 긴급 수혈하면서 시작된 자구안과 함께 그룹의 알짜 계열사와 자산이 대부분 팔렸다. 2000년대에만 5명이 회장직을 돌아가면서 맡은 '형제 경영'은 위기에 대한 책임을 희석시켰다.

◆그날

두산인프라코어, 2007년 사상 최대금액에 밥캣 인수

2007년 11월 9일, 두산인프라코어가 밥캣 등 잉거솔랜드 3개 사업부문에 대한 인수 관련 금융조달 작업을 마무리했다. 4개월 전인 7월 30일에 49달러(약 5조원) 규모의 사업 인수합병 성사시킨 뒤의 일이다. 당시 기준으로 한국 기업의 해외 M&A 사상 최대금액이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합병 협조 융자 대주단에는 주간사인 한국산업은행을 비롯해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기업은행 등 총 12개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이들 금융회사는 신디케이티드 론 방식으로 39억달러 지원을 결정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2017년 10월 한국국제경영학회가 경영의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기업인에게 수여하는 '글로벌 CEO 대상'을 수상했다. 이 수상의 명목은 미국의 건설장비 업체인 잉거솔랜드 3개 사업부를 49억 달러에 인수해 국내기업으로서는 사상 최대의 해외기업 인수기록을 세우고, 이를 통해 두산인프라코어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한 공로였다. [사진=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2017년 10월 한국국제경영학회가 경영의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기업인에게 수여하는 '글로벌 CEO 대상'을 수상했다. 이 수상의 명목은 미국의 건설장비 업체인 잉거솔랜드 3개 사업부를 49억 달러에 인수해 국내기업으로서는 사상 최대의 해외기업 인수기록을 세우고, 이를 통해 두산인프라코어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한 공로였다. [사진=두산인프라코어]

당시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인수금융 서명식에서 "밥캣의 올해 실적이 예상치보다 10% 이상 상회하고 있고, 밥캣 장비가 주택 건설시장과는 큰 관련이 없어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타격은 없다"며 "대주단을 실망시키지 않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여드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인성 한국산업은행 이사는 "외국계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대규모 해외 M&A 인수금융시장에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자체 능력만으로도 대규모 인수금융을 주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라고 축하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발언들이었다. 이때 인수한 밥캣은 두산그룹을 유동성 위기에 몰아넣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박용만 당시 부회장이 타격이 없을 거라 자신했던 서브프라임 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라는 이름의 세계 규모의 경제 위기로 번졌다. 인수 직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는 지분법 손실만 1조3000억원 이상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인수 시 자금조달 대부분을 차입에 의존한 점도 위기의 싹을 틔웠다.

자회사 두산밥캣이 두산인프라코어를 흔들기 시작했다. 2008년 두산인프라코어의 총차입금은 6조982억원으로, 밥캣을 인수하기 전(1조2864억원)보다 5배 가까이 증가했다. 부채 비율도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2010년 526.5%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그후

두산밥캣, '알짜'로 성장… 그룹은 위기에 빠지다

2011년부터 미국 건설 경기가 반등하면서 두산밥캣과 두산인프라코어는 동반 회생했다. 현재 그룹 내에서 두산밥캣은 효자 계열사다. 지난해 영업이익 4770억원을 비롯해 6년째 4000억원 안팎의 흑자를 내는 알짜 회사로 성장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매출액에서 두산밥캣이 차지하는 비중만 50%에 가깝다.

두산밥캣이 지난달 유럽에서 선보인 신제품 콤팩트 휠로더. [사진=두산밥캣]
두산밥캣이 지난달 유럽에서 선보인 신제품 콤팩트 휠로더. [사진=두산밥캣]

다만 밥캣 인수가 불러일으킨 유동성 위기는 그룹 구조조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인수 뒤 두산밥캣은 알짜 회사가 됐으나 두산인프라코어는 유동성 위기에 시달렸다.

실제 두산인프라코어의 순차입 규모는 지난 2016년 1조3458억원을 갚으면서 3조원대를 기록하기 전까지 5조원 안팎이었다. 지난 2018년 2조9989억원으로 2조원대 턱걸이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부채 부담이 크다. 이는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온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밥캣 인수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가 그룹 발목을 잡았다면 '두산건설 살리기'는 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주택시장 침체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영 판단 착오'였다.

두산건설 부실 단초를 제공한 건 경기 고양 일산 서구에 지은 '탄현 두산 위브 더 제니스'다. 현재 두산그룹의 수장인 박정원 회장이 2009년 두산건설 회장에 취임할 당시 밀어붙인 프로젝트다. 두산건설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11월 2700가구 규모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을 시작했다. 규모만 지하 5층, 지상 51~59층 8개동에 달했다.

프리미엄도 붙었다. 전용면적 59~170㎡ 가운데 중대형이 50% 이상을 차지했다. 주택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시점에 수요자가 적었던 대형 평수 위주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한 셈이다.

일산 두산 위브 더 제니스 조감도. [사진=두산위브]
일산 두산 위브 더 제니스 조감도. [사진=두산위브]

박정원 회장의 프로젝트는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이어졌다. 2012년 준공한 이후 2016년까지 미분양률이 80%에 달했다. 이후 시행사 비리와 부도까지 겹치면서 시공사 두산건설은 공사대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심화되면서 발목이 잡힌 두산건설은 만성적자에 시달렸다. 2011년 이후 매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결국 지난해 상장폐지됐다.

이 과정에서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10년간 투입한 돈이 2조원 이상이다. 두산건설에 쏟아부은 자금은 그룹을 구조조정의 늪까지 몰아붙였다. 두산그룹이 채권단에 약속한 재무구조 개선 자구안의 액수가 3조원이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두산그룹이 현재까지 자구안 실행을 위해 계열사와 자산 매각을 통해 마련한 금액은 2조2000억원 정도다. 그룹 소유 클럽모우CC를 1850억원에 매각하면서 출발을 알린 다음 네오플럭스(730억원), 두산솔루스(7000억원), 두산타워(8000억원), ㈜두산 모트롤사업부(4530억원) 등을 차례로 팔아치웠다. 유상증자로 1조3000억원 가량의 자금 마련도 결정했다.

밥캣을 인수하며 '글로벌 기업 성장'의 꿈을 품었던 두산인프라코어는 '매각 최대어'로 시장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재편과 혁신을 주도해 글로벌기업으로 만든 주역이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에 대한 평가는 다시 쓰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자구안 끝나면 그룹도 살아날까

자구안이 막바지에 이르면 두산그룹은 살아날 수 있을까. 경영은 하되 책임지지 않았던 두산그룹의 여태까지 행보를 보면 쉽게 자신하기는 어렵다.

두산그룹은 박용곤, 고(故) 박용오,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으로 이어지는 형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고 박승직 창업주에 이어 고 박두병 초대회장의 장남부터 다섯 번째 아들까지 두루 회장직을 맡았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 원칙의 기조 아래 이어진 풍토다.

1997~2004년까지 그룹 회장직을 맡았던 2남 박용오 전 회장이 3남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추대되자 비리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해 '형제의 난'도 벌어졌다. 두산은 이후 가족회의를 열어 고 박용오 회장을 가문에서 쫓아냈다. 고인의 두 아들인 경원·중원 형제도 경영권 승계에서 배제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사진=두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사진=두산]

'난'을 겪은 뒤 두산그룹은 2005~2016년 3남부터 5남 박용만 회장까지 번갈아가며 '형제 경영'을 이어갔다. 40년 가까이 의사로 살아 온 4남 박용현이 2007년 뒤늦게 두산건설 대표를 맡은 뒤 2009년 3월 두산그룹 회장을 맡을 정도로 '형제의 법칙'은 공고했다.

두산그룹은 2016년 박정원 회장을 시작으로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두산그룹 '사촌 경영'이라고도 부르는데, 회장직 조건을 갖춘 사람의 수만 무려 9명이다. ㈜두산의 주식은 박정원 회장을 비롯해 총수 일가 특수관계인(주로 사촌형제들) 36명이 지분 47.24%를 차지하고 있다.

대를 이어 뭉친 두산그룹의 '사촌 경영'이 이어진다면 공격적 M&A와 대규모 프로젝트로 몸집만 키워놓고, 위기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제2의 '밥캣', '건설' 사례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두산그룹은 '책임 경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박정원 회장을 포함한 ㈜두산 대주주 13명이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보유 중인 두산퓨얼셀 지분 23%, 5740억원 어치를 무상 증여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오너 일가는 이를 '책임경영 차원의 사재출연'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6일 이중 절반이 팔렸다. 오너 일가는 매각하지 못한 물량은 다시 내놓을 계획이다.

박정원 회장은 현금성 사재출연도 결정해 올 상반기 급여 8억7000만원을 전액 반납하기도 했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그룹 지주사 ㈜두산으로부터 받은 급여다.

책임 경영의 시동은 걸었으나 혈세 3조6000억원 지원과 구조조정 등 '경영 실패'로 인한 과오를 모두 갚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 원칙 아래 그룹 위기를 키운 오너 일가는 여전히 단단한 지분을 쥐고 있다. 두산그룹이 책임 경영을 완수하려면 '대주주 희생'의 몸짓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서창완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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