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에서 쐐기로···금융권 숙원과제 가로막는 임금피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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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에서 쐐기로···금융권 숙원과제 가로막는 임금피크제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10.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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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KB·씨티 등 시니어 복수노조 중심 소송 잇따라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 등장한 임금피크제는 많은 이들에게 '계륵'으로 불렸다.

당장은 별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미래를 위한 대비가 있어야 했고, 찬반 양론이 옥신각신 하는 와중에 어느새 제도는 안착해 버렸다.

십수년이 흐른 지금은 금융권 전반의 조직과제 한 가운데 박혀 있는 쐐기다.

이걸 뽑지 않고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제도의 대상자들은 자신들의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본격적인 법적 쟁송에 들어갔다.


2003년 신용보증기금서 최초 도입한 임금피크제


임금피크제란 근로자의 계속 고용을 위해 노사간 합의 등을 통해 일정한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조정하고, 소정의 기간 동안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 후에 고용을 연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업이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수량적 유연화, 기능적 유연화, 임금 유연화 등의 방법 중 하나다.

한국 사회서 임금피크제를 최초 도입한 사업장은 신용보증기금이다.

지난 2003년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후 금융기관과 공공부문, 언론기관과 일부 제조업 사업장에도 도입됐다.

과거,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 시행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6년, 임금피크제 보전수당 정책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내용은 마치 청년고용촉진 지원제도와 흡사한 구조인데,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에는 해당 근로자의 임금을 일부 보전해 주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사업장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만 56세 이상까지 고용을 보장하되, 피크 임금보다 10% 이상 임금을 삭감할 경우, 해당 근로자의 임금을 만 54세 때부터 최대 6년 동안 한해 600만원, 분기당 150만원 한도 내에서 보전해 줬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노사발전재단에선 장년친화직장만들기 지원사업이란 이름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컨설팅을 위탁 수행했으며,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지방 노동관서 등을 동원해 대대적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가 내세운 임금피크제 도입의 명분은 출산율 감소와 평균수명 증대로 인해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노동생산성은 하락하고 있는 반면 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서 인건비 부담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인력난 해소,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노후소득 보장, 고령자 고용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을 한 몫에 해결할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청년일자리 확대? 조직 내 세대갈등만 부각


야심찬 취지와는 달리 임금피크제의 정책효과는 미미하단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오죽하면 계륵이란 수식어가 붙었겠나.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임금피크제는 공공기관들을 중심으로 제도 도입이 강제되다시피 했는데, 이를 통해 줄어든 인건비만큼 공공기관의 신규채용을 늘려 청년일자리 확충을 추진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계획은 사실, 그동안 정부가 꾸준히 밀어부쳐온 '공공부문 슬림화' 정책과 상호모순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재부의 손아귀서 정원에 대입되는 총액인건비 개념으로 공공기관은 운영되고 있으며, 결국 이 문제를 비껴갈 수 있는 해법이라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분석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에 따른 채용효과 자료를 보면, 결론적으로 임금피크제가 공공기관의 신입사원 채용이나 고령자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게 드러난다.

이보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임금피크제는 고령자 고용과 청년 신규채용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발표한 내용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앞서 언급처럼 고령자 고용과 청년 신규채용을 늘린다는 것은 결국 공공기관의 전체 정원을 늘린다는 의미인데, 고용부문 주무부처의 계획과 무관하게 공공기관 정원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 기재부는 움쩍도 안한다.

결국 개별 기관의 현실로 돌아가보면 임금피크제 적용 인원이 고스란히 기관 정원에 묶여 있어 신입채용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제도 도입 초반에야 이 문제가 크지 않았더라도,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자연스런 세대교체는 어불성설이다.

특히 한국 사회가 짧은 시간 동안 대단히 압축적인 성장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 복잡하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특정 시기 업무량과 기능이 커지며 당시 세대를 대거 채용했고 이들이 지금에 이르러선 정년이 가까운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된 것이다.

매년 수 명씩 대상인원이 발생할 때야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조직 정원의 20~30% 규모로 발생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산업은행에서 현재 169명의 임금피크제 소송을 이끌고 있는 시니어노조 김성렬 위원장은 "작년 2월 단톡방을 개설하고 3시간만에 180여명이 참여했다"며 "현재 소송 진행 중인 169명 외에도, 1964년생 150여명, 1965년생 100명 이상 등 앞으로도 계속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022년에는 약 700여명 수준까지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ALIO의 2020년 2분기 공시 기준 정규직 정원은 3151명이다.


임피제 대상 '시니어들', 노조 설립해 조직적 목소리 내다


지난 8월말 중장년 금융권 노동자들은 각 기관 시니어노조들을 중심으로 '50+금융노동조합 연대회의'를 출범한 바 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씨티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서울보증보험, 한국거래소 등 여덟 곳의 시니어노조가 주축이며 조합원 수는 약 2000여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과제는 중장년 금융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임금피크제 문제 해결과 현실적인 희망퇴직 제도 도입 등의 사안이 핵심이다.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인 산업은행말고도 서울보증보험, 씨티은행, 국민은행도 임금피크제 소송을 진행한다.

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한국거래소 등 연대회의 소속 조직 대부분에서 소송에 뛰어들 계획이다.

소송 외에도 이들 연대회의를 중심으로 각 기관장의 항의방문 등의 일정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은 작년 11월 지방공기업인 문경레저타운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들의 대법원 승소 판례 등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해당 사건과 이후, 산업은행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률사무소 새날 김기덕 대표변호사는 "소장에서 임금피크제가 근로조건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고 이에 사용자가 근로기준법 94조에 따라 집단적 동의를 득했다고 할지라도 이는 절차적 요건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유효하게 존속하는 근로계약(연봉계약)의 변경을 결하고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4조 근로조건의 자유 결정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는 대법 판결을 인용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규칙을 사업장의 법인 양 판단해 왔던 수많은 판결들이 떠올라 마음이 한편으론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처럼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은 압축 성장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했던 한 금융공기업 시니어노동자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은 대부분 설립 초창기 멤버들이고,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들의 승진은 대단히 빨랐다"며 "대부분 부서장급 이상의 인원들이 하루아침에 팀원으로 격하되며 느끼게 되는 상실감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랫동안 상급자로 일하는 게 익숙한 이들 중에는 업무 중 트러블을 일으키는 경우도 왕왕 벌어진다고 한다.

또한 조직문화가 보수적이고 경직돼 있는 경우, 이들의 적응을 더 어렵게 만든다.

현실적인 금전적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인들의 생애 임금주기를 볼 때, 임금피크제에 들어선 이들이야말로, 일생 중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금융노조 산하 지부 중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조직은 신협중앙회가 유일한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관에선 임금이 작게는 60%에서 많게는 10% 수준까지 꺾인다.

한창 자녀들을 결혼시키느라 목돈이 들어갈 무렵에, 혹은 지금처럼 결혼하는 나이가 늦어진 경우엔 이제 막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이 들어갈 무렵에 수입이 절반으로 고꾸라지는 형국이다.

언젠간 미래에 닥쳐올 문제에 대해 그렇다면 금융노조를 비롯한, 현 정규직 노조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금융노조는 올해 임단협 안건으로 정년 만 65세 연장과 국책은행 명예퇴직 개선 등을 내세웠지만 성과를 내진 못했다.

산업은행 시니어노조 김성렬 위원장은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정해진 3년 임기 동안 성과에 대해 조합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당장 젊은 조합원들의 관심 밖인 임금피크제나 명예퇴직 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노조 관계자는 "당사자에게는 각자가 당면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느껴지는 법"이라며 "그렇게 따지자면 금융기관 전체 구성원들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문제라고 느끼는 점은 승진 등 인사적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공공기관의 특성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임금피크제 대상 인원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 조합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기관을 막론하고 금융권 전반에서 최근 신입 인력들의 '고스펙'이 평준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빠른 승진과 고임금 등 누릴 것을 다 누린 선배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이 이제는 소송까지 불사하며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조직 내 세대갈등까지 야기하고 있는 임금피크제 논란에 대해 사실상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완고한 입장인데, 특히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선논의되고 있는 임금피크제 및 명예퇴직 제도 개선 논의에서 "수익구조와 근로조건 등 여건이 다른 공공기관에 일률적인 제도 시행은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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