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1만 명 완치에 혈장 기부자는 고작 6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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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1만 명 완치에 혈장 기부자는 고작 62명
  •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 승인 2020.06.09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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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SARS-CoV-2) 바이러스.[사진=네이처]
코로나19(SARS-CoV-2) 바이러스.[사진=네이처]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이 더 잘 이해한다. 없는 사람 마음은 없는 사람이 더 잘 안다. 헤어짐의 아픔은 헤어져 본 사람이 더 잘 안다. 코로나19(COVID-19)의 고통도 코로나19에 감염돼 본 사람이 더 잘 알까. 9일 현재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완치된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1만 명을 넘어섰다. 반면 자신의 혈액을 치료에 사용하기 위해 기증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고작 62명에 불과하다.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와 백신은 현재 없다. 감염되면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예방을 위해 백신을 맞을 수도 없다. 지난 2월 중순 이후 우리나라는 ‘신천지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급증했다. 하루에 많게는 몇백 명씩 늘어났다.

이후 의료진의 고군분투, 방역 당국의 입체적 방역, 국민의 사회적 거리두기 적극적 참여 등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완치자도 급증했다. 9일 현재 국내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격리 해제된 이는 1만589명에 이른다. 완치된 이들은 일단 코로나19에 대한 항체가 생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완치자가 1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혈장치료’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혈장치료는 회복된 환자의 항체가 있는 혈장을 다른 환자에 투여해 치료하는 치료법이다.

혈장치료 시스템이 ‘중간 대응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혈장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혈장 치료제 시스템이 원활하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우선 회복 환자의 혈액을 공급받는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 확대가 필요해 보인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9일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완치자 62명이 혈액 기증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1만 명이 회복된 상황에서 62명의 숫자는 너무 작은 규모이다.

국가에서 코로나19 치료를 해준 만큼 자신의 혈액을 흔쾌히 기증할 만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혈장치료에 필요한 혈액은 기저질환 등이 있는 고령자는 불가능하고 젊은 층의 혈액이 필요하다”며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기증 문화가 빈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혈액 기증자가 많지 않은 데는 혈액을 공급받는 병원이 적다는 것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코로나19 혈장 치료제 개발을 위한 혈장 공여는 고려대안산병원,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파티마병원 등에서만 할 수 있다.

김우주 교수는 “이는 혈장분리 장비 등이 있는 병원을 선정해야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혈장 공여 병원을 늘리면 비용이 증가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라는 큰 위험 앞에 이 두 가지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혈장분리 장비는 특별한 장비가 아니다. 대부분 큰 병원에는 구축돼 있다.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혈장 공여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더 늘려 기증자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두 번째 권역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구·경북과 수도권에는 ‘혈장 치료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국내 코로나19 환자 대부분은 ‘신천지 대유행’으로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발생했다. 최근엔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른 지역보다 대구·경북, 수도권 지역에 환자가 많고 회복된 이들도 많은 만큼 이들 두 지역에 대해서는 혈장치료 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혈장 치료제는 현재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에서 GC녹십자와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혈장 치료제는 완치자 혈액을 모아 혈장을 분리한 뒤 농축해 표준 치료제를 만드는 방법이다. 회복된 환자의 혈액에 있는 항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조하는데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김우주 교수는 “기증받은 혈액에서 중화항체 능력에 따라 1명의 치료제를 만드는 데 얼마만큼의 혈액이 필요할지 결정한다”며 “중요한 것은 현재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혈장치료는 가장 쉽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코로나19 대응 치료제”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를 받은 국민은 결과적으로 국가의 지원으로 회복된 셈이다. 국가와 사회가 희생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게 회복된 만큼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자신의 혈액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중증단계로 악화한 다른 이들에게는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1만 명 완치자 중에 고작 62명 만이 혈액 기증 의사를 밝힌 것은 우리나라 국민성과 거리가 너무 멀다. 남이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남이 괴로울 때 함께 그 괴로움을 나누는 게 우리나라 국민성이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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